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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위기의 제일병원, 간호사 50명 집단사직

입력 : 2018-04-03 09:59:40 수정 : 2018-04-03 09: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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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원 기자] 서울 소재 대형 산부인과 전문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의료 최전선에서 일하는 이들이 추가로 동요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 병원 내 환자들 지원에도 파장이 미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제일의료재단 단국대 제일병원 간호사 50명은 최근 병원 측에 동반 사직서를 냈다. 이 병원이 설립된지 55년만에 초유의 사태이자 국내에서 보고되지 않은 이례적인 상황이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간호사 50명이 사직서를 제출했고, 간호부 450명 중 절반 이상인 240여명이 퇴직의향서에 서명을 마친 상태다.

◆임금 반납, 자진 퇴직했는데… 돌아온 것은 ‘재정위기’

이번 사태는 궁극적으로 직원들이 경영진에 대한 신뢰가 깨진 데서 비롯됐다. 제일병원은 5년째 적자상태로 2016년부터 경영난에 빠져 있었고, 제일병원 노동조합은 밀려오는 병원 부도위기를 모면하고 경영정상화를 위해 근로조건 권리를 양보하기도 했다.

2017년 6월 임금단체협약에서는 간호사·의료기사·행정직 직원들은 연봉의 약 15%를 반납하고, 추후 병원경영이 흑자로 전환됐을 때 이를 돌려받기로 합의했다. 병원 측은 이를 납득하지 못하는 직원들로부터는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당시 노조가 요구한 것은 이사회의 투명경영과 재정건전화가 핵심이었다.

하지만 이사회는 이후로도 매달 8억원씩 적자를 냈고, 재정건전화 대신 110억원 규모의 신관 신축공사를 택했다. 이런데도 상임이사에 현 이사장의 가족을 무리하게 앉히며 직원 불만은 고조됐다. 지난 3월에는 노조 측에 “올해 운영자금이 200억원 이상 부족할 것으로 예상돼 급여지급이 불투명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간호부장 해임, 갈등 폭발 시발점… “참을만큼 참았다”

비상식적인 인사행정도 문제였다. 특히 이번 간호사들의 집단사직은 지난 3월 16일 전임 임수진 간호부장을 보직해임하면서 비롯됐다. 임 전 간호부장은 2017년 인사발령을 받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부장직을 박탈당했다.

간호사들은 이런 사태에 병원의 해명과 복직을 요구했다. 간호부 내에서 신뢰가 두터운 인물을 끌어내린 데 의아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병원은 “역량강화를 목표로 해임했다”고 밝혔으나, 간호부 직원 A모 씨는 “지난해만 하더라도 전임 간호부장의 ‘역량’ 덕분에 오히려 업무환경이 수월했다”고 반문했다.

새로운 간호부장은 2017년에 희망퇴직을 했던 직원이다. 이사회는 임 전 간호부장을 해임하고 신임 부장에게 다시 ‘러브콜’을 했다. 현재 간호사들은 “이번 인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보직해임된 임 전 간호부장은 사직서를 제출했다.

원내에서는 ‘전 간호부장이 이사장단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임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전 간호부장은 이사회의에서 ‘쓴소리’를 했던 유일한 인물이라는 게 직원들의 전언이다. 반면, 병원 측은 이와 관련 “절대 그렇지 않다”고 일축했다.

◆병원 측 “직원들은 사용자 인사권 인정해야”

제일병원 관계자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근로자에게는 노동권이, 사용자에게는 인사권이 있으며 각각 서로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며 “간호부 인사발령 건은 전임 간호부장에 대한 질책성 인사가 절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로 보직해임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그럼에도 간호부는 이를 무시한 채 인사권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사태는 노조가 개입한 부분이 크다”며 “노조가 병원과의 갈등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간호부는 그저 중간에 끼인 것”이라고 토로했다.

노조 측은 이러한 병원 입장에 답답하다는 반응이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 측에서 직원 퇴사를 권유할 이유가 무엇이겠느냐”고 말했다. 임수진 전 간호부장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오히려 노조는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을 말렸고, 이전에는 노조와 갈등도 있었다”며 “이는 병원 경영진에 실망한 간호사들 스스로의 의지이지 누군가에게 선동당한 게 아니다”고 했다.

◆사직의향서 제출직원 20%만 퇴사해도 주요부서 ‘운영 불가’

현재 제일병원 간호부는 순번을 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력난에 빠져 있다. 사직의향서를 제출한 직원의 20%만 실제 퇴사해도 간호부 주요부서 운영이 불가피해진다. 결국 환자들이 감수해야 할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외래 소아과병동, 신생아중환자실(NICU) 의료진들은 벌써부터 긴장하는 분위기다. 이 병원 간호사 B모 씨는 “일부 의사는 이런 상황에 통감하면서도 실질적인 행동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이기헌 제일병원장은 지난 22일 사내 커뮤니티에 “비방을 멈추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호소문을 게재한 바 있다. 그는 “병원은 지금 너무나도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 위중한 시기”라며 “왜곡된 사항을 근거로 직종 간 갈등을 조장하고, 동료의 정서를 부추겨 불신을 조장한 선동행위는 원내 조직문화를 훼손하고 파괴하는 행동”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피해는 환자에게 고스란히… 병원은 ‘묵묵부답’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사들은 이달 말까지 부당한 인사발령이 원상회복 되지 않는다면 집단사직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경영진은 3월 28일 ‘단체로 사직의향서를 내겠다’는 간호부 입장에 “그럴 경우 퇴직금 지급이 어렵다”는 반응이다.

B모 씨는 “사직서를 제출해도 신경쓴다기보다 ‘병원 일이 돌아가는 데 차질없게 하라’라거나 ‘퇴직금 지급은 시간이 오래 걸릴수 있다’는 반응”이라며 “간호사를 소모품으로 본다는 생각에 슬프다”고 했다.

노조 측은 집단 퇴사를 막으려 하고 있다. 재단에서 퇴직금 지급도 어렵고, 설령 지급하더라도 남은 직원의 임금 지불이 어렵게 되는 상황에 빠지는 게 현실화되기 때문이다.

임수진 전 간호부장은 “30년간 이 병원에서 큰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근무해왔지만 점점 당장 내일 부도가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 빠져가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며 “병원이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직원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조차 없다는 데 크게 실망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을 떠나지만 향후 전문경영인이 들어와 다시 제일병원의 브랜드를 되살릴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국내 최초 민간여성병원인 제일병원은 55년 동안 국내 정통 산부인과·여성병원으로 불려왔다. 1974년 국내 최초 산부인과 영역에 초음파 진단법을 도입했고, 1986년 민간병원 최초로 시험관아기 임신에 성공했다. 2년 뒤에는 국내 최초로 부인과 레이저 복강경 수술에 성공했고 2009년에는 국내 최초 여성암센터를 설립하는 등 여성건강 분야에 집중해왔다.

제일병원은 1996년 삼성의료원에 편입된 이후 병원 설립자인 고 이동희 씨의 손자 등 외부인사가 경영을 맡아왔다. 고 이동희 씨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사촌지간이다. 이 병원은 2005년 삼성의료재단을 떠나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설립자의 아들 이재곤 씨가 제일의료재단 이사장이다.

happy1@sportsworldi.com



제일병원 간호사들이 현 인사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제일병원 보안담당자가 벽보를 제거하고 있다.

병원 곳곳에 “현 인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벽보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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