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

검색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기적에 가까운 트와이스의 일본 데뷔 실적

입력 : 2017-07-04 06:15:00 수정 : 2017-07-04 16:52:57

인쇄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역대 급 정도가 아니라 그냥 역대다. 걸그룹 트와이스의 일본 데뷔 성적 얘기다.

일단 음반판매 성적부터 그렇다. 28일 발매된 일본용 베스트 앨범 ‘#TWICE’는 오리콘 위클리 집계로 13만549장을 판매했다. 이로써 올해 발매된 모든 한국 아티스트들 일본 앨범판매 성적 중 1위가 됐다. 기존 1위는 지난 2월15일 발매된 빅뱅의 ‘MADE’ 앨범이었다. 약 5개월 동안 12만1961장을 판매했다. 이를 불과 6일 만에 뛰어넘었단 얘기다.

걸그룹 차원에선 사실상 초유의 성적이다. 역대 한국 걸그룹 첫 일본앨범 중 초동 판매량 2위다. 기존 2위 카라의 ‘걸즈토크’ 앨범 초동 10만7403장은 넘어섰고, 소녀시대의 ‘GIRLS' GENERATION’이 세운 23만1553장엔 못 미치지만, 둘은 비교대상이 아니다. 일본에서 싱글 3집까지 낸 뒤 앨범을 꾸린 소녀시대와 애초 앨범부터 밀고 들어간 트와이스는 상황이 다르다. 앨범은 싱글에 비해 가격이 배 이상이다. 일정기간 활동을 통해 쌓인 인지도와 신뢰도, 충성도 차원 소비가 이뤄지는 품목이다. 거기다 2011년과 2017년 사이 일본 앨범시장 위축 정도까지 고려해보면 트와이스의 지금 판매량은 실질적으로 기적에 가깝다. 그만큼 데뷔 전부터 일본 내에서 열혈 팬층이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쌓여있었단 방증이다.

그밖에도 많다. SNS 차원에선 일본 데뷔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관심이 폭발, 2017년 상반기 일본 트위터 엔터테인먼트 부문 화제순위 3위에 올랐다. 2일 1만석 규모 도쿄체육관에서 두 차례 진행된 일본 데뷔 쇼케이스는 당연한 듯 매진을 이뤘다. 시부야109 등 각종 랜드마크 급 대형매장에서 판매된 관련 굿즈도 매진사태가 이어졌다. 물량을 너무 보수적으로 예상해 찍어냈단 비판까지 나올 정도다. 그 이전 TV아사히 음악프로그램 ‘뮤직스테이션’에 데뷔 즉시 출연이 성사되기도 했다. 일본 메인스트림 급 아티스트들도 출연이 잘 안 되는 일본대표 음악프로그램이다. 그보다도 어렵다는 NHK뉴스 등장 차원에서도 데뷔 직전 아침뉴스 ‘오하요! 닛폰’에, 데뷔 직후 ‘뉴스 시부 5시’에 모두 12~13분 분량 대형기획으로 두 차례나 다뤄졌다.

이쯤 되면 현상적이란 표현도 어색하다. 액면 그대로 사회문화현상이다. 그리고 이젠 이 같은 현상의 배경과 미래 전략을 다시 고민해봐야 할 때다.

일단 분명해진 것은, 적어도 일본시장 차원에서, K팝이란 근본적으로 ‘장르’란 점이다. 특정 포맷과 지향점을 지닌 특수 상품군이다. 그리고 모든 종류 장르는 당연히 트렌드를 탄다. 왔다가도 가고, 갔다가도 어느 시점이 되면 다시 밀물처럼 밀려들어온다.

그런 점에서 2013년 즈음부터 가시화된 일본 내 K팝 소강 상황을 다시 돌아보자. 주로 정치몰입형 미디어에 의해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텐노 발언 등 정치사회적 문제가 그 원인이라 지목돼왔지만,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그럼 소녀상 문제로 더 큰 갈등이 빚어진 2015년 즈음부터 보이그룹 엑소와 방탄소년단 중심으로 다시 K팝 상승기류가 생성됐다는 게 설명이 안 된다.

답은 사실 단순하다. 2012년 초엽이면 이미 K팝은 일본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단기간에 너무 많은 팀이 상륙, 신선도와 희소성이 떨어지고 급기야 장르 피로를 일으켰다. 거기다 현지화와 관계없는 ‘먹튀형’ 졸속전략들이 판을 쳐 상품으로서 이미지 또한 저하된 상태였다. 결국 시장전략 그 자체의 문제 탓에 ‘빠질 때 빠진 것’뿐 애초 정치적 기류와는 별 관계없었단 얘기다. 그렇게 수년간 하향세를 겪다가 신세대 K팝 아이돌들이 보다 정교한 전략으로 조심스럽게 상륙하면서 분위기가 쇄신되고 있다는 것.

그런데 현 시점, 가장 K팝 상품 피로도가 심했던 걸그룹시장에서 트와이스가 카라-소녀시대 수준 인기를 누리게 된 건 또 다른 차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일본시장 기준으로, 1세대 K팝 한류는 보아, 동방신기 등 한국 아티스트들이 일본기획사와 계약한 뒤 밑바닥부터 ‘맨땅에 헤딩’해 점진적으로 입지를 굳힌 형식이라 볼 수 있다. 이후 2세대는 유튜브 등 인터넷 기반 매체를 통해 이미 사전 인지도와 인기기반이 다져진 상태에서 시장출석만 하게 된 패턴이다. 걸그룹 중심이었단 특징도 있다. 그럼 이 2세대 전략까지도 소위 ‘약빨’이 떨어져가던 시점에 기획된 트와이스는 실질적으로 3세대, 즉 K팝 3.0 버전이라고 봐야한다. 노리는 해외시장 멤버를 ‘다수’ 가입시켜 일종의 팀 내 유닛처럼 기능시킨 뒤, 이를 기반으로 해당시장에 친숙함과 살가움을 안겨줘 해외상품 특유의 이질감과 문화침투 위협감을 줄이는 방식이다.

결국 한류란 무슨 한국문화를 중독 시킨다느니 문화정복이니 하는 말도 안 되는 민족주의 판타지 차원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그때그때 가장 시류에 맞도록 시장전략을 잘 짜는 흐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번 기존 전략 효용성이 떨어져 썰물처럼 트렌드가 빠지고 나면, 그 다음엔 또 다른 전략으로 재시도하는 게 한류, 그렇게까지 할 정도로 끊임없이 해외시장 공략을 꿈꾸며 전략을 진화시켜나가는 게 바로 한류란 얘기다. 다른 아시아국가 대중문화산업에선 그럴 필요를 못 느끼거나, 하고 싶어도 산업구조 한계 탓에 못하거나, 애초 그럴 의지 자체가 없어 못 하는 것을 하는 게 한류다.

물론 트와이스가 성공을 거둔 K팝 3.0 전략 이후로도 전략은 계속 진화해나갈 것이다. 어쩌면 그 4.0 버전은 직접 해외현지법인을 통해 해당국가 소년소녀들을 뽑아 팀을 내보내는 형식이 될 수도 있다. 2007년 JYP엔터테인먼트 수장 박진영의 “영화, 노래 등 문화 상품에 ‘한류’라는 국가 레이블(상표)을 떼어내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2011년 김영민 SM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우리 회사에서 일본인을 데려와 일본어 가사로 일본에서 음반을 발매한다고 할 때 이것은 K팝인가 아니면 무엇인가”라는 발언 등으로도 궁극적으론 그런 방향성을 취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애초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 일부부터가 JYP엔터테인먼트에서 일본 기획사 의뢰를 받아 만들어낼 예정이었던 일본용 걸그룹 후보군이었다는 점을 돌이켜봐야 한다.

그런데 이번 트와이스의 일본 데뷔 대성공 사례는 이처럼 예상되는 전략 진화 방향에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해주고 있다. 트와이스가 일본 걸그룹조차 못할 정도 데뷔 성공에 이른 배경은 다른 게 아니다. 단적으로, 이번 두 차례 도쿄체육관 쇼케이스 상황만으로도 이미 짐작이 간다. 이번 쇼케이스에서 일본 팬들조차 깜짝 놀란 부분이 있다. 쇼케이스‘씩이나’ 참석하는 열혈 팬층 구성에 있어 남녀성비가 실질적으로 반반에 가까워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령층도 사뭇 다양했다. 이는 그간 한국 걸그룹, 아니 보이그룹까지 포함한 K팝 팬층 자체가 상당부분 10~30대 여성층으로 구성돼있었던 기존 상황에서 크게 벗어난다.

이유는 단순하다. 애초 젊은 여성층이 한국 걸그룹에 열광했던 건, 자국보다 이국여성에 대해 신비감과 호기심, 동경 심리가 발동되기 더 쉬운 특성 때문이었다. 반면 남성층, 특히 일본 남성층은 보다 살갑고 친숙한 ‘이웃집 소녀’ 이미지를 선호해 자국 걸그룹을 지지해왔다. 그런데 여기서 일본인 멤버 3인이 팀 내 유닛처럼 기능하는 트와이스가 등장하니, 궁극적으론 일본 남성층까지 끌어들이게 됐다는 전개다. 한편 여성층 역시 타국서 생활하는 자국여성들 커뮤니티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새롭게 발동돼 복합적 지지를 낳게 됐다.

결국 트와이스로 대변되는 K팝 3.0 전략은, 그냥 일시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전략이 아닐 수 있단 얘기다. 어쩌면 해외시장, 특히 일본시장 진출 시 ‘궁극의 전략’일 수 있다. 일본 자국 걸그룹 역시 여성층 지지를 얻어내는 덴 한계가 있다. 한국 기획사들이 4.0 전략을 가동시킨다 해도 이 같은 한계는 온전히 같은 조건이다. 그런데 트와이스는 K팝 걸그룹이 부족한 남성소비층을 끌어들이면서, 동시에 J팝 걸그룹이 한계를 느끼는 여성소비층도 단단히 붙들어 놓을 수 있는 버전이다. ‘한국발 다국적 팀’ 개념 그 자체로도 충분히 하나의 완성된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트와이스 향방은 충분한 관찰이 필요한 일종의 테스트베드다. 이 팀이 겪게 될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우리로선 대번에 짐작하기 어려운 해외시장의 복잡다단한 면모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런 데이터들이 쌓여 전략을 만들고 궁극적으론 한류를 만든다. 3.0이건 4.0이건 이런 실측 데이터들에 기반하는 흐름이어야 한다는 건 자명하다. 그런데 이를 트와이스 한 팀으로 좁혀놓고 본다면, 트와이스의 다음 단계는 과연 무엇이 될까. 어쩌면 한국대중문화산업이 저 거대한 중국시장 위용에 눈이 멀어 그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던 ‘또 하나의 중국’ 시장, 대만시장의 상업적 가능성과 그 한계를 가늠해보는 일이 아닐까.

그렇게 시장 실험은 계속된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해외전문가들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바로 K팝 산업이란 얘기가 새삼 공감되는 요즘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