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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줌마 라라의 일기] 19화. 내 백발의 풋풋한 애인이여

입력 : 2016-05-25 04:45:00 수정 : 2016-05-24 18: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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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처럼 팔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나의 피와 살을 베어 먹고 아이들은 잘도 자랐다. 찬밥에 물을 말아 애들이 남긴 갈치 살이나 발라 먹는 게 나의 일상이었다. 엄마란 식구들이 남긴 찬밥을 먹고 생긴 에너지로 다시 식구를 덥히는 재활용 연통 같았다. 그것도 눈물겨운 일이나 밤마다 문득 허허로워졌다. 내 가슴을 뜨겁게 하는 건 무언가.

그를 떠올리면 살갗이 오소소 돋고 단전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훅 올라왔다. 잠이 오지 않는 창가나 지나가는 낯선 등에 어리어 내 주변을 미치게 맴돌던 백발의 풋풋한 애인, 그것은 시(詩)였다. 고민 끝에 난 대학원 문예창작과에 진학하였다. “애들도 어린데 무슨 공부를 하겠다고, 쯧쯧.” 시부모님은 대놓고 반대는 안 했지만 싫은 기색이 역력하였다. 하지만 불가항력이었다. 난 신입생 환영회에서 “돈이면 다 되는 자본식민지에서 돈도 안 되는 시를 꿈꾼다고 여기 모인 사람들을 만나게 돼 행복하다.”는 인사말을 하며 울컥 벅차오름을 느꼈다.

고프다는 건 이런 거구나, 난 눈꺼풀을 깜박이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수업을 빨아 들였다. 백석, 김수영, 기형도, 시를 공부하는 그 교실은 오래도록 엇갈리기만 했던 애인과의 뜨거운 재회였다. 그리고 숙향, 류근, 동범, 희진, 나의 원우들과 수업 후 쪼르르 들러 가는 캬, 대낮의 맥주 방앗간은 내 오랜 가뭄을 적시고도 남았다. 난 태어나 처음으로 ‘호흡’이란 걸 해보는 푸른 아가미가 된 심정이었다.

예상했지만 녹록치 않았다. 광고 카피를 쓰고, 아이를 돌보고, 밤새워 공부하는 1인 3역의 미친 스케줄이 소화되고 있었다. 애들은 어린이집 종일반에 다니기 시작하고, 밥상은 빈약해졌으며, 난 점점 미안한 엄마가 되어갔다. ‘오늘은 갈비탕을 끓여줘야지.’ 모처럼 별렀다가 집에 불을 낼 뻔도 하였다. 아침에 국물을 뽀얗게 우려 놓고 나왔는데 저녁에 와보니 집이 매캐한 연기로 자욱한 것이었다. 허둥지둥 나오느라 가스 불을 끄고 나오는 걸 깜빡한 것이다. ‘어휴~ 탄 냄새’ 따뜻한 갈비탕은커녕 연기와 탄내가 진동하는 집을 피하여 밤늦게까지 어린 것들과 동네를 배회해야 했다. 아, 이 어린 것들의 쓸쓸한 배회를 어찌할 것인가.

딸 아이의 조퇴 사건도 있었다. 담임 선생님의 급작스러운 전화 한 통화. 감기가 심하여 조퇴를 시켜야겠다는 거였다. 학교에서 부랴부랴 데리곤 왔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대학원 수업은 어찌한다?’ 아이는 아프고 결석은 못하겠고, 진퇴양난이던 나는 해열제만 달랑 먹여서는 수업을 들으러 갔다. “교수님, 오늘은 딸아이랑 같이 듣겠습니다,” 펄펄 끓는 그 몸을 딱딱한 나무 책상에 기대어 앉히고는 기어이 세 시간 수업을 끝까지 들었다. “엄마랑 있으니 좋아.” 아픈 와중에도 아이는 맥없이 실실거렸다. 학교가 힘들어서 온 아이를 다시 학교로 끌고 가다니, 난 두고두고 ‘몹쓸 엄마’라는 구박을 들어야 했다.

그러거나 난 양다리의 짜릿함을 즐겼다. 히힛, 나의 침대 한 편엔 우대리가, 한 편엔 백발의 풋풋한 애인이 누워 있는 것이다. ‘12시에 만나요, 나의 백석, 눈은 푹푹 날리고 우리 깊은 산골 마가리서 살아요.’ 애인과의 본격적인 동침이 시작되면서 이젠 심드렁해진 남편과의 무미건조한 일상이 심지어 활기차게 여겨졌다. 기묘하게도 부부란 서로 각자 딴 데를 바라볼 때 더욱 돈독해지는 것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김라라 / 식품기업 R사 마케팅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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