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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8-29 19:11:06, 수정 2017-08-29 19:11:06

[차길진과 세상만사] 135. 마츠모토 시립미술관 그림 속 여인

  • 일본 마츠모토 시는 혼슈 나가노현 중부에 있는 인구 30만 명의 작은 도시로 최근 소프트웨어 산업이 발전하고 있다. 이 시에 있는 마츠모토 성은 시민들의 큰 자랑거리다. 매년 수십 만 명의 일본인들이 이 성을 보기 위해 마츠모토로 향한다. 크고 화려한 성은 아니지만 400년 전 개축했을 당시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에 일본 성 건축의 최상미를 보여준다. 또한 마츠모토는 벚꽃 마쯔리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진해 군항제 정도로 성황이라고나 할까. 2002년 나는 마츠모토 성을 배경으로 영화를 제작한 적이 있다. 비록 단편영화였지만 일본에서의 영화촬영은 쉽지가 않았다. 공항에서 영화 필름이 통과하는 절차는 그야말로 복잡함 그 자체였다. 일본 현지에 적응이 안 된 한국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촬영은 또 얼마나 어려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로케이션이 무사히 끝나 천만 다행이었다.

    하늘이 도와준 청명한 날씨 속에서 촬영은 진행됐다. 이곳에서의 촬영은 벚꽃이 만발한 마츠모토 성 안의 전경과 기생 ‘홍련’의 그림이 전시되고 있는 마츠모토 시립미술관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일본의 천재화가 ‘이시이’가 그린 그림은 마츠모토 시립미술관 소장품 중에서 특별관리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츠모토 시립미술관장이 선뜻 그림을 보여준 것은 출연 여배우가 그림 속 인물과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여배우가 “내가 전생에 홍련이었다”라고 주장하며 그림을 보여 달라고 하자 미술관 관장은 한 번 쳐다보고는 아무말 하지 않고 보여주었다고. 그리고 촬영하는 동안 전시를 허용해주었다. 그 여배우가 자신의 전생을 안 것은 물론 내가 얘기해 준 것 때문이다.

    재일교포인 그녀는 처음 캐스팅 단계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길 원치 않는다며 한사코 출연을 거절하였다. 설득을 거듭하여 겨우 승낙을 받아냈다. 1917년에 기생 ‘홍련’의 그림을 찾으러 떠나는 영화 속 배우가 실제 기생 ‘홍련’과 너무나도 흡사해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시각적인 몽환감을 더해주었다.

    영화의 시작은 폐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여인과 그녀의 동생이 마지막으로 고향인 마츠모토로 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시작한 영화 촬영은 마츠모토에 있는 자동차 회사 대표를 만나면서 순조로워졌다.

    동경에 거주하지 않고 회사가 있는 마츠모토에서 살고 있는 그는 우연히 한국 영화팀이 촬영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마츠모토가 한국 문화계와 보다 긴밀한 관계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전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후원을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그 대표는 영화팀에 섞여 앉아 있던 주연 여배우를 본 순간 자신이 어디선가 많이 보던 여인이라면서 매우 놀라워하는 게 아닌가. 두 사람의 눈길이 마주치는 동안 나의 영력은 두 사람의 전생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현재는 일본 자동차 회사 CEO이지만 전생에는 한국에 살면서 한국을 무척 사랑했던 일본인이며 동시에 기생 ‘홍련’의 후원자였던 것. 그 기억의 흔적이 잠시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두 사람은 전생의 관계를 알지 못한 채 현생에서 만나 대표는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의 후원자로, 그리고 그녀는 전생의 홍련이 되어 스크린에 등장하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연(緣)으로 이어진 두 사람. 얼마나 재미있는 윤회의 흐름인가. 아름다운 도시 마츠모토에서 찍은 단편 영화가 전생과 현생에 대한 막연한 신비로움이 아닌, 선명한 우리네 삶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후암인들과 함께 기이한 인연의 도시 마츠모토에 다녀왔다. 백제의 혼이 어린 마츠모토로의 여행은 90년대 미국 뉴저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듯이 꿈을 실현하는 긴 여행이 될 것 같다. 내 목소리가 잠긴 것이 말을 하지 말라는 하늘의 뜻으로 생각하고 그곳에서 머물며 생각을 정리하려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생과 현생의 흐름이 여전하다. 인식하든 안하든 우주의 큰 테두리 안에 있음을 알아야한다.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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