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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34.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숙명

입력 : 2016-08-22 04:40:00 수정 : 2016-08-21 1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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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세노유장곡(梧千歲老猶藏曲) 매일세한불매향(梅一世寒不賣香)’이라. 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오히려 곡조를 감추고 매화는 아무리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거문고는 좋은 오동나무로 만들기에 오래될수록 좋은 곡조를 내지만 오히려 그 곡조를 감추고, 엄동설한의 매화는 나비조차 날아오지 않지만 함부로 향기를 팔지 않고 자기의 자존심을 지킨다.

사람은 고고하게 살아가는 듯해도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순응할 수밖에 없다. 우리 속담에 ‘사주(四柱)는 속여도 팔자는 못 속인다’는 말이 있다. 사주(四柱)는 태어난 연월일시의 네 기둥이요, 팔자(八字)는 연주, 월주, 일주, 시주의 여덟 글자를 말한다. 사주는 운명(運命)이요, 팔자는 숙명(宿命)이기에, 운명은 글자 그대로 움직일 운(運)을 써서 움직이는 게 가능하지만, 숙명은 잠잘 숙(宿)으로 피하지도 못한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사주에 관심 없는 사람이 있을까. 선거철만 되면 누구보다도 운세를 알고 싶은 게 정치인들이고, 입시철에도 마찬가지다. 한 기업인은 직원을 뽑을 때 역술인에게 자문을 구할 정도라 한다. 사람들은 아닌 듯해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사주다.

영혼과 함께 세월을 보내다보니 어느 새 나는 국내외적으로 영능력자로 알려져 있다. 영가를 천도하는 구명시식을 벌써 30여 년 해오고 있고, 중요한 순간에 국운을 예언해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 자주 오르기도 한다. 또한 야구 취미를 살려 넥센 히어로즈 야구단의 구단주대행을 맡고 있고, 최근에는 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제6대 이사장이 되어 아리랑 홍보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운명이라 느껴진다.

나 역시 사주(四柱)에 관심이 없는 듯 보여도 사주를 잘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나도 모르게 호기심이 발동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예언, 2003년 대선 예언, 2008년 대통령의 잇단 서거, 2011년 일본 대지진 예언까지 했던 내가 설마 내 운(運)을, 내 명(命)을 모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의 사주를 궁금해 하는 까닭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는 미래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난에게 물었다. “아난아 내가 조금 더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이렇게 세 번이나 물으셨는데 아난은 하필 그 순간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 제 때 대답하지 못했다. 뒤늦게 “더 오래 사시는 게 좋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이미 큰 업(業)을 진 뒤였다. 결국 훗날 아난은 부처님의 입적을 방치한 죄를 물어 쫓겨나고 말았다. 부처님이라고 어찌 미래를 모르셨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命)에 대한 미련이 있어 가장 아끼는 제자에게 허심탄회하게 물은 것인데, 하필 그때 아난은 부처님에게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20대까지 내 사주(四柱)를 몰랐다. 몰랐다는 것보다 실제와 다른 사주로 알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영능력자가 본인 사주(四柱)도 몰랐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랄 것이다. 내 사주(四柱)가 남다르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신 사주(四柱)와 내 삶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사주(四柱)대로라면 나는 만사형통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그런 삶을 살아오지 못했다.

어린 시절 빨치산 토벌대장이었던 아버지는 요절하셨고, 이후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선친을 따라 군인이 되고 싶었지만 중도에 접어야 했고, 법관이 되고 싶었지만 사법고시 1차를 합격한 뒤 급작스런 폐결핵으로 공부를 그만둬야만 했다. 불도(佛道)에 뜻을 두고 전국의 큰 사찰과 암자를 찾아가 수만 배 절을 하며 수행을 했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았다. 결국 매정한 내 운명을 받아들이고 구명시식을 시작하게 된 것이 벌써 30여 년. 어머니께서 알려주신 내 사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1947년 음력 4월 8일 경인(庚寅)시에 태어났다. 하지만 출생신고는 그보다 하루 빠른 ‘4월 7일’로 되어있다. 어머니는 왜 그래야했는지 말씀을 해주지 않으셨고 나도 굳이 묻지 않았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에야 나에게 고백을 하셨다. 아들의 사주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오랜 세월 마음속에 간직하다가 마침내 입을 여신 것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숙명인 것을. 피를 쏟으며 열 걸음도 걷기도 힘들었던 내가 그나마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어머니 덕분이라 생각한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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