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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00. 부처님 손바닥 같은

입력 : 2017-04-25 21:50:17 수정 : 2017-04-26 15:5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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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수많은 예지자들이 소위 ‘예언(豫言)’이라는 것을 했다. 그러나 인간이 역사를 통해 행한 수많은 예언 중 정확히 맞아 떨어진 예언은 얼마나 될까. 아마 맞았던 예언보다도 틀린 예언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틀린 예언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 인간에게 예지능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래를 ‘예언’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몇몇 사람에게 국한되어 있다.

나는 알게 모르게 예언을 많이 했다. 그중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것은 30대에 일어난 10·26 사건이었다. 나는 이 사건으로 장안에 예언가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지만 예언의 사회적 파장과 예언가의 자세를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1979년 10월17일, 나는 우연치 않게 지인의 초청으로 유신 기념 파티에 가게 되었다. 그 자리엔 주요 인사들이 많이 참석했지만 정치색에 민감하지 못한 나는 그저 한 사람 한 사람이 같은 영혼일 뿐이었다.

동석했던 중앙정보부의 고위 간부가 “박정희 대통령과 저녁을 같이 하기로 했다”며 자랑을 하였다. 유신시절 박 대통령과 식사를 한다는 것은 곧 출세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나는 순간적으로 “박 대통령은 10월 26일 이후에 밥숟가락을 들지 못하니 댁에서 저녁 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무심코 말이 툭 튀어나온 것이다.

“젊은이답지 않게 질투를 하는구만” 하며 그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도 평소 버릇대로 수첩에 그 말을 메모했다. ‘차모 법사, 10월 26일 이후 박대통령 밥숟가락을 못 들게 될 것이라 언동.’

이것이 화근이었다. 9일 뒤인 10월 26일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중앙정보부의 궁정동 안가에서 식사 도중 대통령이 측근에게 암살당한 것이다. 분단으로 남북이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빚어진 대통령 암살이기에 전운이 감돌았음은 물론이다.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박 대통령 시해 사건 수사가 진행되면서 수첩의 메모가 문제가 됐다. 나는 안가에 연행되어 취조를 받아야 했다. 수첩의 메모를 들이대며 “암살이 사전에 계획된 것 아니냐”는 수사관들의 집요한 추궁에 나는 곤욕을 치렀지만 결국 관련이 없음이 증명됐다. 동시에 ‘차씨 성을 가진 예언가’ 얘기가 파다하게 퍼졌다. 이후 많은 정계 인사들이 국가 중대사나 조언을 구하기 위해 나를 찾기 시작했다. 운명 예지에 관한 영적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금기사항이 있는데, 그 하나는 국가와 개인의 운명에 대해서 함부로 발설하지 않는 것이다. 국운을 발설하는 것은 천기를 누설하는 것으로 목숨을 걸어야 한다. 개인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기에 가급적 발설치 말아야 된다. 예언이 사회나 대중의 정신을 풍요롭게 한다면 다소 금기를 넘더라도 예언이란 걸 하겠지만 물질적 이득이나 정략적 차원에서 이용하는 예언이라면 말을 아낄 수밖에 없다.

선거 같은 국가의 대사가 생기거나 연말이 되면 운세를 묻는 언론사들이 많다. 요즘은 예언을 하지 않고 있지만 예언은 틀려야 한다는 것이 예언에 대한 내 지론이다. 예언자가 자기 예언이 틀리기를 바라는 것이 혹시 예언이 빗맞을 경우를 대비한 술수가 아닐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나로선 불행한 예언이 실현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오늘날에는 예언보다는 예측(豫測)이 더 중요하다. 예언이라는 말의 시대적 해석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 범위나 대상, 그리고 정확도에 있어 100% 맞는 예언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은 예언이 갖는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 인류가 축적해 온 시대적,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미래 예견 능력, 미래 예측 능력 등도 실제는 예언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누군가 ‘예언’을 한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거나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대비하여 좀 더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을 뿐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부처님 손 안의 손오공’과 같은 삶을 살고 있으니 미래에 대해 너무 궁금해 할 필요 없다. 현재나 미래 모두 미지수이기에 인생은 그래서 더 살 만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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