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

검색

[차길진과 세상만사] 46. 산악인의 운명(運命)과 숙명(宿命)

입력 : 2016-10-10 04:40:00 수정 : 2016-10-09 18:46:07

인쇄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인간만이 유일하게 등반하는 존재가 아니다. 등반은 원숭이가 더 잘한다. 인간은 등반을 하면서 탐사하는 존재다”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의 말이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1978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무산소 단독 등정과 낭가파르바트 단독 등정에 이어 1986년 로체까지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무산소 완등의 신화를 이룩한 산악인이다.

산악계의 전설로 통하는 라인홀트 메스너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 1일 전국 산악인들과 일반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제1회 울주 세계산악영화제를 맞아 라인홀트 메스너 초청강연이 열렸다.

‘태산을 움직이다(Moving Mountains)’를 주제로 진행된 이날 강연에서 메스너는 “등반은 자신을 탐험하는 것”이라며 “산을 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해 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산은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하다. 등반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며, 극한에 다다랐다가 산을 내려오면서 비로소 자신을 찾을 수 있다”며 산에 오르는 이유를 말했다.

지난해 산악영화 ‘히말라야’가 개봉하여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후배대원의 시신을 찾기 위한 원정대의 뜨거운 여정을 그린 이 영화를 보고 실제주인공인 엄홍길 씨도 많이 울었다고. 휴먼원정대는 시신을 발견했지만 함께 내려오지 못하고 돌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대원이 지녔던 유품만을 수습하여 내려와야 했다.

우리에게는 낯선 독립영화 한 편이 있다. ‘우리는 거기에 있었다’(감독 박준기)라는 제목의 영화는 1995년 한국원정대가 히말라야 가셔브룸4봉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았다. 당시에 한국원정대와 슬로베니아팀이 비슷한 시기에 등반을 했다. 슬로베니아팀의 슬라브코 대원이 단독등반에 나섰다가 실종되었고 우리 원정대는 그를 찾아 나섰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가셔브룸4봉 정복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2년 후 한국원정대는 재도전에 성공하였고‘ 코리안 다이렉트’ 루트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성공은 세계 산악계에 큰 화제가 되었다.

이 영화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인연은 필연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한국원정대는 1995년 슬라브코가 실종되었을 때 동판을 만들어 그의 추모제를 지내준 적이 있었다. 1997년 재도전에 정상을 정복하고 하산하다 눈이 녹아 모습을 드러낸 슬라브코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원정대는 시신을 수습할 수는 없어 슬라브코의 유품으로 가족에게 전해 줄 생각으로 그가 사용했던 로프를 일부 잘라 가방에 넣었다. 원정대는 하산하던 중 걸쳐놓은 자일의 중간이 곧 끊어질 듯 보여 모든 대원이 큰 조난을 당할 상황이 발생했다. 순간 슬라브코의 유품이 생각나 그 자일을 꺼내 묶어 대원 모두가 무사히 하산할 수 있었다. 원정대는 하산 후 슬라브코를 위한 추모제를 다시 지냈다. 만약 그때 그 자일이 없었다면 아마 원정대는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고 말한다.

영화 ‘히말라야’는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를 했지만, 독립영화 ‘우리는 거기에 있었다’는 원정대의 실제 등반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산악영화이다. 지난 2012년 한국-슬로베니아 수교 20주년 기념을 기념하는 ‘Smile of Korea’ 행사가 슬로베니아에서 열렸고, 한국 영화 11편이 상영되었을 때 이 영화도 함께 상영되었다. 이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그곳 사람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영화를 본 슬로베니아 산악인들은 한국원정대에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감독에게 말했다고 한다.

“영화는 다이나믹한 등반 뿐만 아니라 과정에서 일어난 슬로베니아 산악인들과 진한 우정을 담고 있어요. 산악인이 아니라면 알지 못할 특별한 우정 말이죠”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특별한 우정이라 말하지만 나는 우정을 초월한 영혼의 만남이라 생각한다. 등반하는 순간만큼은 산 사나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진한 운명 같은 만남.

메스너는 “산을 오르는 것은 행위 이상의 것,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산 사람은 죽어서도 산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 그런 이유가 아닐까. 두 편의 산악영화를 보면서 일반인들은 느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이 그곳에 있어 가는 산악인의 숙명 같은 것 말이다.

태산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가 하는 작은 행동, 작은 마음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손을 내미는 순간 내 업이 달라지고 세상이 변하고 태산이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보이지 않는 영혼의 네트워크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