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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22. 상도(商道)가 무너지니 관재수가 오는 것인가

입력 : 2016-07-06 04:40:00 수정 : 2016-07-05 18: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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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가 많은 언덕이라고 해서 불리어진 송파(松坡). 조선시대에는 잠도(蠶島)라는 작은 섬을 낀 나루터였는 데, 송파나루에 보부상들이 들락거리고 객주가 들어서면서 점차 여러 물품들이 거래되는 시장이 형성되었다. 송파나루는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서울과 전국을 잇는 중요한 뱃길의 요지로, 영조 때는 종로의 시전을 제외하면 송파나루가 유일한 상설시장이었다고 한다.

서울과 광주(廣州)를 잇는 군사적 요충지였던 송파나루터는 곡물류와 생필품, 그리고 목재와 석재 등을 서울에 공급하였다. 송파는 나루터보다 시장으로서의 기능이 더 컸다. 상인들이 시전상인(市廛商人)들의 금난전권(禁亂廛權)을 피하기 위하여 삼남지방이나 관동지방에서 들어오는 물품들을 이 곳에서 미리 사들여 도가상업(都家商業)의 근거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시전상인들이 송파장을 폐쇄하라고 조정에 로비와 압력을 넣었지만 광주유수(廣州留守)가 이를 막았고 이미 커져버린 송파장을 어쩌지 못했다. 대궐에 진상하는 꿀도 송파를 거쳐야 할 정도로 번성했으니 말이다.

어느 시대든 정경유착은 있었다. 나라의 재정이 어려워지면 부상(富商)과의 거래를 통해 궁핍한 재정을 메워나갔다. 조정으로부터 받은 대가로 대표적인 것이 금난전권이다. 즉 허가 없이 장사하는 상인들을 단속하고 물품도 압수할 수 있는 권한인데 이를 통해 상권을 독점하였다. 또 그 권력을 이용하여 소상인들을 통제하려했다. 물론 적당히 뒷돈도 오고갔을 것이다.

힘없는 소상인들에 의해 활성화된 송파장도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철도 부설 등 근대적 교통수단의 발달과 일제의 경제통제가 시작되면서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점차 상실해갔다. 소설 <객주>의 무대였던 송파 우시장도 이전하였으니 시장에 사람이 줄어든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1925년 대홍수로 송파장은 큰 피해를 입었고 잠실대교와 한강정비공사로 인해 옛 나루터의 모습도 사라졌다.

송파장은 관(官)과 유착관계인 시전상인들을 피해 소상인들이 만든 시장이었다. 힘없는 보부상과 객주들이 모여 만든 시장이다. 그런 역사와 추억을 지닌 송파에 지금 막강한 자금력과 상술을 갖춘 사상도고(私商都賈)가 거대한 쇼핑몰을 건설하고 있다.

그 사상도고는 시전상인처럼 관을 등에 업었다. 소공동에 호텔을 짓는 과정에서 각종 특혜가 있었고,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을 대비한 잠실 개발대상 기업으로 선정되어 사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우리나라 건축 역사에서 관련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준 유일한 사례로 기록되어있을 정도라고.

송파 신천동 부지매입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두환 정권 때 2만6천 평의 신천동 부지는 서울의 마지막 노른자위였다. 대통령선거 직전인 1987년 12월 청와대 지시로 단독으로 입찰하여 헐값으로 매입할 수 있는 특혜를 받았다. 하지만 그 부지를 활용하여 100층의 유통쇼핑단지를 지으려던 계획이 인근 서울공항의 항공안전 문제로 인해 역대 정부로부터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공군참모총장을 경질까지 하면서 기어코 2009년에 123층 건축을 승인받았다. 공항 활주로를 틀고 비행 안전시설 지원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기업의 숙원사업을 위해 국가안보를 일부 수정하는 일도 서슴없이 자행하게 했으니 정경유착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그렇게 승승장구 잘 나가던 사상도고 집안이 지금 시끄럽다. 부자(父子) 회장은 비자금 조성과 배임 혐의를 받고 있고, 장녀는 쇼핑과 백화점 입점을 조건으로 수십억 원의 뒷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 옛날 시전상인이 누렸던 금난전권의 단 맛을 누리다 관재수(官災數)가 생긴 것이니 상도(商道)가 바닥에 추락했음이랴.

“물을 소유하려고 고여 두면 물은 생명력을 잃고 썩어 버리는 것이오.” 거상 임상옥의 말이다. 그 옛날 나룻배를 타고 보부상들이 드나들며 주막에 앉아 탁주 한 잔 마시던 그런 정취는 이제 송파에는 없다. 물이 흐르지 않는 송파에서 객주집 대신 하늘을 가린 123층의 거대한 바벨탑을 보고 있어야 하는 마음이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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