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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39. 김일성과의 남북회담 불발 미리 알았다

입력 : 2016-09-07 04:45:00 수정 : 2016-09-06 18:3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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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트라다무스와 같은 예언가들의 예언들이 오랫동안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많은 예언들이 맞았으니 사람들은 미래의 예언들도 맞기를 바란다. 하지만 예언을 하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까라고 묻는다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는 틀리기를 바랄 때가 있다. 큰 사건인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걸프전 발발 예언 사건이 있은 후, 나는 미국 뉴저지에 후암선원을 열었다. 많은 교민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작은 명상센터를 연 것이다. 1994년 5월 평범한 얼굴의 B씨가 후암선원을 찾아왔다. 그는 만나자마자 세상물정을 잘 모른다는 식의 어수룩한 언행으로 일관했지만, 순간순간 무의식적으로 보이는 행동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웃기만 했다. 그가 아무리 자신의 전력을 숨겨도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B씨는 위장에 능수능란한 정보부 고위관리였다. 그가 내 웃는 얼굴을 보고는 자신의 신분이 들통 났다는 사실을 알고 ‘허허허’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B씨는 장인의 구명시식을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장인은 황해도 신천에서 꽤 큰 규모로 장사를 했는데, 해방 후 북한에 비협조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위도 월남한 반동 가족으로 몰려 수감되었다가 국군이 북진하던 시기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학살당했다고 했다.

나는 의식을 준비하며 32벌의 수저를 더 준비하라고 했다. B씨의 장인 뿐만 아니라 같이 학살을 당한 많은 이들의 영혼이 함께 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의심 많은 B씨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B씨는 장인이 학살당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 장소가 어디인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초혼으로 나타난 장인 영가는 “내가 죽은 장소를 알려 주마”라면서 당시 장소와 잔혹한 상황을 낱낱이 증언했다. 황해도의 명산인 구월산과 신천읍의 중간쯤에 있는 석당리 냇가 다리 밑에서 삽과 곡괭이로 맞아 죽어 온몸이 찢기고 터져서 육신의 고통이 심했다고 절규했다. 반신반의하던 B씨는 그제야 믿는 눈치였다. 석당리라는 곳은 실존하는 작은 고을인데 지금은 지도에서 찾을 수 없는 곳이다. 내가 그런 곳을 말하고 있으니 안 믿을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장인은 딸의 이름도, 직업도 기억하고 있었다. 영혼이 온 것을 확신한 B씨의 태도는 진지해졌다.

그런데 구명시식에 생각지도 않던 불청객 영혼이 끼어들었다. 그 영가는 소위 ‘남산의 돈까스’로 불리던 K영가였다. 박대통령 당시 정보부 책임자로 있다가 갑자기 실종되어 살해됐다는 소문만 무성하던 상태였다. K는 원혼이 되어 극락왕생하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다가 내가 하는 구명시식에 불청객으로 찾아온 것이다. K영가는 B씨에게 자기가 왔다는 사실을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B씨에게 이 말을 전했다.

“좀 더 가까이 오세요. K영가가 왔는데 만나시겠습니까?” 그러자 B씨의 얼굴은 굳어졌다. “아니오. 만날 필요 없습니다” K영가는 내게 졸랐다. “내가 B씨에게 긴히 할 말이 있습니다. 내 말을 꼭 좀 전해주세요” 하지만 아무리 설득해도 B씨는 K영가를 만나지 않겠다며 딱 잘라 거절했다. 아무래도 둘 사이에 밝힐 수 없는 사정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생전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K씨도 영계에서는 한낱 구천을 떠도는 원혼에 불과했다. 오히려 남에게 원(怨)과 죄(罪)를 지어 업보가 더욱 두터워져 있었다.

K씨 영가는 할 수 없이 나에게만 말을 전하고는 떠나버렸다. 그가 B씨에게 하고픈 말은 공개하지 않았다.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당시 정부는 암암리에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었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B씨도 그런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대하지 마세요. 남북 양김의 회담은 안 이루어집니다. 절대로 못 만나요”라고 말했다.

장인을 만나게 해 준 것은 믿으면서도 남북회담이 불발된다는 말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것은 한 사람의 예언으로 좌우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러나 7월 8일 김일성 사망소식이 호외로 뿌려졌다. 다시 만난 B씨는 나에게 어떻게 알았는지 묻지 않았다. 내심 짐작은 하고 있는 눈치였다. 김일성의 사망에는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다. 김일성 부자간의 갈등으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등 많은 주장들이 나왔고, 나에게 이를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알면서도 때로는 밝힐 수 없는 것이 예언하는 사람의 고민이다. 때가 되면 자연히 밝혀지리라 생각한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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