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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06 05:30:00, 수정 2017-06-06 05:30:00

[권영준의 독한S다이어리] VIP의, VIP에 의한, VIP를 위한… 멍든 한국배구

  • [스포츠월드=권영준 기자] ‘VIP 여기 있소.’

    박주형(현대캐피탈)의 스파이크가 상대 블로킹을 관통했다. 이강원(KB손해보험)의 오픈 공격이 코트를 들썩였다. 정지석(대한항공)의 회심의 한 방은 핀란드 수비진을 완전히 무너트렸다. 관중으로 가득 찬 서울 장충체육관은 열광에 빠졌다. 1승도 장담할 수 없었던 한국 남자 배구대표팀의 ‘2017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대회’ 2그룹 1주차 A조 홈 3연전을 2승1패의 호성적으로 마감했다. 문성민(현대캐피탈) 김학민 한선수(대한한공) 전광인 서재덕(한국전력)이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1.5군으로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김호철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 감독은 “서로 하고자 하는 의지가 넘쳤고, 투지로 똘똘 뭉쳐 일궈낸 결과”라며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들의 투혼에 팬도 화답했다. 지난 4일 서울 장충체육관은 배구팬으로 가득 찼다. 세트스코어 3-2의 대접전을 치른 가운데, 팬들은 끝까지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선수단을 응원했다. 단순한 애국심의 호소가 아니었다. 함께 웃고 울고 즐기며, 배구 자체의 재미에 푹 빠졌다. 실수를 하면 실수를 하는 대로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고, 환상적인 플레이가 나오면 목청껏 소리쳤다. 이날 만큼은 배구가 여전히 팬들 가까이에 있음을 증명했고, 코트 안에서 선수단과 팬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하지만 여전한 한국 배구에 남아있는 권위주위 및 과시욕이라는 병폐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날 대한배구협회 고위 관계자는 물론 서울시체육회, 원로 등 VIP가 대거 경기장을 찾았다. 이는 바람직한 일이다. 한국에서 국제대회가 열린 만큼 많은 VIP가 체육관을 찾아 함께 호흡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선수단 격려라는 명목 하에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는데 급급하다는 것이다. 선수단을 도열하게 한 후 악수를 해야 하고, 심지어 단체 사진을 찍는다며 코트에서 전력을 쏟은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를 코트에 불러다 놓고 사진 촬영을 하는데 혈안이었다. 또 장내 아나운서를 통해 자신이 누군지 알리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이들은 심각한 망각을 하고 있다. 코트의 주인공은 오롯이 ‘팬’이다. 스포츠는 ‘팬’이 전제해야 이뤄질 수 있는 이벤트이다. 팬이 없다면 선수, 팀, 연맹, 협회가 무의미해진다. 올림픽, 월드컵 등 메가 이벤트도 의미가 없다. 이날 무더운 날씨에 시간을 내서 직접 체육관을 찾아 열광적인 응원을 보낸 팬이 주인공이 돼야 했다. 그리고 돈을 주고 입장권을 구매한 만큼 팬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볼 권리, 즐길 권리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선수가 코트에서 투혼을 불사르는 경기를 보여주는 것이 첫째이고, 두 번째는 경기 전·후로 팬과 선수가 호흡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협회나 연맹이 해야할 몫이다. 무대 뒤에서 대회가 무사히 잘 치러지도록 주도, 조력, 지원하는 업무에 주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그저 자신의 권력과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혈안인 모습뿐이었다. 자신이 누군지 드러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한국 배구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다. 선수단은 대표팀 발탁을 꺼리는 추세이다. 명예도 돈도 얻을 것이 없다. 자칫 부상이라도 당하면, ‘프로배구 선수’라는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 여자배구 대표팀의 김치찌개 사건은 한국 배구의 현주소이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한국 배구의 핵심 선수단이 대거 빠진 이유는 분명하다. 그런데 이를 VIP라는 타이틀을 차고 있는 사람들만 모르는듯하다. 특히 대표팀을 운용하는 대한배구협회는 선수들의 이러한 깊은 고민을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도 없다. 팬들이 떠나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지만, 그들은 자기 밥그릇 싸움에 정신이 없다. 멍든 한국 배구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언제까지 선수들의 투혼에만 의존해야할지 의문이다. 

    young0708@sportsworldi.com 

    한국 남자 배구 대표팀 선수단이 지난 4일 장충체육관에서 치른 핀란드와의 ‘2017 월드리그’ 1주차 A조 3차전을 마친 뒤 도열한 후 VIP와 함께 악수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있다. 관중석의 팬들은 이 격력 행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 사진 = 권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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