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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48.두두물물(頭頭物物)의 시절인연(時節因緣)

입력 : 2016-10-17 04:40:00 수정 : 2016-10-16 18:2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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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남에게 빌리지 않은 것이 있을까. 사람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게 다른 사람에게 빌리고 세상에서 빌린 것이다. 다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소유라고 착각할 뿐이다. 세상 만물은 인연에 따라 잠시 내가 빌려 쓰는 것이다. 빌려쓰다 또 다른 인연을 만났을 때, 다시 세상을 위해 사용하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2010년 입적한 법정 스님을 생각하면 ‘무소유’가 먼저 떠오른다. 법정 스님은 유언으로“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라고 말했다.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내 것이라고 되어있는 것이 있다면 버리고 가겠다했으니 소유하는 것보다 세상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 무소유의 실천이라 생각한다.

중국 당나라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부친이 생전에 가장 아꼈던 네 폭의 그림을 스님에게 주면서 “천하에 이런 진품(珍品)을 소장한 사람은 많지만, 그들은 모두 소장품을 3대를 전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물건은 구할 때는 얻지 못할까 근심하고, 구하면 시종 잃어버릴까 불안해 합니다. 나도 이것들을 오래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스님께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이것을 어떻게 지키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스님은 말했다. “ 목숨을 걸고 부처님과 조사 앞에서 이 그림을 영원히 지켜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이에 소동파는 “세상에는 부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스님도 한 평생만 지킬 수 있을 따름입니다. ”스님은 난처해졌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소동파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스님에게 드리는 그림을 훔치는 자가 있다면, 그의 후손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고 그림도 그들의 손에 오래 있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도난당하고 싶지 않은 것은 스님의 일이고, 훔치고 훔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의 일입니다. 다만 스님께서는 이 그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보호해 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소동파는 세상 물건이 다 인연법에 따른다는 것을 알기에 그 스님을 통해 진기한 그림을 세상 사람들에게 내 주었다. 불가에서는 이를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 말한다. 모든 인연에는 그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사람과 물건과의 만남도 그 때가 있는 것. 자신과의 인연을 넘어 세상 사람과 인연을 맺도록 소동파도 스님에게 그림을 맡긴 것이 아닐까한다.

지난 여름 뜻하지 않은 귀한 선물을 전달받았다. 한 지인이 이제는 진정 의미 있게 사용할 사람에게 가야 한다며 물건 하나를 건네주었다. 건네받은 오래된 사진과 자료들은 전설의 무용가 최승희 선생과 관련된 것으로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지난 해 최 선생의 생일에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천도재를 지내준 인연으로 선물을 받은 것이다.

한국 무용을 전공하는 그 분은 최 선생의 친척으로부터 관련 사진과 자료들을 받은 후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는 데, 오랜 시간 잊고 있다가 나를 만나고서야 생각이 났다고 했다. 자신이 계속 보관하기보다는 한국무용 발전을 위해 활용될 수 있도록 나에게 그 자료를 건네준 것이다. 아마도 시절인연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얼마 전 대학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가의 집에서 “한국 춤 세계화의 그리 오래지 않은 미래”라는 주제로 ‘최승희의 춤’ 학술심포지엄이 열렸다. 중국, 미국, 멕시코 등 최 선생이 활동 했던 국가의 무용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과 시연을 가졌다. 세계인들은 최초의 한류스타인 최승희를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그녀의 춤을 인정했다. 하지만 홍천의 최승희 축제가 여론에 밀려 중단된 것처럼 우리는 최승희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오는 12월 21일 서울 광진구의 아트센터에서 최승희 관련 희귀 사진전 및 작은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지금까지 최승희와 관련된 공연은 많이 있었지만 그 이름만 내걸었을 뿐 진정으로 최승희의 뜻을 되살리는 행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에 크지는 않지만 최승희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원상생의 장을 마련하려 세상과 공유하려한다.

촛불을 하나 들고 있으면 내 주위만 밝아진다. 촛불을 여럿이 나누면 세상이 밝아진다. 스님이 소동파에게서 그림을 맡았던 마음으로 최승희 연구자가 나오면 선물 받은 자료들을 넘겨주면 내 소임은 다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빌린 것은 다시 세상에 내놓는 것이 순리라 생각한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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