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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67. 문화를 파는 상인

입력 : 2016-12-21 04:40:00 수정 : 2016-12-20 18: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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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와 사업은 어떻게 다른가. 이 둘은 단지 규모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다. 사업의 프레임은 장사와는 다르다. 장사꾼은 물건을 팔고, 사업가는 물건과 사람의 마음을 같이 판다. 물건에 혼을 담고, 정신을 담고, 문화까지 담을 줄 알아야 사업가라 말할 수 있다. 물건 하나를 팔더라도 문화를 곁들이면 그건 장사가 아니라 사업인 것이다.

조선시대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상업을 가장 천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상(松商)이라고도 불린 개성상인들은 번창했다. 전국 상권을 장악하고 조선 경제를 좌지우지 했다. 철저한 계급사회 아래 열악한 조건에서 어떻게 이태리의 베니스 상인, 중국의 화교 상인, 유대 상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상인이 될 수 있었을까. 개성상인을 파헤친 수많은 논문과 서적이 많지만 한 가지 놓친 게 있다. 그건 바로 문화다.

고려시대부터 형성된 송상은 개성에 인접하여 물자를 유통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 개성의 해상(海商) 출신인 왕건(王建)이 고려 임금이 될 정도니 상업에 차별이 없었다. 예성강과 벽란도를 국제무역항으로 삼아 대외 무역이 번성하면서 국부를 창출하였으니 개성은 일국의 수도이면서 명실 공히 상업도시였다. 서양에 ‘KOREA(고려)’라는 이름이 알려진 것도 그때였다. 하지만 명석한 상인들이 대거 벼슬에 나감으로서 상업은 서자나 낮은 신분으로 점차 밀려 퇴색하기 시작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많은 고려 유신들이 새 왕조에 반대하여 벼슬을 하지 않았다. 그 유지는 조선시대 내내 대대손손 이어졌다. 입각하지 않는다는 가훈을 어길 수 없었던 터라 재야 지식인들은 상업에 나서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고려를 유지했던 세력들이 다시 개성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하지만 그 당시 개성상인들에게는 격(格)이 없었다. 눈앞의 이익만을 챙기고, 유통질서 대신 주먹과 권력을 업은 상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복귀한 지식인, 개성상인은 한 국가를 경영하던 문화의 기풍을 그대로 이어 장사에 ‘품위’와 ‘신용’이란 철학을 심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는 패배했지만 경제적으로 재기를 꿈꿨다. 그리고 상술이 아니라 문화를 곁들인 상도(商道)를 세워나갔다. 상거래 도덕과 철학을 명시하여 이를 지킬 수 있는 품격의 인물만을 계원으로 받아들였다. 지금으로 치자면 멤버십 클럽을 만든 것이다. 더욱이 명석한 두뇌를 활용하여 공정한 상업 규칙을 만들었으니 이미 서양보다 2세기나 앞선 ‘사개송도치부법(四介松都置簿法)’이라는 독특한 복식부기를 고안하여 현장에서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개성상인들에게 최대의 위기가 닥쳤다. 조정은 민간상인에 의한 무역을 금지하고 국가에서 임명한 관납상인들에게 무역상품의 조달권을 주고 주요 상거래 품목마저 독점하게 하였다. 상인이 거래 상품을 제한받으니 하루아침에 백화점에서 무자료 노점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개성상인들에게 이보다 더 큰 재앙은 없었으리라.

그러나 개성상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고품격 정서와 문화의 토대가 굳건했다. 관납상인과 대적할 상거래 방법을 고안하고 공유하고 조직화했다. 먼저 관료적이고 고압적인 관납유통체계의 허점을 노려 포목, 양태, 홍삼 등 전문성을 가진 품목과 전국적 유통망인 행상(行商)을 조직하여 확고한 기반을 다져나갔다. 요즘으로 치면 프랜차이즈 시스템이다. 명분에 치우친 조선사회에 합리와 실리라는 실학운동에 불을 지핀 것도 바로 개성상인들이었다. 이런 상업 문화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그 가혹한 일제 강점기 때도 민족자본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문화를 경제상품의 한 품목으로 생각한다. 산업 활동 후에 뒤풀이하는 배설적인 여흥이라고 여긴다. 이는 대단히 큰 착각이다. 문화가 없는 경제는 인간 없는 수치놀음이며 모래성과 다를 바 없다. 오늘날의 강대국은 상품을 수출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문화를 수출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의 빈자리에 저절로 채워지는 것이 문화다. 문화역량이 바로 경제의 척도인 것이다.

문화란 사람의 시류다. 그 옛날 송상(松商)은 단지 물건만을 팔지 않았다. 거기에 문화를 곁들여 사업을 하였다. 상인정신이 죽으면 그 장사는 오래가지 못한다. 장사는 혼이요, 문화도 혼이다. 그래서 상혼이라 말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 세상 최고의 장사꾼은 누구인가. 아마도 문화를 파는 상인이야말로 최고의 사업가일 것이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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