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

검색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스트리밍'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

입력 : 2017-04-20 09:20:34 수정 : 2017-04-20 09:20:34

인쇄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한국대중음악산업 관련 흥미로운 자료가 나왔다. 17일 국제음반산업협회(IFPI)는 핵심음원시장 인터넷 사용자들을 조사한 ‘음악소비자 통찰력 보고서 2016’을 발표, 조사대상 13개국 중 한국이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라 밝혔다. 그 다음이 스웨덴, 멕시코, 브라질 순이고, 반대로 가장 사용률이 떨어지는 나라는 일본, 캐나다, 프랑스 순으로 드러났다. 일본과 한국의 차이는 비율 면에서 6배 정도나 난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익명의 국내 음원서비스업계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일단 모바일 인터넷 환경이 좋고, 이동통신사들이 강력한 마케팅으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성장시키면서 저렴한 정액제에 무료 데이터까지 제공하는 부가상품 등을 대거 내놔 다른 나라보다 보급이 더 빨랐던 것 같다”며 “한국 소비자들은 음원 차트(순위) 위주로 음악을 듣는 이들이 많아 곡의 소비 주기가 짧다. 번거롭게 음원을 다운로드해 듣는 것보다는 편하게 스트리밍으로 새 유행곡을 즐기려는 수요가 클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전자의 ‘인터넷 환경 결정론’은 종종 제시되는 분석이다. 그러나 후자의 ‘대중 취향론’은 그리 자주 나오던 분석이 아니다. 그러나 사실 후자 쪽이야말로 한국대중음악산업, 아니 한국대중문화산업 전체를 가로지르는 뚜렷한 경향성이라 볼 수 있다. 대중문화 콘텐츠를 ‘소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상당히 떨어지는 문화권이란 얘기다.

예시는 다양하다. 한국에서 영화 2차시장 괴멸 주범으로 지목되는 건 늘 불법 웹하드나 토렌트 등 불법다운로드 사이트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등장하기 전부터도 영화 2차시장은 사실상 ‘절반’만 생존해있었다. 비디오/DVD 렌탈 시장이다. 나머지 절반, 그리고 수익 측면에선 훨씬 큰 셀-쓰루(sell-through) 시장은 1990년대부터 갖은 홍보를 펼쳤어도 전혀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영화란 그저 ‘한 번 보고 마는 것’이란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TV드라마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초반 홍콩무협드라마 비디오 정도나 렌탈시장에서 좀 되다 말았다. 드라마 DVD 박스세트가 고정판매 스테디셀러인 여타 대중문화강국들 분위기와 크게 다르다. 만화시장 역시 도서대여점 붐과 함께 판매시장은 점점 줄어들다 웹툰 유행 이후부턴 소수 오타쿠시장으로 내려앉은 지 오래다.

콘텐츠 ‘소장’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문화 환경, 가볍게 일회성으로만 소비하고 넘어가는 문화 환경이 증명하는 속성은 하나다. 한국은 대중문화 콘텐츠를 다분히 ‘트렌드’로서만 소비하는 분위기란 방증이다. 그때그때 큰 규모 대중유행을 함께 타며 동일한 경험을 동일한 시점에 ‘다 함께’ 소비하는 쪽을 즐긴다. “한국 소비자들은 음원 차트(순위) 위주로 음악을 듣는”다는 위 관계자 분석도 그렇지만, 전체인구의 1/4이 봤다는 영화가 매년 툭툭 튀어나오는 환경도 예사는 아니다. 그러니 문화상품 소비 주기가 빠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저 그 주기에 맞추는 게 소비 중심이 될 뿐 굳이 따로 소장까지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문화 분위기에도 좋은 점은 있다. 그렇게 큰 집단적 집중이 짧은 소비 주기를 타고 계속 이동하는 형태이므로 인구규모에 맞지 않는 ‘초대박’ 상품들이 연이어 등장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메인스트림 시장이 거대화 돼 투자가 늘고, 그 투자만큼 해외시장까지 엿볼 수 있는 경쟁력 높은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반대로 단점도 뚜렷하다. 소비자들이 개인주의 성향을 갖지 않은 환경은 곧 문화상품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는 환경이기도 하다.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난 상품들이 갈 곳은 없다. 규모가 크진 않아도 탄탄하게 시장 빈틈을 막아주는 ‘작은 영화’들, ‘인디 음악’들, 만화를 포함한 각종 서브컬처 상품들은 서서히 사멸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낯선 것’을 즐기지 않아서가 아니다. ‘남들이 즐기지 않는 것’은 잘 따라가려 하지 않는 습성들 탓이다.

이런 문화 환경은 상품시장 개념에서 리스크가 크다. 모든 상품이 트렌드 탑승을 목표로 하기에 이벤트적 성격을 띠게 되므로 도박성이 강해진다. 모 아니면 도다. 개인주의 성향 대중을 상대로 한 시장은 그보단 훨씬 안정적이다. 소비자 충성도가 높아 다양한 서브장르 시장들이 탄탄하게 성립될 수 있고, 그런 안정적 기반을 바탕으로 다양한 실험이 가능해진다.

어쨌든 한국에서 주어진 시장은 이런 성격이다. 콘텐츠는 트렌드를 좇아 물 흐르듯 가볍게 소비되고 잊혀진다. 그러니 반복소비도 극히 떨어진다. 한국에서 2차시장은 반복 또는 소장 개념이 아니라 1차시장에서 소비하지 않은 메인스트림 상품들에 대한 콘텐츠 창고 역할을 한다. 놓친 트렌드라도 만회해 같은 경험을 공유코자 하는 집단주의 심리가 반영된다. 그나마 IPTV 시장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배경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시장에서조차 비주류 콘텐츠는 환경 받지 못한다. ‘트렌드’와 관련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장 분위기를 이해하고, 또 인정하는 상태에서 시장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시장 환경에 적응해 구축된 산업구조 비판은 무의미할뿐더러 궁극적으론 위험한 발상이란 점도 인지해야 한다. 예컨대, 한국대중의 트렌드 추구 속성을 정확히 포착한 스크린 연쇄 독과점 배급 형태 등이다. 비판 끝에 제도를 만들어 규제하면 과연 대중이 틀 속의 쿠키처럼 이상적인 모양새로 달라질까. 그런 유물론적 설계주의 발상이 먹히지 않는 곳이 바로 시장이다. 백날 한국 문화 환경 비판해봐야 달라질 건 없단 얘기다. 그에 적응하면서도 또 다른 가능성을 뽑아내기 위해 골몰하는 게 현명하고 건강한 전략 구축 자세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