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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12-03 18:46:08, 수정 2017-12-03 18:46:08

[차길진과 세상만사] 160. 선한 마음이 부른 악업

  • 오래전 돈이 없어 음식 값을 안내고 도망을 갔다가 형편이 좋아진 후 익명으로 이자까지 더하여 돈을 갚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와 비슷한 사례들이 여럿 있는 것을 보면 누구에게나 마음 한구석에 빚이 하나쯤은 있는 듯하다. 상대방은 시간이 흘러 기억을 못하지만 나쁜 기억으로 간직하는 당사자는 하루라도 빨리 그 빚을 털어내고 마음을 가볍게 하고자 한다. 하지만 간혹 밑바닥에 있던 죄의식이 뜬금없이 떠올라오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전직 수사관이 찾아온 적이 있다. 지금은 자영업을 하고 있는 그는 현직에 있을 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 있는 경제 전문 수사관이었다. 가정도 안정적이고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말하는데 그의 안색은 그리 편해 보이지 않았다. 파리한 낯빛이라 무슨 큰 병이라도 걸린 듯 보였다. 그의 병명은 다름 아닌 ‘신경쇠약’이었다.

    “지금까지 저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경찰로 근무할 때나 정년퇴직한 후에도 법대로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양심에 걸리는 일은 추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밤만 되면 누군가가 내 가슴을 꽉 누르는 것 같아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병원에서는 단지 신경쇠약이라고는 하는데...”

    최근에는 신경쇠약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참선에 심취해 있다는 그는 자신의 병이 ‘영혼세계’와 연관된 것은 아닌가하여 나를 찾았다고 고백했다. 그와 대화를 하면서 나 역시 같은 생각이기에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구명시식을 올리기로 했다.

    구명시식을 하다보면 간혹 모르는 영가들이 나타난다. 그의 구명시식에도 초혼하지도 않은 영가 두 분이 나타나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초혼하지 않은 영가 두 분이 오셨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자신도 당황했던지 “혹시 금융계 간부였던 분과 부동산 영감님이 아니십니까?”라고 묻더니 “오늘 그 분들이 오실 줄 알았습니다. 늘 죄스러운 마음이 있었거든요”라고 말했다.

    사연인즉 이러했다. 1970년대 그가 경제담당 수사관이었을 때 사건에 연루된 금융계 간부가 토요일에 취조를 받으러 경찰서로 왔다고 한다. 그는 토요일에 취조를 받으면 제대로 쉬지도 못할 것 같아 나름 선처하는 마음에 ‘월요일에 다시 오라’고 했는데 그 간부는 ‘뭔가 크게 걸려들었다’고 오해를 하고 귀가 도중 한강에 몸을 던져 투신자살을 한 것이다.

    “저는 잘 봐주려고 돌려보낸 것인데 그 분은 지나친 강박관념으로 이를 견디지 못하고 한강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렸는데 그땐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의 말에 물귀신 영가의 억울함은 풀어졌지만 이번에는 부동산영감님 영가가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저 놈이 날 죽였어!” 하지만 이 역시 오해로 빚어진 사고였다. 강남 개발로 부동산투기 붐이 불어 투기꾼들을 잡아들일 때 그는 투기 지역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영감님을 찾아갔다. 단지 수사에 필요한 협조를 요청하러 갔을 뿐이었는데 그가 내민 신분증을 본 영감님이 그만 겁에 질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부동산영감님 영가에게도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는 “단지 가슴에 묻어놨을 뿐인데 영가들이 진짜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영가들이 나한테 쌓인 게 있었으니 제 몸이 이렇게 망가진 것도 당연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는 경제수사관으로서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상대방을 죽음에 이르게 한 업을 진 것이다. 나는 ‘저 사람 때문에 죽었다’며 앙심을 품고 있던 영가들을 잘 설득해 화해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오래도록 가슴을 무겁게 누르던 죄의식을 털어버린 그는 큰 짐을 벗었다며 가벼운 걸음으로 돌아갔다. 살다보면 선한 마음을 가져도 때로는 의도하지 않은 그늘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작업취사라 하지 않던가.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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