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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91. 수박 껍질은 드시지 마세요

입력 : 2018-03-25 18:28:19 수정 : 2018-03-25 18: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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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제철 과일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았는데 딸기며 참외, 그리고 수박까지 하우스 재배로 마트에는 과일이 풍성하다. 많은 과일 중에 수박에 얽힌 가슴 뭉클한 사연이 있다. “그게 무슨 수박입니까?” 구명시식을 청한 50대 중년 남성이 커다란 수박을 가져왔다. 가져오라 말한 적도 없는데 그는 쑥스러워하며 수박을 옆에 놓았다. 때는 겨울이라 수박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분명 무슨 사연이 있는 듯 싶었다.

그의 집은 가난했다고 한다. 형제가 많은데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어 그는 밥을 배부르게 먹은 기억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가족들을 원망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힘들게 일을 하셨고 아버지는 아프셨지만 여러 형제들에게 따뜻한 말을 잊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비록 가난했지만 참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조금만 더 오래 사셨으면 제가 잘 해드렸을텐데 아쉽습니다.” 구명시식을 시작하자 나타난 아버지 영가는 “얘야, 나 수박 좀 먹고 싶구나”라고 말했다. 영가의 말을 전하자 아들은 ‘우리 아버지가 틀림없다’며 얼른 보기 좋게 자른 수박을 아버지 영단에 올려놓았다.

그가 밝힌 수박에 얽힌 사연은 이랬다. 어느 여름 날 집에 가보니 아버지가 수박껍질을 쌓아놓고 핥고 있었다. “아버지, 이게 왠 수박껍질이에요?” 그러자 아버지는 얼른 수박껍질을 뒤로 감추시며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아들의 추궁이 계속되자 할 수 없이 실토했다.

“내가 수박이 너무 먹고 싶어서, 사람들이 노는 개천까지 걸어가 먹다 버린 수박껍질을 좀 가져왔다. 이거 봐라, 여기 붉은색 수박이 그대로 붙어있지 않니?”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 가슴이 아팠다. 더욱이 중풍으로 한쪽이 마비된 아버지가 다리를 절룩이며 개천까지 걸어가 수박껍질을 줍는 장면을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졌다.

그는 수박껍질을 감춘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아버지, 내가 진짜 큰 수박 사다드릴 테니까, 이런 것 드시지 마세요.” 아버지는 눈물 흘리는 자식을 볼 면목이 없어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내가 몸만 성했어도 너한테 이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 건데.”

하지만 아들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어린 아이에게 수박 살 돈은 쉽게 생기지 않았다. 수박서리를 할 생각으로 수박밭을 몇 번이고 서성거렸지만 용기가 없어 번번이 실패했다. 어떻게든 여름이 끝나기 전에 아버지에게 수박을 드리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그해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시고 말았다.

“아버지, 수박 큰 거 사왔어요. 제가 너무 늦게 갖고 왔죠? 이거 다 드셔야 해요.” 이제야 그가 수박을 갖고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마트에 진열된 수박만 보면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울컥했다고. 그때 수박서리라도 해서 드리지 못한 용기 없는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말하자 영가는 “이렇게 잘 자란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오늘 수박을 맛있게 먹었으니 더 이상 여한이 없다”며 아들을 위로했다.

“정말 아버지가 오셨어요.” 그는 아버지가 오시면 수박부터 찾으실 줄 알았다며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를 위해 수박을 사드리지 못하고 그렇게 세상을 떠나신 게 한이 되었는데 이제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고 했다. 그동안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짐작이 된다.

“아버지, 이제 껍질은 드시지 마세요.” “그래, 껍질은 안 먹을게” 아버지 영가도 맛있게 수박을 드셨다. 오십이 넘어서야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수박을 올린 아들은 세월에 묵힌 눈물을 모두 쏟아냈다. 요즘 마트에 나와 있는 수박을 보면 그는 아마 아버지 생각에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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