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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06. 여름이면 생각나는 효자

입력 : 2017-05-22 04:40:00 수정 : 2017-05-21 18:3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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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원도에 산불이 크게 났다. 산림은 물론이고 가정집까지 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산불로 인해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산에 불이나면 산사람만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다. 명당에 묻힌 망자도 피해를 입기는 마찬가지다. 이와는 반대로 여름에 폭우가 쏟아지면 산사태가 일어나고 하천은 범람한다. 이때도 망자들은 피해를 입는다. 몇 해 전 강원도에 큰 홍수가 났을 때 나를 찾아온 분이 생각난다.

“돌아가신 제 아버지 관 좀 찾아주십시오.” 그 분은 울먹이며 다짜고짜 내 가랑이를 붙잡았다. “무슨 일인지 전후 사정부터 좀 들어봅시다.” 그분은 폭우가 쏟아진다는 TV뉴스를 보고 강원도의 부모님 산소로 달려갔을 때 기가 막혔다고 한다. 장마철 기습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공원묘지를 휩쓸어 버리는 바람에 많은 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길가에는 토사와 함께 쓸려온 관이 즐비했고 여기저기 유골이 드러나 있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좋은 곳에 모시기 위해 명당을 찾아 강원도에 묘를 썼건만 위치는 고사하고 시신조차 확인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다른 집 후손들도 ‘내 아버지 산소를 찾아내라’ ‘유골이라도 찾아 달라’며 묘지관리소에 항의하였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산소는 흔적이 없고 드러난 관과 수의는 모두 비슷해서 구별할 수 없었다. 게다가 누구 유골이 물에 떠내려갔는지, 남겨진 유골은 누구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난감해하던 묘지 관리소는 훼손된 무덤에서 드러난 관의 유골을 모두 모아 합동으로 화장해 장사지내기로 유족 대표와 합의하게 됐다. 그러나 그분은 그 결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때 머릿속에 신문에서 읽은 내 칼럼이 떠올라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찾아왔다고 했다.

눈물로 하소연하는 그분을 보고 있자니, 참 요즘 같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 면전에서 재산싸움을 하거나 형제들끼리 유산상속 때문에 법정에 서는 것이 요즘 세태 아니던가. 살아있는 부모도 외국에 버리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화려한 묘지를 조성하면 후손으로서 도리를 다한 양 착각하는 자들도 있지 않은가.

구명시식을 통해 나타난 그분의 부친 영가는 깜짝 놀랄 말을 했다. “영가가 된 몸으로 산소나 유골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하지만 네가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니 증표를 하나 알려주마. 화투장이 들어있는 관을 찾거라.”

내 말을 전해들은 그 분은 아버지 영가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화투라구요? 아버지 시신을 묻을 때 그런 것은 없었는데요?” 그러자 아버지 영가가 호통을 쳤다. “이놈아, 네 애미한테 물어보면 안다.”

하지만 그분의 어머니도 이미 돌아가시고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어머니께서 남편의 무덤 속에서 심심해하지 말라며 평소 즐기던 화투 한목을 남몰래 집어넣었던 것이다. 그것을 알 리가 없었던 그분은 내 말을 굳게 믿고서 다시 강원도 묘지로 달려갔다.

더운 날씨에 비지땀을 흘리며 관을 뒤지던 그는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과연 부서진 관들 중 하나에서 빨간 화투장이 보이는 게 아닌가. 순간 “아버지!” 하고 그 자리에 엎드려서 통곡을 했다. 천신만고 끝에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은 반가움의 눈물이었다.

그는 나에게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했지만, 나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후손의 정성에 조상이 응답을 한 것이라며 축하해줬다.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왠지 내 마음도 흐뭇했다. 비가 내리는 여름이 되면 그분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님의 묘를 끝내 찾지 못한 분도 있었다. 이처럼 시신을 찾지 못할 경우에는 닭의 울음이 들리지 않는 깊은 산속에서 밤나무를 베어서 정성스럽게 고인의 형상을 깎아 입관하기도 했다. 밤나무는 밤의 형태를 그대로 뿌리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근본을 잊지 않는 나무로 통한다.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조상을 위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근본 이상으로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hooam.com/ whoiamtv.kr)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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