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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80. 버킷리스트와 유언장

입력 : 2018-02-13 19:04:29 수정 : 2018-02-13 1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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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Bucket List)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과 보고 싶은 것들을 적은 목록을 일컫는다. 이 말은 ‘죽다’라는 뜻의 영어 속어에서 나왔다.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는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라고 하여 주어진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했다.

2008년 동명의 영화가 개봉하여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말기 암 환자가 그들만의 소원 목록을 작성하고 여행을 통해 실천해 나가는 과정을 스크린에 담았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을 모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도 있다. 살아서도 할 일도 많지만 죽기 전에 꼭 할 일이 왜 없겠는가. 다만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니 하고 싶은 일도 다를 수밖에 없다.

혹자는 죽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의 발을 씻어 주라 하고, 혹자는 순례여행을 권하고 있지만 마지막까지 후회가 남지 않는 일이 진정으로 하고픈 일이 아닐까한다. 그렇다면 세상을 떠나 영가가 된 이가 생전에 하지 못해서 후회하는 일들은 무엇인가. 세계를 돌며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만리장성에 오토바이를 타고,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것일까. 그건 그저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 삶은 그보다는 훨씬 현실적이다.

어느 가족의 구명시식에서의 이야기다. 초혼된 아버지 영가는 아쉬움과 미안함을 토로했다. 아버지 영가는 “네가 사준 하얀 고무신을 신지 못해서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집안의 가장으로서 땅 한 평이라도 소유하고자 황무지를 개간하다 질환으로 쓰러졌다. 아버지는 평생 하얀 고무신 한 번 신고 싶다는 소원을 말한 적이 있었다. 가족들이 아버지의 머리맡에 고무신을 놓으면서 어서 일어나시라며 완쾌를 빌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그 하얀 고무신을 한 번도 신어보지도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지만 의지대로 안 되는 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다. 우리의 삶은 예측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매분 매초가 생의 전환점인 셈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태어나는 연습, 출근은 가족과 이별하는 연습, 다시 집에 돌아와 가족과 함께 하면 만나는 연습, 잠을 자는 것은 죽는 연습이지만 이렇게 연습을 해도 정작 이별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마음의 준비가 생각보다 힘들다. 가슴이 아프지 않도록, 아니 덜 후회되도록 미리 준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예전보다 평균수명이 길어졌다고는 하나 이별의 시간도 그만큼 늦추어진 것은 아니다. 평균수명이란 단지 숫자상의 평균일 뿐,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오늘 내가 벗어놓은 신발을 내일 다시 신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영계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후회 없는 하루를 살아야 하는 것이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하고픈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목록에 ‘유언장 작성하기’ 하나를 권하고 싶다. 유언장은 남겨줄 것이 많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수십 년을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도 서로 고맙다, 사랑한다 말 한마디 못하고 가슴속에만 담아 둔 말이나 미안했던 감정을 유언장을 통해 풀어야 한다.

이제 곧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이다. 친척들이 모이고 멀리 떨어진 형제들이 다 함께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서로 덕담을 나누는 날이다.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헤어진 친구들은 만나서 마음을 열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그런 다음 다시 새로운 유언장을 만들면 어떨까.

이렇게 유언장을 반복해서 만들다 보면 언제 갑자기 세상을 떠나더라도 섭섭함 마음이나 미안한 마음은 없을 것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별할 수가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쓸 것이 없는 유언장이 진정한 버킷리스트가 아닐까한다.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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