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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64. 본래 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

입력 : 2017-12-17 18:40:49 수정 : 2017-12-17 18:4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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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혼란할 때 그리고 관리자가 물욕에 빠질 때 문화재는 수난을 당한다. 다행인 것은 그렇게 수난을 겪은 문화재들이 속속 제자리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보물 제1693호에 지정된 고성 옥천사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는 1976년 도난을 당해 행방을 알 수가 없었는데 지난해 프랑스에서 발견돼 옥천사에 다시 봉안됐다. 그 외에도 미국 경매시장에서 옥천사의 나한상을 30년만에 반환받는다고 한다. 사찰에 보관 중 사라져버린 문화재급 보물들이 의외로 많다. 오랜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화재를 잃으면 역사의 한 부분을 잃은 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예전 부산 범어사에서 문화재 유출 사건이 있었다. 이 일을 벌인 사람이 사찰 재무국장을 맡고 있던 스님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돈이 된다’는 유혹에 빠져 보물을 유출했다니 문화재 관리가 얼마나 허술했으면 그런 일이 벌어졌겠는가. 이후 문화재를 관리하고 있는 불교계에서 보안시설을 강구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오래된 사찰들이라 여전히 관리부재의 보물들이 많다.

20여 년 전의 일이다. 지방에 있는 모 사찰 주지스님이 갑자기 ‘만날 일이 있다’며 서울로 급하게 올라오셨다. 스님은 “큰일 났네! 우리 절에 있던 탱화 세 점이 사라졌어!”라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사라진 탱화 세 점은 오랫동안 산신당에 있었는데 너무 귀한 보물이기에 감정이라도 하면 외부로 공개될까봐 지금까지 금했다고 한다. 이제는 자신이 도둑으로 몰리게 생겼다며 한탄을 했다.

산신당 탱화는 주지스님이 각별히 아끼며 관리했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신도들이 갑작스레 그 탱화 세 점만 사라졌으니 주지스님을 용의자 리스트에 올려놓을 수밖에. “나는 부처님께 맹세코 그런 마음을 요만큼도 가져본 적이 없다네. 사실 몇 백 년 동안 산신당에 걸려있던 탱화였으니 돈으로 따지자면 우리 사찰에서 제일 값나는 보물 중에 보물일 테지. 반드시 이 보물을 찾아야 하네. 제발 나를 좀 도와주게나!”

스님의 말씀으로는 의심 가는 사람이 있는데 증거가 없으니 구명시식을 통해 해결 방안을 구할 수 없겠냐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나는 구명시식 요청을 거절한다. 범죄를 밝혀내고자 사용되는 의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님은 이 일로 그동안 닦아 온 중생제도의 길이 ‘도로아미타불’이 될 위기에 처해있다면서 통사정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어 그러겠다고 답을 했다. 가계(家系)로 이어지는 문화재 사랑이 있었기에 스님의 청을 들어드렸다. 그런데 구명시식에서 밝혀진 탱화 도둑은 스님이 의심했던 사람이 아닌 제3의 인물이었다. 범인은 주지스님께서 가장 믿고 있던 신도로 절에 불사도 많이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사업이 망하고 돈이 궁해지자 절에서 가장 으뜸가는 보물이라고 자랑했던 주지스님의 말을 듣고는 탱화 세 점을 몰래 훔쳐간 것이었다.

의식이 끝난 뒤 주지스님께 “아무 걱정 마시고 사흘 후 산신당에 가보십시오”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그 신도를 찾아가 “그 탱화는 사찰의 재산일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보물입니다. 이번 한번만 영계에서도 모르게 해드릴 테니 원래대로 갖다 놓으십시오”라고 타일렀다. 그리고 사흘 후 나는 주지스님의 전화를 받았다. “산신당에 탱화 세 점이 고스란히 돌아왔소. 모두 구명시식 덕이요!”

사실 그 탱화는 스님이 생각했던 것만큼 귀중한 보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탱화를 찾아드린 것은 세속에서는 낮은 가치의 물건일지 몰라도 적어도 그 사찰 안에서만큼은 최고의 보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치의 기준은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 달려있다. 오랜 세월을 절과 함께한 탱화가 돌아왔으니 스님은 잃어버릴 뻔했던 역사를 되찾은 거와 같다. 존귀한 문화재이건 그저 오래된 탱화이건 모두가 본래의 자리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나는 것이다.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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