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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27.무지와 편견으로부터 거듭나는 아름다운 섬, 소록도

입력 : 2016-07-25 04:40:00 수정 : 2016-07-24 18: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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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산과 바다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느라 고속도로가 정체라고 한다. 요즘은 많이 알려진 곳보다는 사람이 붐비지 않는 섬이나 비경의 계곡을 찾아 여행하는 추세다. 그러다보니 인적이 드문 섬은 최고의 휴가지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인적이 드물어도 좀처럼 사람들이 가지 않는 섬이 있다. 다리가 놓이고 교통이 예전보다 편해졌어도 가기를 꺼려하는 곳, 그 곳은 작은 사슴을 닮았다는 소록도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 지나도/쑤새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거리며/가는 길… (중략)

한센병 시인 한하운의 <전라도길 — 소록도 가는 길에>라는 시(詩)다. 젊은 시절 한하운의 시를 좋아해서 그의 시집을 가방에 넣고 틈틈이 읽곤 했다. 그때 폐결핵으로 몹시 힘든 시기를 보낼 때라 그의 시 한 줄은 내 가슴을 후벼 팠다. 시인 만큼이야 하겠냐마는 삶의 아픔을 함께 했다고 할 수 있다.

1916년 일제의 나환자 격리 정책에 따라 기후가 온화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이 많으며, 육지와 격리되면서도 물자를 나르기가 쉽다는 이유로 소록도를 선정하여 그 곳에 자혜의원을 세웠다. 해방이 되고 1960년대 들어서면서 수용격리에서 병원치료 체제로 바뀌기 까지 소록도는 오랜 세월동안 많은 상처와 아픔이 있는 섬이었다.

1960년대 일반인들도 출입하기를 꺼리던 그 섬에 오스트리아에서 간호학교를 졸업한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가 머물며 한센인들을 보살폈다. 감염을 우려하여 마스크와 장갑, 방역복으로 무장한 병원직원들과 달리 20대 젊은 나이 수녀들은 흰 가운만 걸친 채 얼굴에 튀는 피고름도 전혀 개의치 않으며 환자들을 지성으로 보살폈다. 그런 모습을 보고 환자들은 그녀들을 "소록도의 엄마"라 불렀다고 한다.

그 당시 정부는 한센인들에 대한 무관심하였고 지원 부족, 그리고 각종 차별 속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두 수녀는 오스트리아에서 보내준 의약품과 지원금으로 주거 환경 개선, 장애교정 수술 주선, 물리치료기 도입 등 한센인들의 재활치료는 물론 정착에 까지 온 정성을 쏟았다. 두 수녀의 헌신적인 봉사가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와 오스트리아 정부는 훈장과 국민포장 등을 수여했다. 소록도를 떠나지 않았기에 직접 찾아가 수여했다. 그랬던 두 수녀가 2005년 이제는 늙어 짐이 되기 싫다며 편지 한 장을 남기고는 홀연히 고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런 아픔이 있는 소록도에 최근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정치인들이 잇달아 방문했다. 총선이 끝난 지난 5월 16일 문재인 의원 방문에 이어, 18일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이곳을 방문해 '국립소록도병원 자원봉사자의 날'행사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인간이 가진 무지·편견이 얼마나 많은 차별을 가져오고 불행을 가져다주는지 잘 알려주는 역사"라고 말했는데, 안 대표 나이라면 소록도를 모르지 않았을 텐데 이제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도 어쩔 수 없는 정치인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얼마 전 나향욱 교육부 전 정책기획관이 기자와 술을 마시다 망언을 하여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아무리 취중이었다고는 하나 한 나라의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고위공무원으로서 우월적 신분과 아직도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매우 우려스러웠다. 결국 그를 파면시키는 것으로 사태는 마무리되었지만 그 만큼 우리 사회가 아직도 무지와 편견이 남아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안 대표가 방명록에 남긴 글처럼 무지와 차별은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사람 손을 타지 않아 아직은 아름다움 소록도. 한때 ‘천형(天刑)의 땅’으로 차별받던 소록도는 나라의 아픔과 한센인의 아픔을 함께 겪은 섬이다. 이제는 그 아픔을 우리와 함께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한다. 다음 달 12일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40여 년 동안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지성으로 보살핀 마리안느 스퇴거 수녀와 마가렛 피사렉 수녀를 제20회 만해대상 실천대상 부문 수상자로 선정하여 시상한다고 한다. 상도 좋지만 오랜 세월 한센인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의 흔적을 치유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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