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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한국영화 리메이크 하는 일본

입력 : 2017-06-26 11:00:00 수정 : 2017-06-26 13: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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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박스오피스 상황이 화제다. 6월10일 개봉해 2주째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일본영화 탓이다. 영화의 제목은 ‘22년째의 고백~내가 살인범이다~’. 부제 쪽이 어딘지 익숙한 느낌이라면, 그 느낌이 맞다. 영화는 지난 2012년 공개돼 272만9830명을 동원한 한국영화 ‘내가 살인범이다’의 리메이크다.

물론 한국영화 리메이크가 그간 일본에서 전혀 안 이뤄졌던 건 아니다. 특히 한국영화 르네상스라 불리는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턴 그런 흐름이 꽤 잦았다. 그러나 ‘22년째의 고백~내가 살인범이다~’ 같은 식은 아니었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한국영화를 일본방송사에서 TV드라마화 시키는 경우는 꽤 많았다. TV영화에 가까운 SP드라마의 경우 ‘선물’을 리메이크한 ‘라스트 프레젠트’, ‘말아톤’을 리메이크한 ‘마라톤’ 등이 있었고, 정규편성 분기드라마로도 ‘두사부일체’를 리메이크한 ‘마이 보스 마이 히어로’, ‘엽기적인 그녀’도 동명의 분기드라마로 등장한 적이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 영화로의 리메이크도 분명 흐름이 있었다. 대표적 예가 ‘조용한 가족’을 리메이크한 ‘카타쿠리가의 행복’, ‘8월의 크리스마스’를 리메이크한 동명영화 등이다.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 독립영화 계열로 봐야하고, 메인스트림 내에서 상업적 성공을 위시로 제작된 영화들이라 보긴 힘들었다. 그냥 ‘작은 영화’들이다. 한국에서 메인스트림적 인기를 누린 영화들이 일본 리메이크 시엔 독립영화 계열로 받아들여진다는 게 기묘하긴 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와선 또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초능력자’를 리메이크한 ‘몬스터즈’, ‘수상한 그녀’를 리메이크한 동명영화 등 메인스트림급 상업영화로 등장하는 사례가 하나둘 늘고 있다. 그리고 이제 ‘22년째의 고백~내가 살인범이다~’까지 왔다.

329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첫 주말 3억2135만8300엔을 벌어들였다. 같은 주연배우 후지와라 타츠야 근래 주연작인 ‘나만이 없는 거리’의 145%, ‘짚의 방패’의 171% 수준이었다. 이어 둘째 주말에도 2억6200만엔 가량을 벌어들이며 총 수익 9억2649만3700엔을 기록하고 있다. 관람객 연령대와 남녀성비가 고르게 분포돼있고, 관람만족도 차원에서도 수치가 높아 최저 20억엔 이상 총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참고로, 지난해 일본영화 중 총수익 20억엔을 넘어선 실사영화는 단 7편뿐이었다. 한국영화 리메이크 사상 최고 히트작일 뿐 아니라, 일본영화계 내에서도 흔치 않은 히트작이 탄생된 셈이다.

한편,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한국영화계 역시 그간 일본영화를 리메이크 안 해온 게 아니다. 1990년대 이전까진 사실상 표절 수준인 ‘비공식 리메이크’가 많았다. 그러다 1998년 일본대중문화개방조치 이후부턴 공식적 리메이크작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그러나 그 초기양상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비슷했다.

별다른 히트작은 잘 안 나왔다. ‘올드보이’ ‘미녀는 괴로워’ 등 히트작은 일본만화를 옮긴 것이지 영화 대 영화로의 리메이크로 보긴 힘들었다. 성공사례라 봤자, 150만7970명을 동원한 ‘복면달호’(‘엔카의 꽃길’ 리메이크), 213만5606명을 동원한 ‘바르게 살자’(‘노는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리메이크) 정도다. 대략 ‘중박’ 라인 성공사례였다고 봐야한다. 그러다 이런 분위기도 최근 급변했다. 지난해 일본영화 ‘열쇄도둑의 방법’을 리메이크한 ‘럭키’가 697만5290명을 동원하는 대박 히트를 기록하면서다. 이에 일본영화 리메이크에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고 들어가는 기획들이 속속 거론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물론 일본영화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디건 히트작이 등장하면 그 유사 방법론을 채택하는 영화들이 속속 줄을 잇기 마련이다.

이 같은 한일양국 간 ‘서로 주고받는’ 영화 리메이크 붐 원인은 여러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다. 먼저, 드디어 양국이 ‘서로 잘 하는 분야’를 인식해 그를 받아들이게 됐다는 점이다. 한국은 일본에서 특유의 유머감각과 그에 준하는 독특한 설정을 가져오고 싶어 한다. 반면 일본은 한국영화에서 주로 선보이는 하드보일드 감각과 사회파적 대립설정을 가져오고 싶어 한다. 그렇게 서로 간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구도가 성립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영화계와 일본영화계의 희비쌍곡선 상황도 놓여있다. 언급했듯, 한국에서 일본영화를 일방적으로 ‘베껴오던’ 시절도 있었음을 부정할 순 없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한국영화산업이 어마어마한 규모로 급성장하면서 이제 웬만한 크리에이티브 인력들은 영화계로 모조리 집중되고 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소재도 풍부해지고 있고, 접근과 감각도 독창적인 측면이 쉽게 발견된다.

반면 일본영화계는 지금 미묘한 상황이다. 분명 흥행성적 자체는 버블붕괴 후 15년 간, 즉 1990~2005년 사이보단 훨씬 향상된 상태다. 일본 역시 자국영화 흥행수익 비중이 전체의 50%가 넘는, 많지 않은 영화선진국 중 하나다. 그러나 영화 콘텐츠 자체는 점점 안일해지고 있다. TV드라마나 인기 만화, 소설의 영화화 외엔 히트작이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타 미디어 소스에 대한 집착이 점점 더 심해져, 이젠 오리지널 아이디어란 것 자체가 영화계에서 실질적으로 소멸되는 분위기다. 일본 대중문화산업 중 현재로서 가장 크리에이티브 아이디어가 부족한 분야가 바로 영화계라 봐도 좋을 정도다.

결국 점점 신선도를 잃어가던 일본영화계 분위기에서, ‘오리지널이 아니되 오리지널 같은 신선감을 주는’ 소스로서 이제 한국영화 리메이크를 엿보고 있는 상황이라 봐야한다. 어찌됐건 오리지널 작품이 일본서 널리 알려진 분위기는 아니니 그런 효과가 나온다. 이제 일본영화계에서 오리지널 아이디어는 작은 영화들 내에서만 시도되는 분위기다. 한국은 바로 그런 작은 영화들 아이디어(‘열쇄도둑의 방법’도 분명 작은 영화였다)를 가지고 대형 메인스트림 영화를 만들고, 일본은 이제 대형 메인스트림 규모에선 좀처럼 나오지 않는 아이디어들을 한국 메인스트림 영화에서 가져오는 형국이라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런 모든 흐름이 완성될 수 있었던 근본 조건이 있다. 이제 한국과 일본은 서로 공유하는 정서대가 비슷비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일본만화와 일본소설은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고, 기타 서브컬처 팬층도 탄탄하다. 일본 역시 K팝과 한국 TV드라마가 서브컬처시장 내에서 탄탄한 자기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 데다, 거기서부터 파생된 각종 패션, 온라인문화 등이 일반 계층에 시시각각 침투하고 있다. 이제 한국 대중도 일본식 유머감각이나 ‘깨는’ 설정 등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고 오히려 그에 충분히 매력을 느끼고 있다. 일본 역시 한국식 하드보일드 정서나 격한 감정묘사, 사회파적 시선 등에 점차 공명하고 있다.

알고 보면 서로 나눌 수 있는 게 많았던 관계란 얘기다. 그것도 서로 간 강점이나 특색이 따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서로를 받아들이는 기본 정서대 자체는 딱 그를 수용할 수 있는 정도까지 폭이 마련돼 있는, 최적의 교류 상대다.

그런 점에서, 영화계 차원에선 여기서 일단 자리를 잡고 난 뒤 최종단계로 자신들 영화가 ‘직접’ 양국에 서로 진출해 이익을 얻고 한일 양국 규모로 시장을 넓히는 상황을 꿈꾸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사실 그게 말처럼 그리 쉬운 건 아니다. 한국이건 일본이건 프랑스건 어디건, 영화선진국 시장은 지금 대개 할리우드영화 40~60 : 자국영화 40~60 정도 지분으로 구성돼있다. 화려한 비주얼 스펙터클은 할리우드영화를 보며 즐기되, 그밖에 진진한 인간관계 묘사 등은 자국무대에서 자국배우들이 자국어로 풀어내는 영화를 통해 살갑게 전달받겠단 구조다. 그 외 국가 영화들은 어디서나 마이너 시장으로 들어가 있다. 이런 상황이기에, 일단은 서로 간 리메이크 판권시장부터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현실적인 수익증대책이라 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시장 확대 물꼬는 트인다.

물론 한국과 일본은 매우 특수한 관계다. 이처럼 정치사회적 갈등이 극심하면서도, 동시에 문화적으로 이토록 쉽게 공명하는 관계도 세계적으로 더 찾아보기가 힘들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자의 갈등이 낳은 압박 속에서도 후자의 서로 간 문화적 침투가 여기까지 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정도로 문화적 차원에선 서로에 강하게 끌리는 관계란 얘기다.

그리고 한일 간 정치사회적 갈등은 근간에 또 일어났다. 지난 24일 부산시의회 상임위에서 소녀상 관련 조례안을 통과시키면서부터다. 그런데 이 같은 조건에서 한일양국 문화교류의 상징과도 같은 걸그룹 트와이스의 일본데뷔는 28일로 예정돼있다. 또 한 번의 시험대가 마련된 상황이다. 양국 정치사회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단절되지 않는 문화적 흐름에 대한 시험대다. 결과는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화두가 된 한일 영화계 교류 흐름도 또 다른 방향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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