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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42. 격암 남사고 선생의 과보

입력 : 2016-09-21 04:45:00 수정 : 2016-09-20 18: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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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 때 격암 남사고 선생은 양반임에도 불구하고 한미한 말단직인 천문교수를 지냈다. 그가 분명 도통한 사람이며 이인(異人)이었지만 세상은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 <격암유록> <정감록> 등도 격암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 200여년 후인 조선 후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다.

격암 선생은 뛰어난 예언가였지만 평생 가난을 면치 못했다. 외출복이 없어 친구의 문상도 못갔다. 항상 몸에 병이 있어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겪기도 했다. 자신의 앞날 뿐만 아니라 남의 미래, 심지어 조선의 미래, 한민족의 미래까지 정확히 예측하는 조선의 노스트라다무스였음에도 당장 내일의 끼니는 해결하지 못했다.

선생은 빈한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부친의 묘를 무려 아홉 번이나 이장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남사고는 산천을 돌아다니다가‘비룡상천(飛龍上天)’형국의 명당자리를 얻어 부친의 묘를 썼다. 이장을 한 후 봉분을 만들고 있는데 한 노인이 나타나 “비룡상천(飛龍上天)이 아니고 고사괘수(枯死掛樹)가 아니더냐?” 라고 소리치고는 사라졌다한다. 남사고가 깜짝 놀라 주변을 살피니, 너른 바다로 보았던 곳이 사실은 메밀밭이라 명당이 아님을 그제야 알게 되었지만, 부친의 묘를 더는 옮기지 못했다고 한다.

천문과 풍수에 능한 선생이 이장을 한 번도 아니고 아홉 번이나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 이장한 효과를 당장 못 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 왜 이장한 효과가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누구보다 격암 선생은 그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선대에 쌓은‘덕(德)’이 없었기 때문이다.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라 했다. 하지만 선생은 특유의 조급증 때문에 덕행을 건너뛰고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터를 찾아 아홉 번이나 이장을 했으니 이장하는 후손도 피곤하지만 고인(故人)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결론적으로 선생은 이장한 덕을 끝끝내 보지 못했다. 평생을 중인들이나 하는 천문교수로 근근이 끼니를 이었던 선생은 어느 날 나라의 천문을 관장하는 별인 태사성이 빛을 잃어가던 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구천십장(九遷十葬)한 벌을 받으셨는지 자손조차 없었다고 한다.

격암 선생은 당대에는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예언이 맞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격암 선생이 유명해진 것은 200여년 후인 영‧정조 시대 일이다. 얼마나 유명했던지 하루는 영조가 직접 “도대체 격암이 누구냐?”며 그를 친히 찾을 정도였다.

세상이 외면했던 격암 선생. 왜 선생은 평생 가난과 병고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하늘의 질투다. 이른바 천기누설이다. 격암 선생이 본 미래는 엄연히 하늘의 영역이었다. 감히 인간이 봐서도 알아서도 말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격암 선생은 그 영역을 봤고 알았고 그리고 <남사고비결>을 통해 후세에 전했다. 하늘이 용서하는 적중률의 범위는 30% 정도다. 열이면 셋 정도 맞추면 그럭저럭 넘어간다. 그러나 그 이상이 되면 하늘은 그냥 두지 않는다. 일반사람과는 다른 고통을 준다.

앞날을 미리 보는 사람이 받는 과보(果報 · 과거의 업인(業因)에 따른 결과). 격암 선생은 과보를 받을 줄 알면서도 미래를 예언했고 과보를 받은 뒤에도 그 과보를 벗어나기 위해 부친의 묘를 아홉 번이나 이장했지만 결국 하늘에 무릎 꿇고 말았다.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고통은 다 받으시고 눈을 감았지만 이 고통으로 인해 조선 최고의 예언가가 될 수 있었다.

예언을 하는 나는 누구보다 격암 선생의 고통에 통감한다. 그 분이 받은 과보, 그 과보의 한 자락이 무엇인지도 나는 이해한다. 사람들이 내게 왜 하늘의 질투를 받지 않느냐고 물을 때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 역시 과보를 받는다. 내 가족도 나 때문에 과보를 받기도 한다. 다만 격암 선생과는 다른 종류의 과보를 받는다.

몇 년 전에 과보를 좀 면해보려고‘뻥 예언’을 한 적이 있다. 덕분에 세간에서 말들이 많았다. ‘7∼8월에 큰 일이 생긴다’고 해서 어떤 분은 전쟁이라도 나는 줄 알고 비상식량을 준비했다고 한다. 나는 예언이 틀리길 바란다. 예언은 너무 맞으면 하늘의 미움을 받고 안 맞으면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는다. 예언은 하늘의 말을 잘 전하고 사람들도 말에 귀 기울일 수 있을 정도의 적중률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격암선생은 정도를 넘는 바람에 과보를 받았지만 나는 예언하지 않아도 되는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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