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가뭄에 애가 타던 농부의 마음을 시원하게 쓸어내리는 단비가 내리더니 지역적으로 폭우도 쏟아졌다. 이제 농부의 걱정은 비 때문에 그동안의 고생이 비와 함께 사라지는 게 아닌가하는 걱정으로 바뀌었다. 비 때문에 웃고 우는 농부의 모습을 보노라면 한 사람이 생각난다.
그녀는 사업가였다. 여자의 몸으로 남부럽지 않게 성공한 사업가였는데 몇 년 사이에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다. “어떻게 제가 이렇게까지 망할 수 있습니까?” 그녀가 말하는 몰락의 원인은 자신의 빌딩에 들어온 춤 교습소 때문이었다고.
처음 춤 교습소가 들어왔을 때는 건물주와 세입자로서 잘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건물이 노후하여 리노베이션 공사를 하려고 기존의 세입자들은 합의 하에 내보냈는데 유독 춤 교습소 세입자와는 합의가 되지 않았다. 임대차기간이 끝나지 않았다며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명도소송을 걸었지만 그는 난동을 부리며 갈 때까지 가겠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세입자는 그녀를 상대로 난리를 피우다 화를 참지 못하고 춤 교습소에 불을 질렀다. 그 화재로 세입자는 화상으로 죽고, 건물에 살고 있던 사업가의 딸은 불이 난 건물에서 뛰어 내리다가 다쳐서 하반신 마비가 됐다.
사고가 있기 전까지 금슬 좋은 부부로 소문났지만 딸이 하반신 마비된 후 싸우는 일이 자주 생기면서 남편과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업마저 부도가 나는 바람에 말 그대로 망하고 말았다.
“도대체 그 춤 교습소 남자와 제가 전생에 무슨 악연이었습니까? 저는 이제 더 이상 잃을 게 없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처지를 한탄했다. 사업은 망하고, 딸은 하반신 마비에 남편과 불화로 이혼 위기에 있고, 가족은 풍비박산 났으며 세입자는 불에 타 죽었다. 어떻게 나빠도 이렇게 나빠질 수 있을까.
그들의 전생은 충격이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지만 내가 본 전생은 이랬다. 한 동네에 사이좋게 지내는 이웃이었다. 콩 하나도 반쪽으로 나눠먹을 정도로 친형제 이상의 우애를 자랑하던 이웃사촌이었던 그들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심한 가뭄이 찾아오면서부터였다.
농부에게 논물은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어느 해 여름 유난히 가뭄이 심해 논이 갈라지고 작물은 말라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이웃과 물을 조금씩 나눠 쓰더니 가뭄이 길어지자 더 이상 논물을 나눌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급기야 사이좋던 이웃은 물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지더니 서로 논물을 지키기 위해 불침번까지 설 정도로 악화됐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이웃집에서 몰래 자신의 논 쪽으로 논물을 돌리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전생의 사업가는 이웃집 남자와 몸싸움을 벌이다 실수로 이웃 남자가 죽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전생의 사업가는 처벌을 받았지만 이웃집 부부를 불행하게 만든 죄 값에는 미치지 못했는지 자신이 죽인 이웃집 남자는 춤 교습소 세입자로, 남자의 부인은 자신의 딸로 환생해 고통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얘기를 차마 사업가에게 하지 못하고 돌려보냈다. 굳이 전생을 알아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현생에서 악연으로 큰 고통을 당했다면, 그 이면에는 전생의 악업이 있음을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생은 전생의 연장이며, 현생의 업이 미래의 모습임을 누가 말해준다고 믿고 깨달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가뭄과 폭우가 연이어 찾아오듯이 살다보면 수많은 인과에 얽히게 된다. 때로는 악연이라고 생각하여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내 전생을 깨닫는 계기라고 받아들인다면 보다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한다.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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