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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④] 한국 여자 축구, 북한 하늘 아래 어느날

입력 : 2017-04-13 10:06:00 수정 : 2017-04-13 09: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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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취재단=스포츠월드] “남측 축구협회에서 오셨습네까?”

자정쯤 호텔 방으로 돌아와 창문을 열어보니 사방은 어두웠다. 호텔 창문 너머로 멀리 주체사상탑이 보였다. 주체사상탑과 김책공대의 김부자 초상만 홀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한국 여자 축구는 그렇게 날이 적당한 어느 날에 북한 땅을 밟았다.

▲첫째날

순안국제공항에서 처음 이야기한 북측 주민들.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 북측 공항 관계자는 "축구협회에서 오셨습니까"하고 물었다. "네. 이쪽에 서면 되나요?" 평범한 대화가 오갔고, 어디 기자인지 물어보는 생각보다 단순한 입국 절차를 마치고 마침내 북녘 땅을 밟았다. 선그라스를 낀 채 의자에 앉아 있던 한 사람. 나이키 신발을 신고, 샤넬 백을 맨 여성들도 보였다. 세상 모르고 어리둥절한 어린아이가 할머니 품에 안겨 있었다. 청량음료점의 점원은 밝게 웃었다.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구나. 그렇구나. 지래 겁먹었던 내 모습이 그제야 보였다. 익숙하다고 느낀 '평양'의 세계에 발을 들이자 모든 게 낯설고 눈에 익었다. 내 나라 말을 하는 이들이 자리에 앉아있는 입국 심사대에서, 내 컴퓨터를 살펴보던, 내 핸드폰을 들여다 본 세관원은 '전화카드는 저쪽에서 살 수 있습니다. 연락관에게 문의하세요"하고 말하는 폼 새가 제법 낯이 익었다. 낯익은 낯선 도시에 들어서니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택시가 의미없이 공항 도로를 한 바퀴 돌았고, 평양 거리의 사람들은 할 일 없이 거리를 거닐다가 한국 선수단과 기자들이 탄 버스를 쳐다 봤다. 김일성경기장이 보였고, 만수대도 보였다. 사진과 선전 구호. '제7차대회 결정 관철에로'라는 문구.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것처럼 보인 아이들. 사진기자가 찍은 사진에 초상화가 가로수에 가리자 "제대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민화협(민족화해협의회) 사람들. 아들이 여덟살이라던 북측 관계자.

▲연락관

북측 연락관들은 민화협 소속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민화협, 통일전선부 산하 조직으로 알려졌다. 주로 남북 회담이나 민간 교류 시 방북 인원들을 통제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출근 시간은 오전 8시쯤이고, 퇴근 시간은 오후 6시 반에서 7시라고 한다. 주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평소엔 남측 뉴스를 살펴보고 아침 신문 등을 정리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아 그밖에 무슨 일을 하는지, 남측 뉴스를 어떻게 보는지는 알기 어렵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북측 관계자들이 "선생은 주몽에 나오는 그 어떤 배우를 닮았다"고 했고, '주몽을 보셨냐'고 되묻자 "물론 다 봤다"고 답했다. 결국 한국의 뉴스나 드라마 등은 일부 북한 사람들에겐 접하기 쉬운 것일 수도 있었다.

민화협사람들은 항상 남측 뉴스를 살펴보니 남측 정세 빠삭하다. 광화문 인근에 회사가 있다고 하자, "그럼 그 최근에 광화문에서 복잡한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라고 묻고는 "전 선생께서도 광화문에 나가보셨습니까"하고 물었다. 최근 계속된 촛불시위를 거론한 것이다. 지나가다 본 적은 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간다더라 하고 대충 말을 하니 남측 선거 이야기를 화두로 꺼낸다. 북측 연락관들은 기자들이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해 호텔로 향하는 버스에서 "망신스러운 일(탄핵)이 있지 않았습니까",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겠습니까", "안철수 선생이 문재인 선생을 많이 따라잡은 것 같던데.", "누구에게 투표할 겁니까" 하는 이야기를 물었다. 최근 뉴스도 정확히알고 있는데, "세월호는 물 위로 올라오지 않았습니까", "박근혜가 세월호 때 주사를 맞은게 사실입니까", "탄기국, 그 탄핵기각을 위한 .. 이 박근혜가 구속됐으니 이제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같은 식으로 한국 정세에 대한 질문을 쉼없이 던졌다.

가끔 선수들이나 기자 등이 한국 또는 북한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북측 관계자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같은 말이 반복 되면 선수단 관계자나 통일부 관계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대화는 대부분 장소를 이동하는 호텔에서 이뤄진다. 기자단에게 제공된 1대의 버스에 북측 연락관 5명이 함께 탄다. 북측 연락관들이 옆자리에 앉아 경기장으로 향하는데, 일부러 한 명씩 전담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버스가 좁아 어쩔 수 없이 같이 타고 가는 모양새다. 버스 안에선 이뤄지는 대화는 크게 민감한 내용이 아니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가족이 있느냐, 사는 곳은 어디냐, 결혼은 했느냐 같은 개인적인 일도 스스럼 없이 물어본다. 할머니가 함경북도 회령 출신이라고 하니 "할머니께서 참 고우시겠습니다. 회령은 원래 미인들이 많이 나는 곳입니다"하고 말했다. 또 백살구가 유명한 곳인데 백살구를 챙겨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챙겨주진 않았다. "다음에 할머니 모시고 백살구 먹으러 올게요"라고 하자 북측 관계자들은 웃었다. 보통 가족이야기를 하면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편이다.

▲호텔

양각도호텔을 대동강 가운데 있는 양각도에 있는 대형 호텔로 맨 꼭대기 층이 47층이다. 로비가 있는 곳은 2층이고, 도청 관리실이라고 알려진 5층은 tv 통제실이라고 엘레베이터 안내에 적혀있다. 5층이 도청 관리실로 알려진 건 엘레베이터에 5층 버튼이 없기 때문. 이 호텔에는 종업원 숙소와 회전전망식당, 사우나, 이발소, 마사지숍, 차집(카페와 술집의 역할), 당구장, 노래방, 볼링장 등 시설이 있다. 로비에 있는 차집에는 300리터 양의 맥주 제조 탱크가 8대가 설치되어 있어, 수제 맥주를 직접 생산해 판매한다. 이 맥주를 맛 본 한국 기자들은 '쇠맛이 났다'고 입을 모았고, 다음 날에는 숙취를 겪었다.

▲나래카드

나래카드는 일종의 신용카드로 현금을 충전해서 요금을 결제할 때 사용하는 선불카드라고 할 수 있다. 계설이 가능한 몇 군데 상점이 있고, 환불을 해야 한다면 시내의 은행에 가야한다. 결국 외국인은 카드 안의 돈을 다 쓰지 못하면 환불 받을 길이 없는 것이다. 카드를 만들어도 결제가 가능한 곳과 불가능한 곳이 많다. 결제가 가능하지 않은 곳이 더 많은 게 정확해 보인다. 또 밤 11시가 지나거나 이른 오전에는 결제가 안 된다. 한국 기자들은 일부러 카드를 안 받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결제는 되지만 기계가 안 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핑계식 대답을 하는 경우가 있엇기 때문이다.

▲초상화

버스 안에서 사진 촬영을 할 때는 특별히 제지하지 않는다. 초상화를 촬영할 때는 흔들리거나 가로수에 가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사진을 보면 삭제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제대로 찍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초상화는 정중하게 정중앙에 놓고 찍어야 한다는 것. 김일성경기장에서도 초상화가 건물 입구쪽에서 내려다보이는 구조로 높게 걸려 있는데, 경기장 앞에서 담배를 피려 하니 "초상화 모신 곳이라 일체 담배 못피게 되어 있다"고 경기장 관계자가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날이 어둑해지고 인적이 드물어지자 담배 피는 이들이 많았다.

남측 기자들이 사용한 기자실에도 김부자 초상화가 걸려있었는데, 외부 통행이 자유롭지 못한 것을 배려해 북측 관계자들은 기자실에서 그냥 담배를 피라고 했다. 본인들도 모여 담배를 피곤 했는데, 크게 초상화를 신경쓰지는 않았다.

▲평양 순안국제공항 고려항공

평양 도착 당일에는 공항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실제 손님들은 아닌 것으로 보였는데, 입국자들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어서, 실제 지인을 마중 나온 이들은 몇인지, 동원된 이들은 얼마나 되는지 확인이 어려웠다. 다만 도착 항공편이 당시 우리가 탄 베이징발 비행기 밖에 없었고 대부분 한국 선수단이었음에도 과하게 사람이 많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공항 밖에 나가 담배를 피고 하는 일을 자유로웠는데, 공항 문을 나서거나 사진을 찍거나 할 때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공항에 atm기도 있었고, 청량음료라고 적힌 음료 판매소가 있었다. 한국식 카페는 아니었고, 음료를 주로 파는 편의점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출발 전에 공항에 나올 환영 인파가 예상됐지만, 없었다. 국제대회였기 때문이고, 남북간의 정식 교류 행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환영 인파가 있었다면 최근 남북 분위기와 너무 이질적이고 작위적으로 보였을 것 같다.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순안공항은 한산한 편이다. 출발 및 도착 편이 많지 않다. 러시아와 중국에서 오는 것이 전부다인 것으로 보인다. 공항은 항상 사람이 북적거리는데, 선전을 위해 동원된 것으로 보인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김호곤 부회장이 북경에서 3시간 30분 정도 연착됐는데, 출발 정보가 없어 하염없이 공항에서 기다려야 했다.

세계 최악의 항공사 답다. 고려항공을 타는 귀국일에는 11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10시 20분쯤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공항은 텅 비어있었고, 출발 시간은 오후 4시 30분으로 변경되어 있었다. 공항 카페와 귀빈실 등에서 시간을 보낸 뒤 식사를 마치고 출발 예정 시간 40여 분 전부터 체크인이 시작됐다. 너무 촉박한 것 아닌가 생각했지만, 하루 출입국 비행기가 2~3편에 불과해 수화물 처리 속도가 빨라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출국 시 엄격한 수화물 검사와 노트북, 사진 등을 확인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오히려 검문요원들은 "대동강 맥주 선물로 사가는 겁니까", "축구는 잘 보셨습니까", "아직 안 끝났는데 왜 이리 일찍 가십니까", "좋은 시간 보냈습니까", "천천히 짐 챙기십쇼"라는 등 친절하게 대했다.

심양행 출발 시간까지 공항 내부에 있는 면세점을 둘러봤다. 건강식품을 판매점이나 서점, 기념품 상점, 술 담배등을 파는 무관세 상점 등이 있었다. 어린 아이가 놀 수 있는 놀이 공간이 있었는데, 그 앞에 은하9호라는 이름이 적힌 로켓 주위로 어린 아이들이 노는 장면이 있다. 은하9호는 실체가 있는 로켓(또는 미사일)은 아니고, 계속되는 로켓 실험으로 발전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상징물로 해석할 수 있다.

비행기 출발 시각인 오후 4시 30분이 되기 약 10분 전에 베이징에서 고려항공 항공기 한 대가 도착했다. 이 비행기를 타고 다시 심양으로 가는 일정이다. 출발 10분 전에 도착한 비행기를 바로 타고 떠날 순 없기에 기름을 넣고 수화물을 실고 내리고 하는데 1~2시간이 더 소요됐다. 출발이 임박했는지, 고려항공 승무원들이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무릎에서 한뼘 정도 올라오는 미니스커트는 허벅지와 엉덩이에 달라 붙어 몸매를 선명히 드러내는 역할을 했고, 상의는 목선이 뚜렷이 보였다. 남색 계통의 어두운 색이었고, 가슴에 김일성김정일의 초상이 새겨진 휘장이 달려있었다. 비슷한 크기의 가방을 들고 있었다. 방북 기자단이 사진을 촬영하려 하자 고개를 돌리고 자리를 급히 벗어나는 등 거부 반응을 보였다.

고려항공 심양행 비행기는 80년대 수준의 시설을 갖췄다. 일등석 혹은 비즈니스석에선 담배 냄새가 풍겼고, 일부 종업원은 술을 마신 듯한 인상이었다. 기내식은 제공되지 않았는데, 심양까지 일직선으로 상공을 가로지르는 짧은 일정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음료 카트는 없었고, 대신 탄산단물(탄산음료)를 쟁반에 몇 컵 담아 물과 함께 필요한 사람에게 주었다. 기내에 들어서자 마자 신문을 보시겠냐며 로동신문을 승객들에게 건냈다. 로동신문을 직접 접한 건 그때가 처음인데, 호텔에서도 신문을 볼 수 있겠냐고 몇 번 물었지만 호텔엔 신문이 없다는 답만 들어 생소했다.

기내에는 공항에 계속 울리던 모란봉 악단의 공연 영상이 상영됐다. 압록강을 지나 북중 국경을 넘을 땐 "손님 여러분, 저희는 지금 조.중(조선-중국) 국경선인 압록강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저 압록강의 푸른 물결은 오늘도 조국 광복을 위해 바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장군의 불멸의 혁명 업적을 노래하고 있습니다"라는 승무원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창문 밖으로 단둥과 신의주가 보였다. 하늘에서 두 도시 구별해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리 하나로 연결된 두 도시는 건물의 높이와 밀도, 도시의 풍경이 하늘에서도 명확히 구분이 될 정도였다.

▲길거리

건물은 국가 소유. 배정 받은 곳에 살고, 방 크기에 따라 일정 수준의 사용료를 내면 되는 구조. 체권(체육복권)을 판매하는 거리 노점상이 자주 보인다. 신문잡지라고 쓰여 신문류를 파는 곳과, 청량음료점이락 쓰여 매점 역할을 하는 곳이 있다. 체육복권은 현금 대신 당첨 상품을 주는데, 1등은 텔레비전, 녹화기(비디오) 등 이라고 한다. 100~200원 정도 저렴한 가격에 복권을 구입할 수 있으며 숫자를 정한 뒤 맞히는 로또식으로 볼 수 있다.

길거리에 가장 눈에 띄는 건 횡단보도에 보행 신호등이 없다는 것과, 버스 정류장에 늘어선 사람들, 먼 과거에 타고 다녔을 법한 전차들이 여전히 운행한다는 것이다. 또 특이한 건 선전 구호가 그려진 포스터는 많지만, 상품 선전을 하는 광고판은 전무하다는 점이다. 버스 정류장이나, 버스 외부에도 광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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