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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28. 구한말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정동(貞洞)

입력 : 2016-07-27 04:40:00 수정 : 2016-07-26 18: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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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가다보면 서쪽으로 정동공원이 있고, 그 옆에 3층탑이 우뚝 서 있다. 옛 러시아 공사관 자리였음을 알려주는 탑이다. 덕수궁 인근의 정동 일대는 구한말 서구 열강의 공사관들이 밀집해 있던 곳이다. 그 뿐만 아니라 한국 최초의 기독교 감리교회가 이 곳에 있었고, 배재학당 등 여러 교육기관이 있어 그 어느 지역보다 서양문물과 가깝게 접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중에 구한말 러시아 공사관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 역사의 격변기, 그 한가운데서 잊을 수 없는 장소의 하나였다. 한 나라의 임금이 거처하고 있던 왕궁에서 일본 낭인들에 의해 왕비가 시해를 당하고 날이 갈수록 올가미를 조여 오는 일본의 위협과 감시를 견디다 못한 고종은 1896년 2월 왕세자를 데리고 밤을 틈타 경복궁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하였다. 그 당시 고종이 지나갔던 길을 미국 공사관이 제작한 정동지도에는‘왕의 길(King’s Road)’이라고 표시되어 있다고 한다.

경복궁을 빠져나온 고종은 어떻게 러시아 공사관까지 갔을까. ‘영추문을 나선 다음 대궐 담장을 순찰하던 일본군을 피하기 위해 서촌 마을길로 갔을 것이다. 내수동 길을 지나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뒷길을 지나가면 옛 경기여고 터에 있던 선원전 뒷길로 들어설 수 있는 데, 그곳 어딘가에서 러시아 병사들이 고종을 공사관까지 옹위했을 것이다. 이것이 학자들이 추측하는 이동 행로이다.

고종이 아관파천을 하기 까지 일련의 사건 속에 한 러시아 건축가가 등장한다. 러시아 건축가 아파나시 세레딘 사바틴. 그는 제물포항의 개항과 함께 국내로 들어와 최초로 서양식 건축기법을 도입한 건물들을 설계하였다. 건축으로 고종과 인연을 맺은 그는 을미사변이 있던 날, 경복궁의 궁궐 호위대장으로 있다가 그 모든 광경을 목격했다. 사바틴은 일본인들의 만행을 러시아 본국에 긴급으로 알렸다. 다음 날 러시아 유력 일간지는 일면에 이를 크게 보도하였고, 그의 발 빠른 행동으로 인해 일본의 악행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사바틴이 설계한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가 러시아 공사관. 1884년 조러(朝露)수호통상조약 체결 후, 러시아는 한옥을 개조하여 공사관으로 사용하다가 베베르 공사가 건축가 사바틴에게 새로운 공사관 설계를 맡겼다. 1885년에 짓기 시작하여 1890년 완공하였는데, 공사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과 3층탑으로 이뤄진 석재와 벽돌식 건물로, 입구에는 개선문 형식으로 된 아치문이 있었다. 르네상스 양식 건물탑에 올라가보면 경복궁은 물론이고 주변의 다른 나라 공사관 뜰 안까지 내려다볼 수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 공사관은 6.25 전쟁 중 대부분 파괴되고 지금은 탑만 남은 상태이다.

사바틴이 이 땅에 남긴 건축물은 러시아 공사관 외에도 1896년 독립협회의 요청으로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세운 독립문을 설계했으며,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맺어진 덕수궁 중명전도 그의 작품이다. 그의 손을 거친 건축물들이 대부분 역사의 현장이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 그가 설계한 건물들은 대부분 세월이 지나 없어지고 흔적만 남았지만, 아직 남아있는 건물은 아직도 그 역사의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다.

문화재청이 아관파천(俄館播遷) 120주년을 맞아 ‘왕의 길(King’s Road)’113m를 내년 말까지 복원하고, 아울러 구 러시아 공사관도 2021년까지 옛 모습을 복원 정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발표에 대해 지금에 와서 아관파천의 역사를 왜 다시 꺼내느냐는 반대의 목소리가 있을 수 있다. 아관파천이 아픈 역사이기는 하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시 조선을 둘러싼 국제관계를 돌이켜보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고종의 제2차 근대화 개혁이라고 할 광무개혁을 추진할 수 있지 않았는가.

이것 외에도 문화재청은 덕수궁을 비롯하여 창경궁, 경희궁 등이 복원 중이거나 앞으로 복원을 계획하고 있다. 끊어졌던 창경궁과 종묘 사이를 잇는 공사 현장을 지나다니면서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은 문화재의 복원에 대해 상념에 잠긴다.

이제라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심할 수밖에 없었던 처지를 벗어나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아 참으로 다행스럽다. 다만, 관련 자료를 꼼꼼히 챙겨 부실 복원 얘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러한 복원과정 자체를 또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축적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덧붙여 본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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