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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11-22 10:51:46, 수정 2017-11-22 11:19:17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방탄소년단 띄우기, 미국은 무슨 생각인가

  •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이 갑자기 국내 모든 문화 이슈 중심에 섰다. 지난 20일 미국 로스엔젤리스 마이크로소프트씨어터에서 열린 제45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덕택이다. 방탄소년단은 이 행사에 아시아 아티스트론 유일하게 초청돼 공연을 펼쳤다. 한국 아티스트 차원에선 2012년 싸이가 MC해머와 함께 한 피날레 공연 이후 두 번째다. 그러나 그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다. 싸이는 ‘강남스타일’ 현상을 위시로 한 일종의 이벤트 적 성격이 짙었다. ‘마카레나’나 ‘PPAP’ 등처럼 곡 하나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트렌드 반영이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은 아티스트 그 자체로 주목받는 분위기다.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직전 상황으로도 알 수 있다. CBS ‘레이트 레이트 쇼’, NBC ‘엘렌 디 제너러스 쇼’, ABC ‘지미 키멜 라이브!’ 등 미국 3대 전국방송 간판 토크쇼에 차례로 초청받았다. 지나가는 이벤트로서 가볍게 소비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더 얘길 들어봐야 하는’ 아티스트로 인식하고 있단 방증이다. 한편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이후론 상황이 더 어마어마해졌다. 미국 구글 트렌드 급상승 1위, 관련 트위터 2000만 건 등이 이어졌다. 그러다 다음날 아침엔 ABC ‘굿모닝 아메리카’에서까지 다뤄졌다. 평범한 미국인들이 커피, 비타민과 함께 아침을 여는 42년 전통 대표 아침프로그램이다. 싸이 때와는 방향도, 규모도 다르다. 롤링스톤 등 저명한 음악전문매체들 주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럼 이제 방탄소년단 관련 논의의 중심은 다른 곳으로 이동될 필요가 있다. ‘미국’이 키워드가 될 수밖에 없다. 왜 미국인가, 그리고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란 부분이다.

    먼저 ‘왜 미국인가’를 생각해보자. 미국 내 K팝 인기기반은 여러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다. 일단 K팝에 살갑게 반응하는 히스패닉계 인구가 미국 내 급증하고, 그에 더해 기존 K팝 기반이었던 아시아계 인구가 제대로 반응해주는 인종적 데모그래픽 상황을 들 수 있다. 거기서부터 서서히 여타 인종들로도 뻗어나간 구도다. 물론 그 외에도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존재한다. 그런데 개중 왜 방탄소년단이 ‘유독’ 인기를 모으고 있느냐는 부분은 또 따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SNS 기반활동 등 방탄소년단 특유의 ‘인터넷 친화’ 노선에 대해선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세계 공통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팀 자체의 극단적 퍼포먼스 완성도 등 요소도 마찬가지다.

    가장 먼저,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도 자신들 해외인기 비결로 언급한 바 있듯, 방탄소년단 음악이 기본적으로 힙합 베이스란 점을 들 수 있다. 현 시점 미국 대중음악계 흐름의 주류 중 주류가 힙합 베이스다. 2000년대 들어 수많은 흑인 아티스트들이 이 계열에서 초대형 히트곡들을 내왔고, 에미넴 등 여타 인종 아티스트들도 자연스럽게 이 무드에 녹아들어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시장서 먹히는 여타 K팝 아티스트들로도 힙합 베이스 팀들인 빅뱅, 블랙핑크 등을 더 들 수 있다. 여타 K팝 아티스트들과 미국 내 반응 차가 크게 난다. 얼마 전엔 미국드라마 ‘더 볼드 타입’에 블랙핑크의 ‘휘파람’이 배경음악으로 삽입되기도 했다. 올 초 영화 ‘라라랜드’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엠마 스톤 역시 과거 한 미국토크쇼에 등장해 “K팝을 좋아하며 그 중에서 2NE1을 가장 좋아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렇게 현 시점 K팝은, 힙합 베이스 팀들은 북․남미와 동남아 등지에서, 그리고 또 다른 양대 산맥인 신스팝 계열은 유로팝 전통이 살아있는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더 손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취하는 음악적 베이스 차이로 K팝이 받아들여지는 지역도 달라질 수 있단 얘기다.

    한편 이 같은 음악적 특성을 바탕으로 봤을 때도 방탄소년단엔 확실히 주목받을 만한 남다른 구석이 더 있다. 방탄소년단은 여타 국내 힙합 베이스 아이돌들과 달리, 이른바 ‘미국 티’를 안 내는 편이다. 미국 현지스러운 자유분방함과 도발성 등등을 모방해 아이돌문화에 덮어씌우려는 게 아니다. 음악 자체는 힙합 베이스이되 무대 차원에선 엄격히 한국 아이돌상품에 특화된 칼군무를 토대로 퍼포먼스를 펼친다. 멤버들 외모나 스타일링도 한국형 아이돌에 훨씬 가깝다. 이러면 하염없이 미국을 좇는 ‘따라잡기’, 즉 ‘유사상품’ 이미지에서 벗어나, 미국인들 입장에서 이전까지 경험해본 적 없는 독특한 ‘특화상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서로 만난 적 없는 다른 개념의 결합,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의 신비한 조합이다.

    나머진 이처럼 미국시장에 유리한 방탄소년단 요소들이 기존 방탄소년단이 선택한 인터넷 친화 노선 등과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봐야한다. 한국식 아이돌 마케팅과 팩키징을 가장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유도하며 그에 낯선 미국인들을 서서히 끌어들였다.

    이제 다음, 어쩌면 K팝 전체 차원에선 훨씬 중요한 부분일 수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란 부분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번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나 그 이전 각종 미국토크쇼들을 보면 이들이 방탄소년단을 지목하며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몇 가지 표현이 있단 점을 알 수 있다. “세계(world)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그룹” “국제적(international) 센세이션” 등이다. “K팝”이니 “코리언 웨이브”니 하는 단어는 잘 안 나온다. 이들 입장에선 “한국”이 중요한 게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월드”와 “인터내셔널”, 즉 ‘미국 밖 사정’에 민감한 측면이 훨씬 크다. 그리고 그렇게 된 역사가 따로 존재한다.

    미국은 애초 정치군사적 패권이 곧 문화패권으로 옮아가 세계문화를 호령했던 국가다. 특히 냉전시대에 엄청났다. 공산주의로부터 자본주의를 지키는 자유세계 전체 리더 역할을 맡았기에 그 중심적 위치를 자유세계 전체가 인정했고, 그만큼 그들 문화상품도 손쉽게 자유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 일종의 ‘권위’이자 ‘권력’으로서 영향을 끼쳤다. 그러면서 동시에 미국 내에선 ‘해외문화는 알 필요 없다’는 식 자만심이 일었다. 실제로 냉전 긴장감이 극에 달했던 1980년대 내내 미국선 해외문화상품이 괄목할 만한 인기를 얻은 적이 한 번도 없다. 1970년대까진 ‘파리의 마지막 탱고’ ‘새장 속의 광대’ 등 해외영화들도 잘만 보던 미국인들이지만, 이 시기 이르러선 자막 읽는 것 자체를 낯설고 불편하게 여기게 됐다.

    그러다 문제는 1990년대 초반, 냉전종식과 구(舊)소련 붕괴 등으로 세계 속 미국의 위상이 급격히 하강하면서 비롯됐다. 세계는 이제 예전처럼 미국 중심으로 모여들지 않고 뿔뿔이 흩어졌다. 미국은 이어 미국인들조차 공감하기 어려워한 걸프전에 돌입, 기존 미국의 절대선(善)적 위치를 확신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이른다. 그러면서 대중문화시장 분위기 역시 그런지 밴드 너바나나 영화 ‘펄프 픽션’처럼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콘텐츠가 인기를 얻는 흐름으로 옮아갔다. 동시에 세계문화계에 대한 영향력도 크게 줄었다.

    미국이 다시금 ‘세계’로 눈길을 돌려 해외문화상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갑자기 스페인서 건너온 ‘마카레나’가 빌보드차트 14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홍콩서 온 성룡의 ‘홍번구’가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때부터 자주 등장하게 된 표현이 바로 ‘월드’와 ‘인터내셔널’이다. 이젠 미국이 세계문화를 이끌어가는 시점이 아니니 미국도 세계가 뭘 즐기는지 알아야 한단 입장이 대두됐다. ‘월드’와 ‘인터내셔널’은 곧 미국이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할 수 있단 점을 경계하는 단어와도 같았다.

    이후로도 이 같은 흐름은 끊긴 일이 없다. 오히려 점점 심화됐다. 미국 내 소수인종그룹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히스패닉계 제니퍼 로페즈와 푸에르토 리코에서 온 리키 마틴이 최정상급 팝스타로 거듭났다. 한국계 마가렛 조가 주연을 맡은 시트콤 ‘올 아메리칸 걸’도 등장했다. 중국계 배우 루시 리우는 등장 즉시 스타덤에 올랐다. 그리고 이 흐름이 극점을 치게 된 계기가 바로 2001년 9.11 사건이다. 세계 어딘가에선 미국을 그 정도로 증오하는 이들이 있었단 점에 미국인들 전체가 충격 받았던 사건이다. 세계를 알아가고자 하는 분위기는 더욱 열렬해졌다. 심지어 유독 미국서만 인기 없던 스포츠, 축구에 대한 열풍까지 일었다.

    그리고 이제 2010년대 이르러, 이 같은 흐름은 또 다른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이른바 문화계 PC(Politically Correct) 열풍이 인종그룹에 대한 문제로 번진 상태다. 2015년 아카데미상 주요 후보군에 유색인종이 단 한 명도 없다며 시작된 ‘오스카 소 화이트(oscar so white)’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거기다 친(親)민주당 성향 미디어들에 의해 인종차별주의자처럼 묘사된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 같은 분위기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문화계 차원에서 더더욱 거세졌다. 정치적 기류에 대한 실망과 반발에서 시작된 반골적 흐름이다. ‘어떻게 해서든’ 인종적 다양성, 문화다원주의를 문화계 전체로 확산시키는 것이 곧 ‘트럼프 시대 미디어’의 절체절명 사명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런 전반적 흐름이 미국대중음악시장 내 마이너 기류 대표주자로 낙점된 방탄소년단에게까지 온 것이다. 미디어들은 갑작스레 호들갑을 떨며 다시 “월드”와 “인터내셔널”을 외쳐대기 시작했다. 한 인터뷰어는 방탄소년단을 만난 자리에서 “계속 한국어로 노래해 달라”고 주문하기까지 한다. 방탄소년단 자체가 지닌 특․장점과 미국 내 모든 종류 사회문화적 기류가 한꺼번에 클릭돼 톱니바퀴가 맞아떨어진 결과가 바로 지금이란 얘기다.

    사실 그간 K팝은 미국 내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봐오던 현상이 맞긴 하다. 위 엠마 스톤 사례처럼 문화 흐름에 민감한 이들, 특히 문화계 종사자들이라면 꾸준히 인지는 하고, 또 그 가능성을 타진해보던 흐름이 최소 4~5년 전서부턴 존재했다. 그런 흐름이 차곡차곡 쌓여 2017년 현 시점 이르러선 미국대중음악시장 내 ‘마이너리그 중에선 최고 위치’까지 올라가있는 상태다. 그리고 이제 여기에 방탄소년단의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충격’이 더해졌다. 내년쯤 되면 거기서 한 단계 더 올라간 ‘메이저리그 중에선 마이너 위치’까지 이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아 보이지만 실제론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한 발짝’이다.

    끝으로, 방탄소년단의 성공적 미국 메인스트림 무대 진출이 지닌 실제적 의미를 돌아보자. 이는 단순히 ‘큰 시장 하나가 더 늘었다’는 차원이 아니다. 미국시장이 무서운 이유가 있다. 여전히 세계는 미국문화를 주목하긴 한다. 그 상품을 ‘직접’ 가져오는 일이 상대적으로 줄었을 뿐, 그 문화적 트렌드 자체엔 여전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국서 일정정도 이상 반향을 이끌어냈다는 정황이 포착되면 자연스럽게 나머지 전 세계도 그에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부턴 미국서 유난히 잘 먹히는 힙합 베이스니 뭐니 하는 해석도 무의미해진다. 그냥 세계상품이 된다.

    나아가 세계 곳곳의 반(反)한류 분위기까지 한풀 꺾인다. 미국문화시장의 ‘권위’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장 가장 혐한 분위기가 심하다는 일본 인터넷 커뮤니티 2ch(이젠 5ch)만 봐도, 이번 방탄소년단의 미국 열풍을 놓고선 전에 없이 한류 자체를 마지못해 인정하고 그에 대한 비아냥을 포기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그래봤자 전체 흐름에 일말의 타격조차 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K팝이, 나아가 한류 자체가, 실질적 세계화 단계에 이르는 시점도 어쩌면 먼 훗날에 이르러선 방탄소년단의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공연 전과 후로 나눠 생각하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의 한가운데 있다”는 거창한 표현이 딱히 낯간지러운 예찬처럼만 여겨지진 않는 시점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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