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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호의 연예잡기] '국제시장', 한국사회 속 전쟁 트라우마를 응시하다

입력 : 2014-12-18 09:48:33 수정 : 2014-12-18 09:4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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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한준호 기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질환이 있다. 전쟁에 참여한 군인이 종종 겪는 정신 질환인데 그 만큼 마음의 상처가 크기 때문에 생긴다. 1950년 한국전쟁은 한국의 대중에게 엄청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남겼다. 전선에서 싸운 군인들뿐만 아니라 전쟁을 겪으며 생존 욕구를 본능적으로 느끼길 강요받았던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이 상처가 분명히 남아있다.

영화 ‘국제시장’(윤제균 감독, JK필름 제작)은 온갖 고난에 맞서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살았던 이 시대 아버지들의 이야기다. 꿈은 포기했어도 어머니와 동생, 결혼 후에는 자식들을 위해 싸워온 남자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런데 영화가 첫 번째로 다루는 역사적 사건이 흥남부두 철수다. 밀려오는 중국군에 밀려 퇴각하던 미군은 흥남부두에서 철수하고 부두를 폭파시키려 한다. 그 와중에 피난민들이 몰려든다. 결국, 피난민들을 군함에 태우면서 많은 장비와 무기들을 부두에 내려놓고 함께 폭파시킨다. 물론, 여전히 흥남에서는 사람들이 남아있던 상황이었다.

영화가 시작될 무렵 주인공 덕수(황정민)는 할아버지다. 그리고 손녀가 어린 시절에는 꿈이 있었냐는 질문에 곧바로 12월의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치는 흥남부두 전경이 펼쳐진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동생들을 붙잡고 부둣가를 뛰어 인파 속에서도 꼿꼿이 배를 향해 돌진하고 그 와중에 동생을 놓치고 아버지마저 잃고 만 어린 덕수. ‘아버지가 없으면 니가 가장이다’라는 말을 곱씹으며 부산 국제시장에 정착한 덕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자신의 꿈을 인식하기조차 힘들 만큼 숨가쁘게 뛰고 또 뛴 덕수는 결국, 아버지 앞에서는 한없이 작은 어린 아이였을뿐임을 영화는 무겁게 보여준다. 전쟁으로 모든 게 파괴되고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 달려와야 했으니 늘그막에야 자신의 꿈을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전쟁에서 시작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결국, 생존을 위한 질주로 이어졌다. 그 와중에 자식들은 물론 주변사람들과도 소통이 불가능한 아버지가 돼버린 덕수.

영화는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마음 속 상처를 마주하지도 치료하지도 못한 아버지들의 이야기다. 전쟁과 시대가 낳은 피해자지만 어느새 모두에게 외면받는 노인이 돼버린 남자의 이야기이기에 ‘국제시장’은 영화적 완성도를 떠나 이토록 눈물을 뽑아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이들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보다 덜할 지라도 여전히 불안감을 안고 산다. 반드시 전쟁이 아니어도 아버지로부터 대물림 된, 불안감에 기초한 생존법들을 익히며 살아왔다. 그런 와중에 전쟁에 버금가는 IMF 위기도 겪었고 이러한 불안감은 더욱 심해졌다. 불안함이라는 유령은 여전히 한국사회를 배회하고 있는 셈이다. 전쟁을 겪지 않은 이들도 ‘국제시장’에서는 공감과 함께 서글픔이 느껴지는 이유다.

‘국제시장’이 대단한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불안함의 근본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연예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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