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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09. 소통의 벽은 죽어서도 고쳐지지 않아

입력 : 2017-05-31 04:40:00 수정 : 2017-05-30 22:5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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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사람의 대화는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각종 은어와 줄임말이 난무하여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릴수록 그 정도는 심한데 정작 본인들은 대화에 전혀 문제가 없다. 답답한 사람은 나 같은 기성세대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아니면 한참을 생각해야 겨우 이해를 하는 수준이다. 하긴 구명시식 중에도 영가와 대화하기 위해 통역이 필요했던 적을 생각하면 어찌 세상을 탓하겠는가.

30대 중반의 젊은이가 약물과다로 잠을 자다 갑자기 숨을 거뒀다. 예기치 않았던 죽음에 가족들은 큰 슬픔에 잠겨 구명시식을 청했고 나는 그 청을 받아주었다. 그러나 영가를 마주한 나는 한바탕 진땀을 빼야했다.

요즘 영가들은 과거의 영가들과는 달리 거침없는 표현을 쓴다. 즉 사용하는 어휘 자체가 상당히 직설적이고 감성적이라 세대 차이마저 느낄 지경이다. 30대의 그 영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특히 겁까지 많아 대화를 나누기가 조심스러웠다. 결국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 가족 대표로 참석한 그의 누나가 쉬운 말로 내게 통역해주는 작은 촌극이 빚어졌다. 쓰는 단어가 비슷하다 해도 말투 자체가 너무나 달랐다. 세대와 문화가 다르면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을 서로 간에 체험한 것이다. 나도 답답했지만 영가 또한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그는 겁을 먹고 있었다. 내가 영가를 잡아 가두는 사람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지금 머무는 그곳에서 3년만 더 즐기다 가게 해달라는 소박한 것이었다. 거창한 꿈을 꾸기보다는 소소한 행복을 찾는 젊은이들의 특성을 그 역시 고스란히 갖고 있었다.

그런데 남겨진 부인이나 자식에 대해서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 눈치였다. 조상들이 후손을 생각하는 것만큼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지 않았다. 부인에 대한 믿음 때문인지 영가 개인의 특성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겠으나 젊은 영가일수록 그런 면이 빈번히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다. 영가를 위한 노래가 준비되었을 때 한 고비가 더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노래를 듣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신청한 노래는 동석한 가수가 부르기 힘든 랩 뮤직이었다. 구명시식에서 랩을 한다는 것이 본래 취지를 생각하면 사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상시 준비할만한 레퍼토리 또한 아니었기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불러주지 못했다. 딱히 성에 차지 않는 듯 했으나 나 또한 춤추며 랩을 할 줄 모르니 어쩌겠는가. 결국 세월 따라 영가 따라 구명시식도 변한다는 진리를 또 한 번 확인한 자리였다.

사실 세대 간의 소통의 벽은 최근에 일어난 일도 아니다. 빠르게 변하는 문화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차이라고나 할까. 소통은 세대와 세대 사이 서로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나오는 광고를 보았다. 스마트폰 사용법에 능숙한 손녀가 할아버지를 위해 음성으로 작동시키는 것을 보면 기계는 단지 마음을 연결하는 도구일 뿐이고 소통의 벽은 기계가 아니라 마음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 문화가 상당히 발달해 있다. 지역마다 벌어지는 축제에는 연령층이 다양하다. 그야말로 굳이 세대 차이를 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한마음으로 아우르는 소통의 공간이다. 유교 문화권의 수직적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더불어 소통하는 수평적 지혜를 찾아가고 있다할 것이다.

우리라고 그런 소통의 장이 없지 않지만 각 세대의 기호나 의식 차이를 간과할 수는 없다. 두루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장이 지금보다는 널리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이대로 살다 가더라도 영계에서 의사소통이 안 될 일은 없다. 다만 살아있는 동안 영혼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은 자보다는 떠난 자가 할 말이 많다. 일찍 떠난 영가일수록 외침이 많다. 이는 정리되지 않은 인연과 한이 남아있기 때문이니 그 젊은 영가를 다시 만난다면 통역 없이 가슴에 있는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hooam.com/ whoiamtv.kr)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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