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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32.한(恨)의 예술가, 하늘의 소리꾼 임방울

입력 : 2016-08-10 04:45:00 수정 : 2016-08-09 18: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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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한증막이라도 된 듯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더위에 갇혀있다. 시원한 계곡을 찾아 더위를 식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즈음 지리산 계곡, 그 가운데서도 폭포소리가 청청한 곳에는 소리꾼들이 모여 득음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모습이 진풍경이다. 모두들 국창(國唱)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정진하는 것이다. 국창이란 판소리 명창 중에서도 나라에서 인정한 아주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는데 해방 전의 송만갑(宋萬甲)·이동백(李東伯)·김창룡(金昌龍)·정정렬(丁貞烈) 등과 해방 후의 임방울(林芳蔚) 같은 명창이 국창이라 불렸다.

그런 국창들 가운데서도 임방울은 다른 명창과는 달리 화려한 무대나 권세가들의 사랑채보다는 시골장터나 강변의 모래사장에서 이름 없는 귀명창들을 위해 한의 소리를 나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본명이 임승근(林承根)이지만 본명보다 임방울로 세상에 더 알려졌는데, 이는 당대의 귀명창들이 그의 소리를 듣고 탄복하면서, "은방울같이 신묘한 소리가 아닌가”하고 칭송하면서 자연스럽게 임방울이란 이름으로 굳어졌다는 것이 정설인 듯하다.

이러다 보니 당시 고관대작들과 재산가들이 너도 나도 그의 소리를 청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임방울은 묘한 고집이 있어 자신의 소리를 아무데서나 들려주지 않았고, 특히 정식 취입이 아니면 절대 녹음을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14세 때 창에 취미가 있어 창극계에 들어가 명창 박재실 선생에게 <춘향전> <흥보전>을 배우고, 다음에 유성준 씨에게 <수궁가>, <삼국지>, <심청전>을 배우고 난 다음에, 25세까지 독단적으로 공부했다”는 임방울은 구전심수로 선생에게 배워온 부분을 기억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혹독한 훈련을 하면서, 이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고향 송정리의 구수한 사투리를 판소리에 맛깔스럽게 비벼넣어 독창적인 경지를 연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렇게 자신만의 소리를 얻은 임방울은 1929년 9월, 매일신보사 주최 <조선명창연주회>에 ‘쑥대머리’를 가지고 참가하여 일약 판소리계의 스타로 올라섰다. 뱃속 깊숙이 소리를 뽑아서 내뿜는 통성에 쉰 목소리와 같이 껄껄하게 우러나오는 수리성을 섞은 임방울의‘쑥대머리’소리가 울려 퍼지자 장내는 일순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 전라도 사투리로 애절함을 더한‘쑥대머리’는 청중들의 넋을 빼놓았다고 한다.

이날부터 ‘쑥대머리’는 임방울의 닉네임이 되었고, ‘쑥대머리’가 담긴 SP판은 국내는 물론 일본과 만주까지 모두 100만 장이 넘게 팔렸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6.25 전쟁 때 검문하던 인민군에게 다른 말 하지 않고‘쑥대머리’한 자락을 풀어놓으면 무사통과를 시켜주더라고 했다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임방울이 활동하던 시대만 해도 명창들은 천한 예인(藝人) 신분으로 취급을 받았고, 오늘날의 인간문화재 같은 대접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이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많은 명창들은 오직 소리를 하다가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삶을 살았고,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 소리를 아끼는 사람들이 마지막 가는 길을 아쉬워 할 뿐이었는데, 1961년 임방울이 세상을 떠나는 날, 200여 명의 여류명창들이 소복을 입고 상두꾼이 되었고, 100여 명의 거지들이 그 뒤를 따라 이채를 띠었다. 이 거지들은 임방울이 공연할 때마다 내치지 않고 소리를 듣게 해주었기에 마지막 가는 길을 전송하러 모인 사람들이었다.

당시 최고 권력자가 소리를 부탁해도 이를 물리쳤던 임방울은 지방의 일개 경찰서장이었지만 예인을 사랑했던 선친 차일혁 경무관에게만은 소리를 부탁하면 기꺼이 응해주고 그 육성을 녹음까지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때 녹음한 것이 릴테이프 8개에 담겨 선친의 유품으로 내게 전해졌는데, 뒤늦게 국창 임방울의 육성 녹음자료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듣고, 2010년 1월 임방울의 고향 광주시에 그 릴테이프 8개 전부를 기증했다. 주변의 지인들은 그런 귀중한 자료를 그렇게 쉽게 내놓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말리기도 했지만, 그 자료가 귀중하면 할수록 그 자료가 있어야 할 자리로 간 것으로 생각했고, 그저 선친이 내게 주신 짐 하나를 덜었다는 홀가분한 기분마저 들었다.

작가 이청준은 생전에 "임방울의 한 곡조 들으면 삭신이 노곤 노곤해진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소리를 “한의 여물을 먹고 내는 울음소리”라고 하지 않던가. 매년 빛고을 광주에서는‘임방울국악제 전국대회’가 열린다. 올해도 오는 9월 23일부터 전국대회가 열린다는데, 아직도 가슴을 아리게 하는 촉기(觸氣)와 가슴 깊숙이 후벼 파는 그의 소리가 못내 그리운 것은 임방울이 국창(國唱)이기보다 진정 하늘의 소리꾼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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