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윤여정과 진솔한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이번 영화에 출연한 소감을 말해달라.
“처음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정신없이 봤다. 그때는 잘 몰랐다. 내 연기에 아쉬운 점을 찾느라 그랬다. 두 번째 봤을 때는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이 반이었다. 이 영화는 금기시해 오던 ‘노인 성매매’라는 문제를 건드렸다. 친구가 이 영화 출연을 말렸다. 제목부터 그게 뭐냐며, 곱게 늙으라고.(웃음) 하지만 VIP 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 나더니 가치 있는 일을 했다. 잘 만들었고 잘 봤다고 하더라. 그 친구의 응원이 가장 큰 힘이었다.”
-이전 영화보다 파격장면이 많았다. 출연을 고민하지 않았나?
“이재용 감독을 믿었다. 이 감독은 담담하게 (연출을) 하는 스타일이다. 울부짖고 포효하는 게 아니고. 그렇게(담담하게) 연출할 줄 알았기 때문에 출연했다. 요즘 한국 영화는 대부분 극단적이고 자극적이다. 그렇게 연출할 사람이라면 안 했을 것이다.”
-촬영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후회를 많이 했다고 하던데?
“이전에는 출연료 때문에 일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려웠던 시절에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내 두 아들을 키웠다. 등록금도 내줘야 하고 먹고살아야 하니까 열심히 일해왔다. 환갑 넘어서 결심했다. 이제 부자는 아니지만 나한테 보상해주고 싶었다. 일이라도 사치스럽게 하자. 지금은 하고 싶은 감독과 작가와 작업하는 게 나의 사치다.”
-어떤 장면이 가장 힘들었나?
"성매매 장면. 특히 남산에서 장면은 정말 힘들었다. 그 장면이 시나리오에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병원 장면도 지문을 보면 '사타구니에 주사를 찌른다' 정도였다. 얼굴도 모르는 다 벗은 남자 앞에서 서비스하는 장면을 찍는데 돌 지경이더라. 온몸에 문신이 있는데 매스꺼웠고 진짜로 토하고 싶었다."
“그동안 다른 작품 할 때는 몰랐다. 이번 영화는 우울증까지 겪었다. 박카스 할머니도 누군가의 소중한 딸로 태어났을 것 아닌가. 하지만 뭐라도 해서 돈은 벌어야겠고, 법으로 금지되고 손가락질 받는 일을 하게 될 때까지 내몰리게 된 사람들이다. 영화를 찍고 나서 길 가다 폐지 줍는 노인만 보이면 마음이 아파 아예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고 일어나서 인권 운동을 할 수도 없잖은가. 그냥 겨우 ‘안 볼 거야’하면서 비겁하게 고개를 돌렸다. 알고 지내던 한 설치미술가에게 ‘난 이것밖에 못한다’고 말했더니,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으로 보시하는 거라 하더라. 그렇게 위안 받았다.”
-영화에서 노인 자살 문제에 많은 화두를 던지더라?
“시사회를 본 유시민(전 장관)씨가 그러더라. ‘죽여주는 여자’는 노인 자살의 가장 전형적인 3가지 유형을 그려냈다고. 중풍으로 인해 혼자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오는 자존감 파괴, 치매로 인한 자아상실의 문제와 그에 대한 공포,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음으로써 오는 절대 고독.”
-무거운 주제지만 담담한 연기였다.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길에서 아이를 덥석 데리고 집에 들어온 소영이를 대하는 이웃 사람들의 태도였다. 티나가 아이를 보고 “걔는 또 뭐야”라고 묻자 “길에서 주워 왔어”라며 소영이 대답한다. 그 이상 아무것도 안 묻는다. 인생의 아픔을 아는 사람들은 남한테 시시콜콜 안 물어본다. 나는 어떤 사람이 이혼했다고 하면 그 사람이 왜 이혼했냐고 안 물어본다. 감독이 소외된 사람들끼리 사는 모습을 잘 썼다고 생각한다.”
-이번 영화를 통해 관객이 봐줬으면 하는 부분은?
“저도 약자였던 적이 있었다. 소수자로 살아봤었다. 예전에 미국과 호주에 있을 때(그때는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잘 모르던 시절이다) 애들이 저 졸졸 쫓아다니면서 놀렸다. 아이들이 눈을 찢는 제스처를 하면서 “차이니즈, 재패니즈”하는 소리를 들었었다. 거기 할머니들은 “너희 나라 하늘도 우리나라 하늘과 똑같냐”고 묻기도 했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택했다. 우리는 어딘가에서 모두 소수자가 될 수 있다. 제 삶도 늘 주류는 아니었다. 소수자에게는 뭘 도와야 하는지 고민할 것 없다. 색안경만 안 끼고 봐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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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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