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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12. 정성이 다하지 않는데 영화흥행이 되겠는가

입력 : 2017-06-12 04:40:00 수정 : 2017-06-11 18: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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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수많은 사연이 있는 것처럼, 이미 세상을 떠난 영혼의 세계에도 많은 사연들이 있다. 살아있을 때 침묵이 있었다면 영가에게는 외침이 있다. 그만큼 사연이 많다 할 것이다.

그동안 다양한 종류의 직업인들을 만났다. 문화를 사랑하다보니 문화예술인 영가들도 많이 접했다. 특히 영화 작업 중 사고를 당한 연예계 영가들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들이 유명해서가 아니다. 대중 예술을 위해 목숨까지 담보로 해가며 위험한 작업을 했던 용기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기 때문이다.

영화의 경우 대작 중심으로 제작되면서 배우들의 고난이도 연기가 많아졌다. 어려운 연기를 직접 하는 배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전문 대역 배우가 연기를 한다. 그러다보니 촬영 중에 사고도 많이 발생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는 대역 배우여서 별로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다.

예전에 국내에서 인기리에 방영했던 TV시리즈 ‘환상특급’의 영화촬영 중에 배우 빅 머로우가 헬기 사고로 즉사했다. 당시 감독이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추천으로 영화에 출연했던 빅 머로우는 스필버그의 꿈에 몇 번이나 나타나 자신의 촬영분에 대해 고마워했다고 말했다. 타고난 배우였던 그는 죽어서도 자신의 연기를 책임지고 싶었던 것일까.

내가 구명시식을 했던 K씨도 빅 머로우 같은 프로정신이 있던 사나이였다. 그의 직업은 험한 대역 연기를 도맡아 하는 스턴트맨으로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가 출연한 드라마는 나와 친한 모 PD의 작품이었다.

그가 나에게 새로운 드라마를 준비 중이라고 했을 때 예감이 좋지 않아 참여를 말렸다. 그러나 그는 나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었다. 기어이 촬영에 들어간 그를 보면서 늘 아슬아슬한 기분이었다. 결국 호수가 아름다운 모 지방도시에서 수중 촬영을 하던 중에 스턴트맨 K씨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PD는 나를 찾아와 스턴트맨을 위한 구명시식을 요청했다. “아, 춥다.” 구명시식을 통해 초혼한 스턴트맨 영가의 첫 마디였다. 물속이 얼마나 추웠으면 첫 마디가 그랬을까 싶어 지금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구명시식을 통해 그의 사인이 밝혀졌다. 그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자동차에서 안전벨트를 풀고 나오려했으나 안전벨트가 풀리지 않아 차 천장에 붙은 채로 사망했던 것이다. 구명시식은 순조로웠다. PD는 영가에 대한 사후처리를 잘 해주겠다며 눈물로 약속했다.

후일 스턴트맨 영가의 동생이 다시 한 번 구명시식을 청했다. PD가 영가와의 약속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영혼이 물속에서 나오지 못한 것이다. 초혼을 하고 나서야 추운 물 밑에 머물러 있던 영혼을 건져낼 수 있었고, 스턴트 영가는 PD를 몹시도 원망하고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찍다가 유명을 달리한 영가들에 대해서는 속설이 많다. 가장 유명한 것은 촬영하다가 사고가 나면 소위 말하는 대박이 터진다는 것인데, 꼭 그렇게 되지는 않은 것 같다. 영가들을 잘 달래주면 흥행에 성공하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자칫 흉한 일을 부르게 된다.

이것은 무슨 어려운 법칙이 있어서가 아니다. 진심을 다한 정성은 어디든 통하게 되어 있다. 작품의 흥행에 눈이 멀어 마음에도 없는 형식적인 제를 올리고, 무책임한 영가 마케팅에만 열을 올린다면 그 어느 영가가 흥행을 위해 선뜻 나서겠는가. 정성이 담기지 않은 작품은 영가도 알아보는 법이다.

지금도 물결이 잔잔한 호수나 강을 보면 그 영가의 외마디, “아, 춥다”가 귓가에 맴돈다. 어떤 일에 생명을 바칠 수 있다는 것은 스턴트맨 영가처럼 그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나 또한 구명시식을 하면서 생사의 고비를 여러 번 넘겼지만 사랑의 숭고함을 느끼며 지속하고 있다. 진정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영혼을 만드는 인간의 삶이며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한다. (hooam.com/ whoiamtv.kr)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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