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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65. 수복강녕도 그림 그리기 나름

입력 : 2016-12-14 04:45:00 수정 : 2016-12-13 19: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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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복강녕(壽福康寧)처럼 행복을 축약해서 나타낸 말이 있을까. 수(壽)는 장수를, 복(福)은 재물을, 강녕(康寧)은 건강하게 근심 걱정 없이 편하게 사는 것을 뜻한다. 이 모든 것이 있으면 인간은 행복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중에 강녕(康寧)이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바가 아닐까 한다. 물론 재물이 있어야 강녕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인생을 살아보니 몸 건강하고 마음 편한 것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재산이 제법 있는 지인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새로 시작하게 적당한 사업체 하나를 추천해주세요.” 자리에 앉자마자 이렇게 말을 꺼냈다. 수십 억 부자라는 소리 들으며 사는 사람이 다소 황당한 요청을 하니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는데 사연을 들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지인은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게 있기는 했지만 나름 중소기업을 열심히 운영하였다. 재테크에도 성공하여 중년에 평생 쓰고도 남을 재산을 모았다. 더 이상 노후걱정을 안하고 살아도 될 정도였다. 그는 여생을 재미있게 살기로 마음먹고 사업체를 정리했다. 부부가 노후에 살 집만 남기고 재산을 모두 현금으로 바꾸어 은행에 넣었다. 이자만으로도 살 수 있는 ‘금융 생활자’가 된 것이다.

한동안 그는 노후생활의 꿈을 그대로 실천했다. 전국의 맛집과 명산명소를 돌며 지방 축제란 축제는 다 찾아다녔다. 낚시도 하고 한적한 시간에 골프도 즐기며 마음껏 취미와 레저 생활을 즐겼다. 그렇게 돈 걱정 없는 1년이 흘러갔다. 그런데 1년 뒤 그는 달라져 있었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날이 늘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건강까지 해쳐가며 바쁘게 생활했던 그 시절이 다시 그리워졌다.

그는 마침내 ‘도저히 안 되겠다. 다시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하자니 뜻대로 되지 않았다. 편한 생활에 길들여진 몸이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날릴까봐 쉽게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땀 흘려 모은 수십억 재산이 그에게는 꿈이었다. 그래서 일은 하면서도 위험성이 적은 프랜차이즈 가게를 인수해도 좋은지 내 의견을 물으러 온 것이다.

내가 보기에 지인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한 사업체가 아니었다. 꿈에 그리던 ‘돈 걱정 없는 생활’을 이루었으면서도 그 속에서 밀려오는 걷잡을 수 없는 ‘인생의 허무’가 무엇인지 그 정체부터 각성해야했다. “절망 속에 희망이 있고, 고생 속에 기쁨이 있고, 부족함 속에 성취가 있습니다. 그리고 불행 속에 행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부족함이 없으니 무슨 기쁨과 행복과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는 내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세요. 인생 전반기엔 사장을 하셨으니, 후반기엔 종업원으로 한 번 살아보세요, 남들은 한 생도 온전히 살기 힘든데 당신은 두 번이나 사는 행운을 갖게 될 겁니다. 체면을 버리고 다시 욕심을 가지세요. 인생을 이모작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분의 고민은 어찌 보면 남들은 갖기 힘든 행복한 고민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그분이 나를 찾아온 것은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복(福)은 있지만 강녕(康寧)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기왕에 다시 일을 시작할 바엔 사장이 아니라 종업원으로 출발하라고 했다. 종업원으로 바쁘게 일하면 즐거움이 있고 근심도 사라질 테니 말이다. 게다가 모아놓은 재산을 까먹을 걱정이 없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인생 후반기엔 돈 모으는 것보다, 돈 쓰는 법을 터득해보세요.”

넓은 바다를 본 사람은 웬만한 강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부족함 없는 삶이 새로운 시작에 있어서는 때론 독이 될 수 있다. 인간은 부족함, 장애, 유한함이 불행의 원천이라고 하지만 마음 하나 바꾸면 그것이 행복의 근원일 때가 있다. ‘화엄경(華嚴經)’에 보면 ‘심여화사’라는 말이 있다.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도 같다는 뜻이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마음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삶과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세상에는 인생의 그림을 새로 그리고 싶은 사람이 많다.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강녕(康寧)의 행복도 그것이 아닌가 한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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