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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의 비포&애프터] 오키나와에는 없고 고척에는 있던 것

입력 : 2017-03-13 13:20:33 수정 : 2017-03-13 21: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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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이지은 기자] ‘사람들은 스포츠 영웅들이 심한 부담감 속에서 더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을 뒷받침해줄 통계학적 근거는 없다.’

심리학자 헨드리 와이신저와 성과 향상 전문 코치 J.P 폴루-프라이는 공동집필 저서 ‘나는 왜 잘하고 싶은데 잘하지 못할까?(Performing Under Pressure)’에서 ‘위기에 강한 선수(clutch player)”라는 개념은 환상이라고 말한다. 사람이라면 특정 상황에 대한 결과가 자신의 평판에 크게 영향을 미칠수록 자연스레 불안감은 커지고 성적은 악화된다는 것. 그렇다면 부담이 극대화 되는 승부처에서 영웅은 어떻게 탄생하는 걸까. ‘실패해도 괜찮다’는 여유와 부담감을 즐길 자신감이 있어야 것이 두 저자의 제안이다.

너무 뻔한 진단에 콧방귀를 뀌며 책을 덮었던 게 불과 3월초다. 하지만 약 1주일여가 지난 시점에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한 달간 WBC 야구 대표팀을 취재했던 야구 기자의 눈에 3월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의 그들은 2월 오키나와 구시카와구장에서의 그들에게는 없었던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공인구가 미끄럽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변화구가 마구가 될 것 같다”며 웃던 투수진의 여유는 “직구가 빠져서 자꾸 뜬다”는 우려로만 남았다. “타격감이 오늘 올라오면 내일 떨어질지도 모른다”며 너스레를 떨던 타자들은 평가전 내내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고도 “막상 대회에 들어가면 더 좋은 투수들이 나올 것이다”라며 울상을 지었다. “지나간 것은 다 잊어버리고 있는 것 안에서 최대한을 뽑아내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김인식 감독이었지만, 이겨야할 경기를 패하고 나자 ‘만약 모 선수가 있었더라면…’이라는 가정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잃고 싶지 않은 타이틀에 대한 스트레스는 위기 상황에서 가장 커지는 법이다. “우리나라에서 번트를 가장 잘 댄다”고 평가받던 타자는 캠프 내내 번트 연습에 열을 올리고도 정작 실전에서는 번트에 실패하며 타석에서 허무하게 물러나야했다. 제구력으로 정평이 나있던 투수는 침, 로진, 진흙 등 공인구 적응을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로케이션에 너무 신경쓰다가 장타를 맞았다”고 고백했다. A조 4개국 중 역대 최고 성적을 자랑하던 한국이 ‘1라운드 탈락’이라는 의외의 성적표를 받아든 것 역시 결국 같은 맥락이 아닐까. 오키나와에는 없고 고척에는 있던 것을 곱씹어야 하는 이유다.

number3togo@sportsworldi.com 

사진=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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