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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55. 불혹을 넘긴 어느 가수의 무대

입력 : 2016-11-09 04:40:00 수정 : 2016-11-08 18: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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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을 대상으로 신인가수를 발굴하는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매년 가수의 꿈을 지닌 수천 명의 참가자들 중에서 혹독한 미션과정을 통과한 최고의 실력자가 우승을 거머쥔다. 그 후 우승자는 정식으로 가수로 데뷔하고 각종 연예프로그램에서 활약을 한다. 성공스토리를 보는듯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동안 여러 가지 잡음이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해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일찍부터 가수의 꿈을 키우려는 어린 학생들의 참가다. 마이크 앞에서 노래하는 앳띤 얼굴에서 스타가 되고픈 열정을 보면서 몇 년 전 대학로스타시티 극장에서 있었던 일명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콘서트가 생각났다. 그는 감탄을 자아낼 만큼 현란한 기타연주 솜씨와 남자로서 기교 없이 곱고 청아한 목소리는 300석 관객들의 영혼을 촉촉이 적셨다. 비록 불혹을 넘긴 무명가수였지만 무대에 서 있는 모습에서는 그것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기타를 처음 잡았을 때 특이하게도 통기타 포크보다 젓가락 장단의 트로트에 매료됐다고 한다.

그의 내공은 무대 가수보다 걸쭉한 막걸리를 연상케하는 생활가수로 쌓였다. 불특정 시청자를 향한 일방적 메아리가 아니라 객석의 청중들과 끈끈하게 눈빛을 주고받는 가운데서 켜켜이 다져졌다. 트로트, 포크송, 팝송 등 매 곡마다 장르를 넘나들며 각박한 세상살이에 질식되었던 감성을 일깨웠다. 왜 이런 실력 있는 가수가 지금까지 초야에 묻혀있을까. 300명만 듣기에는 너무도 아까웠다. 가수는 무대 중간 중간에 우스갯소리처럼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파편을 회고했다.

제주도가 고향인 그는 섬이 답답해 중학교 때 무작정 뭍으로 탈출했다. 일찍부터 뛰어난 기타 실력과 청아한 목소리로 가창실력을 인정받자 통기타 라이브 무대에서 연일 러브콜이 쇄도했다. 그는 출연료를 받는 대로 지인들과 술을 마시며 하루하루 즐기며 보냈다. 이런 행복이 영원할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기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눈에 뛰게 줄기 시작했음을 알았다. 술과 담배에 찌든 그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노래를 사람들이 외면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불혹이 내일모래였고, 거울 앞에는 앨범하나 없는 빈털터리 노총각 무명가수 한 명이 홀로 서 있었다.

씁쓸함에 무작정 걷다보니 어느 새 한강까지 가게 됐다고.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생각했다. 하늘이 내게 준 재능은 음악뿐이라 늦었지만 유서처럼 세상에 앨범 한 장을 남기기로 했다. 한 때는 주머니가 넉넉하여 돈 걱정을 안했는데 막상 앨범을 내려하니 수중엔 돈 한 푼이 없었다. 3년 동안 절치부심해 드디어 한 장의 CD을 준비했다.

그러나 몸은 기타마저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어있었고, 공들여 만든 앨범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흔적이 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결심을 했다. ‘가수로서 앨범까지 만들었으니 팬들이 찾아와 줄지는 하늘에 맡기자. 그러나 팬들이 찾을 때는 언제든지 무대에 설수 있는 나를 준비하자.’

그는 제일 먼저 술과 담배를 끊었다. 하루하루 팬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청중 없는 가수로 100일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고, 다시 200일이 지났다. 그리고 그렇게 300석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그는 무대에서 싱겁게 웃으며 지나가듯 말했다.

“화려했던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이만큼 온 건만도 다행이에요. 비록 가난하지만 저는 지금의 내가 좋습니다. 내 재능만 믿고 시련 없이 일찌감치 스타가 되었다면, 이 나이에 제가 얼마나 교만해져 있었겠어요. 그리고 이런 노래도 부를 수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공연은 끝이 났다. 흔한 말로 그는 스타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 사람에게 그는 분명 스타였다. 비록 나이는 불혹을 넘겼지만 경륜에서 나오는 노래는 아이돌가수의 어느 노래보다 더 가슴을 울리고 있었다. 대학로에는 오늘도 스타를 꿈꾸며 작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처음 먹었던 마음을 끝까지 잃지 말고 간직할 수 있다면 스타는 아니더라도 실패는 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무대가 있는 한 그 사람은 스타이고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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