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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60. 슈퍼컴퓨터와 농부

입력 : 2016-11-28 04:40:00 수정 : 2016-11-27 18: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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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은 올 겨울 날씨는 기온 변화가 크고 추운 날이 많을 것으로 예측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날씨의 변화는 점점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경북 지역의 지진사태로 한반도 재해에 대해 근심이 커졌다. 지구촌 기상이변으로 예년보다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재산 피해까지 커지는 상황에서 많은 나라들이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기상예보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 해결책으로 연산속도가 빠른 슈퍼컴퓨터를 도입하고 기상위성을 쏘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자연현상을 정확한 값으로 산출할 수 있을까.

사실 기상변화를 예측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이 자연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인간이 자연에 대해 알아낸 것도 극히 일부분이고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기상 변수 때문에 슈퍼컴퓨터나 기상위성 같은 첨단 시설과 전문 인력을 보유하고 있어도 100%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미 국립기상청도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슈퍼컴퓨터와 기상위성을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예보가 빗나가기는 마찬가지다. 예보가 빗나가면 그것은 바로 재앙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기상청의 일기예보 정확도는 국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오보청’이라는 불명예를 쓰고 있다. 지난 여름 기상청의 예보가 빗나가 비난을 받자 기상청은 그 대책으로 10년 내에 유능한 예보관 100명을 키워내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수백억 원의 슈퍼컴퓨터가 있지만 기상예측에 있어 컴퓨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40% 정도라니 결국 최종 판단은 사람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상청에 인력이 부족하다하니 이를 어찌하겠는가.

겨울철 기상예보를 얘기할 때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1998년의 일이다. 우리나라 기상청은 그해 겨울 기록적인 한파가 닥칠 것이라고 예보했다. 그 예측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11월 중순 경 온도계는 예년보다 빠르게 밑으로 내려갔다. 기상관측 전문가들은 ‘라니냐’ 현상과 결부해 과학적 해석을 곁들였고, 겨울 내내 혹독한 추위가 맹위를 떨칠 것이라고 했다. 그 예보를 들은 시민들은 월동준비에 나섰고 난방기구와 방한복이 불티나게 팔렸다.

기상청의 예보와는 달리 시골의 한 농부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글쎄요. 올 겨울은 별로 추울 것 같지 않은데....” 농사를 짓는 일개의 촌부가 그런 생각을 한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김장 무가 위로 떴거든요. 뿌리가 깊이 박히면 그해 겨울은 춥고, 얕게 박히면 춥지 않아요.” 그해 겨울 날씨는 모든 관측 기상자의 예상을 빗나갔다. 농부의 말대로 그해 겨울은 평년기온보다 높은 기온이 내내 이어졌다.

농부는 과학적 데이터를 가지고 날씨를 예측하지 않지만 매년 심는 무의 상태를 보고 날씨의 변화를 인지한 것이다. 기상청이 첨단 기계와 전문 인력을 갖고 있어도 때로는 시골 농부만 못할 때가 있는 것. 슈퍼컴퓨터로는 결코 알 수 없는 무형의 경험을 통해서 말이다.

“옛날 일본의 에도(江戶)는 벌판이기 때문에 바람이 많이 붑니다. 그래서 바람이 많이 불면 먼지가 많이 일어나고, 먼지가 많아지면 눈병 환자가 많아집니다. 눈병 환자가 많아지면 시각장애인이 많아집니다. 시각장애인은 일본 전통 악기인 샤미센을 키는데, 그 샤미센은 고양이 가죽으로 제작합니다. 그래서 고양이가 많이 희생당합니다. 고양이가 많이 죽으면 쥐가 많이 성해지고, 쥐가 많아지면 집안가구가 많이 상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가구장사를 시작했는데 실패했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면 바람이 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생각에 생각이 더해지면 본말(本末)이 전도된다. 데이터가 많고 생각할 게 많아지면 자칫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 지난 22일 일본에서 진도 7의 지진이 발생했다. 일본 기상청은 쓰나미를 예상하고 후쿠시마현(縣) 주민에게 대피를 지시했다. 하지만 1.4m의 높은 쓰나미가 발생한 곳은 처음 예보했던 곳이 아니라 이웃인 이바라키현(縣)이었다. 뒤늦게 경보가 내려졌고 주민의 강제 피난지시가 발령됐다. 큰 피해는 없었지만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여러 나라가 기상변화 예측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경제적 피해를 막기 위함도 있지만 그로 인한 이익도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구 파괴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상청의 일기예보 적중률을 높이기 위해서 무를 심는 농부나 비가 올 때면 무릎이 아픈 노인들을 기상청 예보관으로 채용하지는 아닐지라도 천재(天災)를 인재(人災)로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슈퍼컴퓨터와 기상위성은 결코 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지혜가 우리 인간에게는 있다 할 것이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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