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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3-22 04:40:00, 수정 2017-03-22 04:40:00

[차길진과 세상만사] 90. 아카시아 향기가 사라진 봄

  • 봄은 꽃의 계절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이 기지개를 피면서 싹이 나고 꽃이 피니 세상이 다 환해진다. 봄꽃이 아름답고 화려한 것은 긴긴 겨울을 보내고 난 후에 핀 꽃들이라서 더욱 그렇다. 춥고 힘들었기에 봄꽃은 더 아름답고 더 향기롭고 더 고귀하게 느껴진다. 힘겨운 시간을 견딘 인간의 마음도 곧 꽃의 마음 아니겠는가. 순백의 겨울에 피어나는 꽃에서 사람은 인내를 배우지만, 봄꽃에서는 아름다운 사랑을 배운다. 그래서 자연을 오묘하다 말하는 것이다.

    우주 만물의 이치는 하나인 것 같지만 그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다른 요소들이 공존한다. 물 한 방울도 더 작은 물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꽃 한 송이도 많은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 한 방울도 하나의 우주법계이며 꽃 한 송이 역시 하나의 법계인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세상은 봄이라 하는데 지구촌 어디에서는 계절을 느낄 수 없는 이상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다. 얼마 전 미국 북동부 지역에 내린 폭설로 인해 최소 15명이 사망하고 정전과 교통이 마비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페루에서는 집중호우로 72명이 숨지고 홍수와 산사태 등으로 전 국토의 절반가량이 피해를 봤다고 한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변화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 인간이 자초한 결과일 뿐이다. 자연은 때때로 인간에게 이상 신호를 보내준다. 인간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예상치 못한 피해를 입는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일이다. 저잣거리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재상에게 보고가 들어왔다. 하지만 재상은 듣고는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그것은 관할 관청에서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잣거리에 큰 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재상은 크게 놀라서 자세히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심상치 않은 일들을 예고하는 자연의 경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커다란 재해가 임박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재상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난해 대한민국은 이상 징후가 있었지만 알지 못했다. 뒤늦게 울리는 경종을 듣고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잡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나섰고 슬기롭게 대처해 나갔다. 이제는 대한민국에 봄이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따뜻한 봄바람은 한반도를 향해 불지 않고 있다. 미국은 대한민국이 정치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사드 배치작업을 시작했고, 중국은 그것에 대한 보복으로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더욱 더 강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어린 아이까지 동원하는 등 반한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그리고 일본은 소녀상 설치를 이유로 대사를 송환하고는 아직도 돌려보내지 않고 있다. 자국의 이익만을 챙길 뿐 우방이라 말하기가 어려운 행동들을 보이고 있다.

    봄은 저 멀리 남쪽에서부터 올라온다. 그 남쪽도 아직은 겨울인가 보다. 찬바람 부는 조선소를 생각하면 지금 대한민국은 봄은 왔지만 봄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한 지인은 봄이 되면 향기를 뿜어주던 아카시아 나무에서 아무런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 사저로 들어간 대한민국은 지금 심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탄핵결과에 대해 세대 간 갈등이 생각보다 심화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견해가 서로 다른 것은 당연한 것. 그런데 그 견해차가 고질적인 지역갈등보다 더 커지는 것을 보면 이러다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 질서마저 혼란스럽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봄은 이미 옆에 와 있지만 그 따스함은 느낄 수가 없다.

    우리는 37년 전 무척이나 짧은 서울의 봄을 맞은 적이 있었다. 그해 봄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정유년 새봄은 그렇지 않으리라. 봄은 차가움과의 이별이며 힘든 시간과의 작별이다. 어제 겪은 정치적 시련 때문에 잠시 흔들림이 있어도 내일을 강하게 만들 것이다.

    아카시아 나무에서 향기가 나지 않는다는 지인의 말을 되새기면서 순리를 역행하는 것이 인간일지라도 봄은 오고 봄꽃의 향기 또한 퍼져나갈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환국이며 봄은 새로운 탄생이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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