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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52. 순리대로 사는 삶

입력 : 2017-11-05 21:22:13 수정 : 2017-11-05 21: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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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쌀쌀해졌다. 전국의 산들은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고 서울에는 첫서리가 내렸다. 이제 겨울이 한걸음 다가선 느낌이다. 낙엽이 떨어진 나무를 보면서 작년 늦가을이 생각났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걸어가다 문득 ‘아직도 남아있는 잎이 있을까’란 생각에 위를 바라봤다. 앙상한 나무는 겨울이 오기 전에 가지에 달린 낙엽들을 매몰차게 떨궈내고 있었는데 가지 끝에 매달린 작은 이파리는 모진 바람에도 흔들릴 뿐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세상만물은 시절인연이 있고 다 때가 있는데 순리를 거역하는 것처럼 처량한 것이 있을까.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그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나뭇잎이 어찌 보면 가상할지 모르나 한편으론 안타까운 존재다. 나무의 입장에선 상당히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계절이 바뀌면 자연은 준비를 한다. 떨어진 낙엽은 뿌리를 보호하고 그 잎이 썩으면 영양분을 공급받아 내년 봄에 새로운 꽃과 잎을 피울 수 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그런데 다른 잎은 모두 떨어졌는데도 자신만은 떨어지지 않으려 매달려 있는 이파리를 보면서 과연 아름답다 느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히려 자연의 순리를 역행 한다 할 테니 놓을 때는 과감히 놓아야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도 평상심을 잃으면 주변을 살피지 못한다. 권력을 남용하거나 과욕을 부리거나 아랫사람을 힘들게 하면 그 업을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업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는데 정작 본인은 알지 못한다.

고위공무원 A씨는 후배들의 앞길을 막은 사람으로 유명했다. 고위직에 오른 처음 몇 년 동안 그는 자리보전을 위해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싹수가 보이면 한직으로 내몰거나 그만 두게 만들었다. 능력 있는 후배를 양성하여 이름다운 은퇴를 준비하는 것과는 반대의 행동을 보인 것이다.

그를 보면 내심 불안했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듯이 이 세상에 영원히 지속되는 권력이 어디 있던가. 언젠가는 내려올 사람이 권력의 끝을 놓지 못하고 발버둥치는 그의 모습은 가을날 마지막 남은 이파리를 연상케 했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그의 시대도 정권이 바뀌자 가장 추한 모습으로 사라졌다. 그를 위해 아무도 나서지 않는 쓸쓸한 퇴진이었다.

그가 물러나자 한직으로 밀려났던 이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영적인 눈이 맑고 만화를 좋아하는 B씨도 함께 복귀했다. 그는 항상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았던 사람이다.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 말을 경청하기를 좋아했고, 특히 영혼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 관련 서적도 두루 섭렵했다.

공직자들은 “승진은 언제 되느냐, 무슨 자리로 갈 것 같습니까”라며 자리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는데 B씨의 경우는 달랐다. “UFO는 있습니까?” “저도 영가를 좀 볼 수 있을까요?” 등 엉뚱한 질문을 하는 바람에 나를 당황하게 만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한동안 밀려나 좌천당했을 때 심적으로 힘들지 않았느냐 물으니 “때가 되면 좋아질 거로 생각했습니다”라며 말한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무욕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도 사실 그에겐 자신도 모르는 복이 있었다. B씨는 타고난 성품 탓도 있지만 교만하지 않고 처음과 끝이 한결 같았다. 즉 평상심을 유지하는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그만의 든든한 노하우였다. ‘물 흐르듯 살자’는 본인의 좌우명이 그를 행복하게 만든 것이다.

구명시식을 한 지도 어언 30여 년이 되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나도 언젠가 구명시식을 접을 날을 생각한다. 된바람을 맞으면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낙엽이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구명시식을 모두 마치는 그날을 위해 평상심을 유지하고 순리대로 살려고 한다. 멈출 때 멈추는 것도 끝이 아름다운 이치 아니겠는가.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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