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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기자 G세상 바로보기] 선견지명·절박함으로 올라탄 적토마

입력 : 2017-10-30 14:30:23 수정 : 2017-10-30 14:3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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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오스’라는 중고 신인 격인 온라인 게임을 본궤도에 다시 진입시키고, 유럽·북미 쪽에서 역량을 쏟으면서 ‘검은사막’으로 히트를 쳤으나 정작 뒤를 받쳐줄 후속작들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이에 반해 모바일 게임 부문은 나라 안팎을 가릴 것 없이 차기작들을 불러모으면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PC 온라인과 모바일로 나눠 각자 책임제였던 회사의 균형은 어느새 “결국 모바일인가”로 귀착(歸着)되는가 싶었다. 어쩌면 직시해야 할 현실이었을 수도 있었다. 고심 끝에 회사 수장이 선호하는 경영 방식 중 하나인 공격적인 투자로 배수의 진을 쳤다. 투자 대상은 블루홀이었는데, 알고 보니 이게 신의 한수였다. 내달 1일 모회사인 카카오와 게임 사업을 물리적으로 통합하는 카카오게임즈가 만 1년 전부터 지금까지 기복을 보이면서 겪은 소사(小史)다.

최근 8개월 동안 전 세계 게임 시장을 수놓고 있는 주인공으로는 ‘배틀그라운드’(정식 명칭: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를 꼽는다. ‘배틀그라운드’를 체험하려면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 콘텐츠 집산지인 스팀을 거쳐야 하는데, 아직 정식 서비스가 되지 않고 일종의 미리 해보기 단계이건만 지구촌 방방곡곡에 1800만 장이 팔려나갔다. 게임에 동시 접속하는 숫자도 230만 명에 달한다. 이 기간 누적 매출은 미화 5억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한국산 게임으로는 최초로 전 세계 e스포츠 분야를 장악할 개연성도 충분하다. 이 게임을 만든 곳이 바로 블루홀이다.

덕분에 블루홀의 장외(비상장) 주가는 당초 3만 원선에서 한때 78만 원까지 치솟았다. 시가총액도 5조 5000억 원을 상회하고 있다. 사내에서 복덩이가 된 김창한 책임프로듀서 등 ‘배틀그라운드’ 제작진 역시 펍지라는 독립 법인으로 승격했다. 이를 지켜본 유수의 글로벌 게임 기업들은 ‘배틀그라운드’를 품에 안고 싶어하거나 블루홀과 살을 섞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때론 먼저 낚아챈 곳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일례로 “왜 하필 입지도 약한 DMM게임즈가 일본 내 채널링을 맡게 됐는지 납득이 안간다”고 말한 일본의 대표적인 게임 기업 캡콤 관계자의 푸념은 아쉬움이 오롯이 묻어난다.

이처럼 웬만해서는 범접하기 힘든 흥행작이 지난 8월 카카오게임즈의 손에 들어왔다. 카카오게임즈에서 ‘배틀그라운드’를 총괄 담당하는 김상구 이사(PC 사업본부장)는 당시를 두고 “포트폴리오가 절박했다”고 소회한다. 이런 심정은 ‘배틀그라운드’의 국내 배급권을 반드시 따내기 위한 정성을 낳았다. 물론, 단순히 절박하다는 술어(述語)만으로 계약이 성립된 건 아니다. 판권을 놓고 자타공인 업계 1위 기업 넥슨과 겨루던 찰나였기 때문이다.

간절함이 상대에 통할 수 있게 된 구심점은 남궁훈 카카오게임즈 대표의 선견지명에서 나왔다. 2016년 말 카카오게임즈는 블루홀의 차기작인 온라인 게임 ‘프로젝트W’의 유럽·북미 판권을 갖게 된다. 이와 함께 블루홀에 지분 참여를 단행했다. 올해 3월 카카오게임즈가 공시한 연결감사보고서를 보면 50억 원이 블루홀에 투자된 것으로 명시돼 있다. 이어 새해 벽두에는 카카오게임즈와 카카오가 성장나눔게임펀드를 조성해 각각 50억 원을 제3의 회사인 넵튠에 투자했고, 넵튠은 다시 이 자금 중 절반을 블루홀에 썼다. 이로써 범(汎) 카카오 측은 직·간접적으로 총 100억 원을 제공하면서, 이에 비례해 블루홀의 지분율도 끌어올렸다.

그 무렵 블루홀은 오늘날의 ‘배틀그라운드’로 대박을 칠줄 꿈에도 모른채 한참 몰입하던 터라, 내부 자금 사정이 녹록지 못했다. 지출될 비용은 줄줄이 기다리는데, 자금 조달력은 이를 충족시키기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막혔던 혈을 뚫어준 곳이 카카오게임즈인 셈이다. 카카오의 게임사업총괄 부사장도 겸하고 있는 남궁훈 대표는 일련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꼼꼼하되 거침없이 방점을 찍었다.

또한 물적 지원을 얻은 블루홀 입장에서 카카오게임즈는 사업적으로 매력적인 동반자나 마찬가지였다. 앞서 카카오게임즈는 ‘검은사막’으로 유럽과 북미 무대에서 홈런을 날렸고, 성취감을 맛본 인력들은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블루홀은 태생이 온라인 게임 개발인데다 회사 창업자인 장병규 의장부터 서구권 시장에 대한 갈증이 남달라, 어려운 살림에도 현지에 법인을 유지할 만큼 “언젠가는 정복하겠다”는 의지가 컸다. 블루홀로서는 카카오게임즈의 이 같은 실전 경험에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국내 업계에서는 ‘배틀그라운드’의 돌풍에 대해 “이제 막 시작했기 때문에 더 무섭다”며 혀를 내두른다. 오는 11월 14일 정식 발매에 맞춰 향후 격차가 얼마나 벌어질까 경쟁 기업들은 숨 졸이는 모습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칫 대척점이 될 뻔한 카카오게임즈는 어느새 최대 수혜자로 부상하고 있다. ‘배틀그라운드’에 저항할 대체재가 아직 국내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카카오게임즈는 엄청난 어드밴티지(advantage)를 획득했다. 지도자의 혜안(慧眼)과 절묘한 타이밍, 여기에 간절함으로 첫 단추를 운좋게 채운 만큼 이젠 적토마(赤兎馬)에 올라탄 행운을 실적으로 갈음할 수 있도록 각론을 풀어가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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