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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1-12 20:06:28, 수정 2018-01-12 22:49:27

[송민섭의 통계로 본 교육] “영어광풍 끊어야” vs “탁상행정일 뿐”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논란 / 정부 “사교육업체 불안마케팅에 과열” / 학부모 “되레 학원으로 등 떠밀어” 반발 / 공론화 계기 삼아 근본적 논의 시작해야
  • “방과후 영어 수업 금지하는 거 진짜예요? 주변 엄마들 난리 났어요. ‘교육부 미친 거 아니냐’고….”

    지난해 11월말 한 후배로부터 이 같은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교육부가 2018학년 새학기부터 전국 초등학교 1, 2학년의 방과후 영어 수업을 전면 금지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였다.

    이 후배는 “큰아이가 이번에 초등학교 입학하면 따로 학원 안 보내고 방과후만 하려고 했는데, 이대로라면 당장 학원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다”며 “정부가 아이들을 학원으로 등 떠밀지 못해 안달이 난 모양”이라며 ‘부르르’ 떨었다.

    당시 파악하고 있던 내용을 설명했다. 초등 1, 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방침은 새 정부가 갑작스럽게 내놓은 정책은 아니라고. 2014년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학습금지법) 제정 때 초등 1, 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의 경우 2018년 2월28일까지만 한시적으로 허용했던 거라고 말했다.

    당장 가시 돋친 대답이 날아왔다. “진짜 말도 안 돼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눈 가리고 아웅’이란 말이 마음에 걸렸다.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교육정책 입안에 깊숙이 개입했던 여권 관계자에게 전후 사정을 물었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우리 사회가 언제까지 효과도, 실체도 없는 영어 광풍에 휩쓸려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무한 출혈경쟁’의 고리를 끊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누구나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작금의 ‘영어 배우기’ 열풍은 다소 과열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한다. 그의 말처럼 초등 1, 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는 ‘언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이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름 이런 식으로 사안을 정리했는데, 얼마 전 유치원 방과후 영어수업 규제 논란이 불거졌다.

    찬반 논리는 한 달 전과 비슷하다. 교육부는 “언제까지 사교육업체의 ‘불안 마케팅’에 놀아나야 하느냐”며 영어교육은 초등 3학년 이후가 가장 적기라고 강조한다. 교육부의 최근 ‘유아교육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효과는커녕 역효과만 나는) 유치원 방과후 과정에서 영어수업을 받는 유아는 전체의 46.3%(공립 32.3%, 사립 61.6%)였다.

    반대 측은 “영어가 곧 경쟁력이고 권력인 현실에서 돈 없는 부모는 영어를 가르치지 말라는 이야기냐”고 반발한다. ‘풍선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잖아도 최근 5년 사이 서울지역 ‘영어유치원’(유아 대상 종일제 영어학원) 수가 2013년 86개에서 2017년 161개로 2배 가까이 늘었는데, 유치원 방과후 영어를 금지하면 그 수요가 사교육 쪽으로 더욱 몰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달라진 점은 초등 1, 2학년과 달리 유치원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안은 새 정부 들어 새롭게 나온 것이고, 새해 다섯 살이 된 아이를 둔 기자에게는 이번 금지안이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는 점이다. 궁금증은 크게 두 가지다. ‘기회·과정·결과의 공정성’을 강조해온 문재인정부가 어떤식으로 “교육 격차를 더욱 벌리는 탁상행정”이라는 반발여론을 설득할 수 있을까. 또 하나는 대학 영어 전공자로서 나는 둘째 영어교육을 과연 학교에만 맡길 수 있을까.

    혼란스러운 와중에 영어 조기교육 금지론자로 알려진 이병민 서울대 교수에게 전화했다. 이 교수는 “초등 3학년 이전 영어교육 금지의 취지야 맞지만 정부가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부족했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정책의 일관성과 폐해에 관한 당위만 앞세웠지 정작 영어 실력에 따라 사회경제적 지위까지 좌우되는 현실을 어떻게 바꿔나갈지에 대한 비전은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이었다.

    교육부는 보건복지부와의 협의를 거쳐 이달 내로 유아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낼 방침이다. 시행을 1년 정도 유예하는 안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하지만 유예안이 본질적인 처방은 아닐 것이다. 당장 초등학교 1, 2학년 방과후 영어 허용 요구가 빗발칠 테고 1년 뒤엔 똑같은 논란이 거듭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참에 좀 더 바람직한 유아교육은 뭔지, 영어교육의 사회적 목표는 뭔지 공론화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싶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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