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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53. 견리사의(見利思義)의 중심은 분별

입력 : 2016-11-02 04:45:00 수정 : 2016-11-01 18: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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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신문을 보다가 한 칼럼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견리사의(見利思義, 이로움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라)’.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난 요즘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얘기하며 사자성어로 칼럼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김영란법이 처음 시행될 때 공직자들은 혼란스럽고 불편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거절하기 곤란한 청탁과 모임이 많이 사라져 자기 일에만 전념하게 됐다고 말한다. 물론 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도 없지 않다. 특히 골프장은 물론이고 식당이나 꽃가게들이 직격탄을 맞아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법 시행 이후 이른바 “아무 것도 하지 말라”가 유행이다. 지금 우리 공직사회와 기업들의 움직임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지만 그 여파가 만만치 않다. 기업의 후원에 의지하는 공연계가 특히 그렇다. 기업의 협찬이 많은 대극장 공연의 경우 티켓 값이 5만원을 넘는 공연이 많아 기업들이 협찬을 꺼려하고 있다. 클래식업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티켓 판매량이 약 15% 정도 줄었다고 한다. 연말에 티켓을 대량 구매해 초대권으로 나눠주던 관행들이 법의 저촉으로 사라지면서 티켓 판매에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고. 어쩔 수 없이 티켓 가격을 낮추게 되니 관람객들은 좋아할지 모르나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세계적인 공연은 앞으로 보기 어려워질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남은 의(義)마저도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공자(孔子)는 의(義)를 쫓으면 대인이고, 이(利)를 쫓으면 소인이라고 했다. 공자(孔子)의 기준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소인 천국일지도 모른다. 곳간이 차야 인심도 난다는 말처럼, 우리가 살면서 이(利)보다 의(義)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얘기다. 이(利)가 없는데 누가 행동에 나서려 하겠는가.

그런데 그런 생각을 깨우쳐 준 사건이 있었다. 1988년경의 일이다. 미국 연수차 3년간 한국을 떠나 있었던 고위직 공무원 L씨가 돌아와 증권회사 지점장 친구인 K씨를 만나는 자리에 내가 우연히 동석한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친구끼리 회포를 푸는 자리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두 사람 사이에는 3년간 입도 뻥끗 못할 일이 있었던 것.

1985년 L씨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3년 뒤 내가 돌아올 때 지금의 재산을 조금만이라도 불려 주었으면 하네. 자네도 알지만 내가 돈 굴리는 재주가 없어서 말이야” 하며 오랜 친구인 K씨에게 부동산을 정리해서 맡겼다. 많진 않았지만 제법 쏠쏠했던 친구의 재산을 맡은 K씨는 순간 당황도 했지만, 자신을 믿어주는 친구가 고마워 가장 유망하다는 업종의 주식에 모두 투자를 했다. 워낙 전망이 좋은 기업들이라 안심을 했다.

그런데 머피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K가 신경 쓰면 쓰는 만큼 주식은 하향곡선을 그렸다. 처음에는 그래도 원금은 회복하는가 싶었는데 점점 상황이 안 좋아지더니 L씨가 돌아올 때쯤에는 맡겨놓은 재산의 대부분이 사라지고 4분의 1만 남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아무리 오랜 친구라 하더라도 분명 화가 났을 법도 한데, 뜻밖에도 L씨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다 내가 돈 복이 없어 그러네. 괜히 자네에게 피해만 끼치게 되었구먼. 이런 일로 우정이 상하면 안 되지. 안 그런가?” 자리를 함께한 내가 듣기에 L씨의 말은 가식적인 용서와 화해의 말이 아니었다. 그 말 속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다. L씨는 내 조언을 받아들여 몇 년 후 제법 큰 재산을 만들 수 있었다.

의(義)는 사리를 분별해서 마땅함이 있으며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을 다하는 것이다. 즉 의(義)와 이(利)의 차이는 분별(分別)에 있다할 것이다. 이(利)를 취한다 해도 분별이 있으면 의(義)가 될 수 있고, 의(義)를 따른다 해도 분별이 없으면 이(利)가 된다 할 것이다.

요즘 정국을 흔드는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 새삼 의(義)가 무엇이고 이(利)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에서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의 인연을 생각해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대통령은 나름 의(義)를 보여준 것 같은데 분별없는 그것이 국가의 기강을 흔드는 꼴이 되고 말았다.

맹자(孟子)는 “위와 아래가 서로 이익만을 취하면 나라는 위태롭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면서 이(利)도 문제지만 나라를 더 위태롭게 하는 것은 지도층의 분별없는 의(義)가 아닌가 생각한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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