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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스타] 민우혁 "야구선수 출신…이종범 선수처럼 앨범 내는게 꿈이었다"①

입력 : 2017-04-22 19:22:34 수정 : 2017-04-22 19: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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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최정아 기자] 뮤지컬은 대부분 세트로 지은 가상의 공간에서 공연된다. 여기에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며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작품이 현실과 맞닿은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배우다. 출연 배우의 기량에 따라 극의 흥망성쇠가 결정되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민우혁은 어떤 무대건 ‘진짜’로 만들 줄 아는 무서운 배우다. 뮤지컬은 물론이고 드라마, KBS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이하 불후의 명곡)까지, 등장과 동시에 공기의 흐름을 바꾼다.

특히 ‘불후의 명곡’ 같은 경우는 관객 반응이 수치로 느껴진다. 엄정화 편에서 ‘눈동자’로 2등, 강인원 편에서 ‘사랑은 세상의 반’으로 2등, 박재란 편에서 ‘푸른날개’로 최종우승, 김광진 편에서 ‘기억해줘’로 2등을 기록했다. 항상 상위권 성적이다. 지금껏 이런 출연자가 있었나 싶다. 민우혁은 객석의 집중력과 몰입감을 제대로 높이는 방법을 안다.

요즘 상승세 제대로 타고 있는 이 남자. 천운을 타고난 줄 알았더니 천운을 만들어가는 노력파였다. 알수록 더 궁금한 민우혁과의 대화를 공개한다.

-어릴 때부터 야구선수로 활약했다던데.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살다가 부모님 일을 따라 경기도 의정부 경의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거기서 야구를 처음 시작한거다. 리틀야구단 모집을 하기에 지원했다. 그땐 야구가 뭔지도 잘 몰랐다. 그저 아버지가 야구를 좋아하신다는 걸 알고 있으니 기쁨을 드리고 싶었던 거 같다.”

-운동선수를 할만큼 체격도 좋았다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전교에서 제일 컸다. 6학년 때 172cm 정도 였다. 그래서 야구부에서 좋아하셨다. 피지컬이 좋으니까. 그렇게 운동을 하는데 너무 힘들더라.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있어서 아버지께 말씀드렸는데 크게 화를 내시더라. 사실 저희 아버지도 복싱 선수셨는데 당시 형편이 어려워서 그만두셨다고 하더라. 그래서 아들이 운동을 하는 것에 대해 기대가 크셨던 것 같다. 아버지가 실망하시는 모습을 보고 다시 운동을 해야겠다 마음 먹은 적이 있었다.”

-스트레스도 받았겠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스트레스성 위궤양이 왔다(웃음). 그러던 차에 군산으로 이사를 해야하는 상황이 왔다. 자연스럽게 운동을 그만둘 수 있겠다 싶었는데 전학을 간 곳에서도 야구부 스카웃 제의가 엄청 왔다. 어린 마음에 ‘싫어요’라고 말을 못해서 ‘집에서 운동하시는 걸 반대한다’고 했는데 야구부에서 아버지께 전화를 하셨더라. 그렇게 다시 야구부를 시작했다(웃음).”

-언제 진로를 바꿨나.

“수학여행에 갔는데 친구들이 H.O.T와 젝스키스 춤을 추는 무대를 봤다. 너무 멋있더라. 그때부터 사춘기가 시작됐다. 머리를 밀고 야구부에 다시 들어갔는데 마음이 안 잡히더라. 그래서 꿈을 세웠다. 유명한 야구선수가 돼서 음반을 내겠다는 꿈이었다. 당시 이종범 선수가 트로트 앨범을 냈었는데 그런 선수가 되고 싶었다.”

-부상은 없었나.

“운동선수에게 부상은 떼놓고 말할 수 없다. 근데 저는 유난히 부상이 많은 편이었다. 고등학교 2, 3학년 때 중요한 시기였는데 부상을 당해 시합을 뛰지 못하는 상황이 많았다. 마음을 잡고 제대로 해보려는데 몸이 안 따르니 힘든 시간이었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러브콜이 오는데 저는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안 오더라. 이렇게 야구 인생이 끝나나 싶을 때 LG트윈스에서 연락이 왔다. 6개월 정도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선수들과 재활 훈련을 했다. 여기에 극단의 조치로 일단 대학교에 들어간 뒤 빨리 몸을 만들어서 선수로 뛸 수 있는 컨디션을 만들기도 했다 근데 수비연습을 하다가 발목이 돌아가서 인대가 거의 찢어진거다. 깁스를 4개월 동안 하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야구를 그만 둔 건가.

“집에는 비밀로 하고 일단 서울로 올라왔다. 뭐든 이루고 집에 이야기 해야겠다 싶더라. 고시원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같이 생활을 했다. 하루에 닭꼬치 하나로 버텼다. 두 달만에 30kg이 빠지더라. 이후에 친구를 따라서 모델 활동을 하려고 했었다. 부모님도 이 때부터는 ‘너도 할 만큼 했다’며 응원해주셨다. 캠코더를 선물해주셨는데, 아들을 응원해주시는 마음에 감동 받았다.”

-길거리 캐스팅도 있었겠다.

“그렇게 6인조 혼성 그룹을 준비했다. 뮤직비디오도 찍고 CD에 포스터도 나왔는데 당시 사장님이 사라지는 바람에 유통도 못하고 팀이 해체됐다. 이후 또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친구들과 잠시 노래방에 갔다. 노래를 부르는 데 어떤 분이 들어와서 ‘방금 노래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더라. 그리고 잠깐 자기를 따라오라고 해서 갔는데 굉장히 유명한 분들이 자리에 계셨다. SBS 드라마 제작을 하고 있는데 드라마 OST를 불렀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다음날 곡을 받아 바로 녹음에 들어갔다. 2003년, 21살이었는데 그렇게 SBS 드라마 ‘요조숙녀’ OST 중 ‘숙녀에게’와 엔딩곡으로 쓰인 ‘저스트 위드 유’를 부르게 됐다. 부모님도 정말 기뻐하셨다.”

-가수 인생의 시작이다.

“쉽진 않았다. 유명 연예인들이 소속된 회사에 들어갔는데, 상식이 통하지 않는, 힘든 일이 많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10년 동안 야구 선수를 했고, 부모님도 설득해 인정을 받았고, 이제 열심히 일만 하면 되는줄 알았는데 현실은 꿈과 다르더라. 회사를 나왔고 운좋게 또 다른 분을 만나 데뷔를 준비했다. 중간에 또 이런 저런 일이 생겼지만 남성그룹을 준비해서 방송 출연까지 했다. 제가 연예계를 잘 몰랐고 사회를 잘 몰랐던 것 같다. 노래를 하기 싫다는 생각까지 들어서 군대를 갔다.”

-어떻게 다시 꿈을 위해 일어섰나.

“제대 후 연기자를 준비하느 친구집에 놀러갔는데 연기 수업을 받고 있더라. 선생님은 친구의 어머니셨다. 저도 한 번 해봐도 되냐고 여쭤보고 수업을 들었는데 너무 재밌는거다. 그때부터 친구랑 같이 연기 수업을 들었다. 29살 때다. 주변에서 뮤지컬 권유를 했는데 친구 어머니께서도 추천을 해주셨다. 그러던 중에 ‘젊음의 행진’ 오디션을 봤고 합격을 했다. 그렇게 뮤지컬에 발을 들이게 됐다.”

-첫 오디션에 바로 합격했다. 실력이 남달랐나보다.

“운이 좋았다. 주크박스 뮤지컬인데다가 계속 가요를 불러기 때문에 여러가지 요소가 잘 맞았다. 체육 선생님 역할이니 이미지도 잘 맞았던 것 같다. 사실 처음에 저는 커버 개념으로 발탁이 된건데 원래 캐스팅된 분이 개인사정으로 그만 두게 돼서 그 자리를 맡게 된거다. 모든 배우들이 제가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조언을 해주셨다. 정말 행복했다. 지금까지 왜 뮤지컬을 안 했나 싶을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뮤지컬 배우라는 꿈이 생겼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cccjjjaaa@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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