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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61. 촛불을 들지 않게 하는 사회

입력 : 2016-11-30 04:45:00 수정 : 2016-11-29 18: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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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에 시민혁명(市民革命)이 진행 중이다. 주말마다 광장에서 벌어지는 시민들의 자발적 촛불집회가 그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실정(失政)을 알아버린 국민들이 대통령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하며 평화적으로 정치적 변혁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혁명은 세계 민주주의 발전사에서 고비마다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유럽에서 절대왕정을 타도하고 국가권력을 시민에게 넘긴 정치변혁이 본보기이다.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 시민혁명 등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찾기 위한 국민들의 자구책이었다. 이런 시민혁명은 자국의 큰 변혁을 이루었고 이웃 국가들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줬다.

우리는 불의에 항거하는 시민혁명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60년 4.19혁명이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 및 비민주적 행위를 규탄하기 위해 전국의 국민들이 함께 항거하여 끝내 이승만 당시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 1990년 4월 18일자 경향신문의 ‘부단(不斷)의 시민혁명(市民革命)으로 승화를‘이라는 제목의 특별좌담에서 고영복 당시 서울대 교수는 4.19혁명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4.19는 우리 역사 속에서 민중 또는 국민이 자발적으로 정치체제에 비판을 가하고 지향해야할 바를 ‘밑으로의 혁명’ 또는 ‘옆으로의 혁명’이라는 형태로 이뤄냈다는 점에서 아무리 높이 평가 받아도 남음이 없다.”

지난 26일 첫눈이 내리고 비까지 섞인 추운 날씨에 나는 촛불집회 참가자가 전보다 줄어들지 않을까 예상했다. 하지만 전국에서 모인 집회참가자는 약 190만 명으로 헌정사상 최대 규모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청와대를 동·남·서쪽으로 포위하듯 에워싸는 ‘청와대 인간 띠 잇기’가 처음으로 선보였고, 밤 8시 ‘1분 소등’ 행사도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경찰에 연행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는 전체적으로 시위라기보다는 평화로운 축제한마당이었다.

세계 유수의 언론들은 대한민국의 촛불집회를 ‘가족을 동반한 평화적인 시위’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축제 같은 시위’라고 보도하고 있다. 지금 세계 여러 나라는 한반도의 정치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북한과 중국은 촛불집회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을까. 남의 이야기처럼 보고 있지만 혹 자국에 영향은 없는지 우려하고 있지는 않을까.

북한은 발 빠르게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촛불시위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민중의 분노는 비정상적인 사회를 더 이상 두고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주장하며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보는 북한주민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의문이다. 작은 촛불이 모여 불의에 대한 저항과 변화에 대한 의사표시로 큰 힘을 갖는다는 것을 눈으로 보았을 테니 북한사회에 큰 역풍이 불까 걱정할지도 모르겠다.

중국 역시 우리의 촛불시위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편안하게 보고 있지만은 않을 듯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은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으로 이뤄져 있다. 중국 내 소수민족은 인구는 전체 8.5%를 차지하고 있지만, 영토는 64%, 지하자원은 43%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발전을 위해 이들의 분리 독립요구를 중국은 절대 들어줄 수가 없는 입장이다. 그래서 중국정부는 소수민족도 중국인임을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있고 동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멀지도 않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촛불시위가 중국내 소수민족들에게 다시 한 번 분리 독립욕구를 가질 수 있도록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 중국과 사업을 하는 한 지인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중국 사업가와 일을 할 때 700년 주기설을 이야기하면 그들은 크게 웃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지인의 말은 이렇다. 중국 당나라는 고구려를 쳐들어왔다가 실패했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망했다. 임진왜란 때는 곤경에 빠진 조선을 돕기 위해 군사원조에 나섰다가 명나라가 망했다. 두 사건이 700년 간격으로 일어났으니 돌아오는 700년이 되는 어느 시점에 중국이 한국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물론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세상일이 인과관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할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다른 나라에 비해 그 역사가 짧은 편이다. 몇 차례의 시행착오도 겪었고 보다 나은 삶을 갈구하는 변화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래서 촛불이 타오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국민이 겪어야 하는 아픔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와 학생이 거리에서 촛불을 들지 않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일 것이다. 바람이 있다면 190만 명이 불가피하게 선택한 이번 촛불집회가 대한민국의 마지막 촛불집회였으면 한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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