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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닐로 논란,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과 닮았다

입력 : 2018-04-23 14:58:50 수정 : 2018-04-23 14:5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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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닐로 사건이 공론화 추세를 걷고 있다. 20일엔 KBS2 ‘연예가중계’에서 상황을 심층적으로 다루며 지상파방송 보도까지 이뤘다. 그 직전, 18일엔 한국매니지먼트연합에서도 매니지먼트 제재, 성명서 발표 등 강경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한국매니지먼트연합 현 대표는 2013년에도 SM, JYP, YG엔터테인먼트 등과 함께 음원사재기 관련 고발장을 검찰에 제출하는 등 관련 논란에 발 벗고 나서온 스타제국 신주학 회장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명확히 밝혀진 실체는 없다. 음악팬들과 미디어, 심지어 가온차트까지도 이례적으로 닐로 음원 역주행 분석을 내놓으며 여러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닐로 소속사 리메즈엔터테인먼트 측은 SNS 등을 통한 바이럴 마케팅 노하우였을 뿐이란 입장이다. 이런 식이라면 사실상 더 이상의 진실규명 진전이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인상에 남는 사건은 되겠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일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본질적인 부분 정도는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바로, 한국대중음악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언제고 다시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이란 점이다. 비단 대중음악계뿐만이 아니다. 한국대중문화시장 전체가 이 같은 사건, 갈등을 ‘부추기는’ 환경이라고까지 말할 만하다. 한국대중문화시장의 속성, 나아가 한국인들의 독특한 심리구조 탓이다.

단적으로 말해, 한국은 밴드웨건 현상이 사뭇 극단적으로 발현되는 곳이다. 각자 자기 취향을 갖고 그에 따라 문화상품을 소비한다기보다, 이른바 ‘트렌드’를 따르고자 하는 욕구가 무척 강하다. ‘다른 사람들’이 소비하는 상품에 극히 민감하다. 이는 영화, 서적, 패션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대중문화시장 전체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패션이야 지난겨울 ‘롱패딩 열풍’만으로도 충분히 인지됐을 듯싶다. 영화계 역시 인구의 1/4이 본다는 1000만 영화가 매년 한두 편씩 등장하는 모습은 전 세계적으로 보기 힘든 광경이다.

근래엔 정치권에서도 유사한 이슈가 발생했다. ‘드루킹 여론조작 의혹사건’이다. 그런 식으로 ‘몰이’를 하면 별 생각 없던 이들도 ‘대세’를 감지하고 그리로 쏠리리란 계산이 배경이다. 드루킹 사건이 유독 덩치가 크고 민감한 배경이어서 화제가 됐을 뿐, 사실 이런 종류 일들은 정치권에서 비일비재하다. 당장 동시기에 재선에 도전하는 강인규 나주시장 관련으로도 유사한 여론조작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은 그동안 다양한 차원에서 분석돼온 바 있다. 아직 개인주의 사회로의 이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집단주의 사회 특유의 분위기가 대표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나’보다 ‘타인’과의 조화가 중요시 여겨지며, 그만큼 타인들 동향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사회분위기를 말한다. 아시아권 대부분이 비슷한 분위기이긴 하지만, 특히 한국은 사회 전반에 걸친 압축성장 속도를 의식의 변화 속도가 따라잡지 못해 갈등이 두드러지곤 한다.

해외 특히 서구 문화선진국들은 이런 분위기가 아니다. 문화소비 자체가 개인성을 드러내고 자신을 남과 차별화시키는 기제로서 자리 잡은 형태다. ‘롱패딩 열풍’ 류 쏠림현상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각자 취향대로 시장이 잘게 갈라져있다. 반면 한국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 신문광고로 극장 앞에 인산인해를 이룬 관객들 사진을 집어넣던 분위기다. ‘남들도 다 보러간다’는 점을 어떻게든 직설적으로 표현해야 관객이 더 온다. 나아가 여전히 흥행수치를 수익으로 발표하지 않고 관객 수로 발표하는 환경이기도 하다.

어찌됐건 이 같은 대중심리 배경이 존재하는 한 밴드웨건 현상은 한국에서 끝날 일이 없고, 그러니 닐로 사태처럼 바이럴 마케팅이건 사재기건 프로그램이건 간에 ‘대세’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려는 시도 역시 종식될 날이 요원한 것이다. 관련 규제를 만들어봤자 또 다른 편법이 탄생될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듣는다기보다 요즘 유행하는 음악을 따라 듣고 싶어 하는 심리, 그렇게 ‘남들 다 듣는 것 같은’ 1위곡에 민감하고 순위권 100위 내 곡 목록을 무차별 플레이시키며 남들 분위기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심리가 문화소비심리 기반이 되는 이상은 달라질 게 없다.

그러나 동시에, 예전과는 크게 다른 분위기 또한 존재한단 점도 인지해둘 필요가 있다. 특히 닐로 같은 인디뮤지션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앞서 언급한 2013년 4개 연예기획사의 음원사재기 검찰수사 요구 당시만 해도 여론 분위기는 지금과 같지 않았다. 상당부분 ‘아이돌로 편중된 시장’에 대한 문제제기도 함께 불거져 나왔다. 명백히 불공정 행위에 대한 고발 상황임에도 ‘그럴 만도 했다’는 식 반응 역시 만만찮았다. 아이돌 팬덤이 음원 차트를 각종 총공을 통해 독식해버리다 보니 차트 내 들을 음악이 없다는 불평도 쏟아졌다.

그런데 이번 닐로 사태를 겪으면서는 그런 반응이 상당부분 줄었다. 최소한 ‘아이돌 탓’하는 이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듯 대중의 반(反)아이돌심리에 기대 명확한 ‘반칙’이 물타기 되는 분위기가 점차 휘발되는 이유가 있다. 그 사이 아이돌이란 상품은 장족의 인식전환을 이뤄왔기 때문이다.

일단 보이그룹 방탄소년단 중심으로 세계대중문화 메카 미국시장에까지 K팝이 침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밖에 유럽, 남미 등 그간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시장들 역시 점차 그 침투가 가시화되는 와중이다. 일본 정도나 캐시카우 시장으로 공략하던 2013년 당시와는 크게 다르다. 아이돌이 대표하는 댄서블한 음악은 한국대중음악산업에서 가장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장르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게 해외 문화선진국들에까지 팔려나갈 만큼 경쟁력 있는 음악상품이 자국시장 주류가 되는 게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거기다 ‘수출신앙’ 국가에서 이 정도 해외성과를 거듭하며 국익 및 국격을 상승시키는 아이돌상품에 대해서라면 이제 더 이상 비판을 늘어놓기도 어려워진 분위기가 존재한다.

더 있다. 어쩌면 더 결정적인 부분이다. 대부분 댄서블한 음악 중심으로 활동하는 건 맞지만, 이젠 아이돌도 각종 다양한 음악장르로 발을 뻗어나가는 상황이다. 하루 종일 아이돌 음악만 듣더라도 메탈 정도를 제외하면 인디 씬까지 포괄해 국내 유통되는 웬만한 장르 음악은 두루 들을 수 있다. 적어도 장르 편중 소리는 나오기 힘든 상황이다.

게다가 음악적 평가까지 부단히 높다. 당장 올해 초만 해도 아티스트형 아이돌 또는 아이돌형 아티스트로 여겨지는 아이유 노래 ‘팔레트’가 뉴욕타임즈 매거진 선정 ‘음악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25곡’에 선정된 바 있다. 케이티 페리, 브루노 마스, 테일러 스위프트 등 세계적 아티스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결과다. 물론 그 이전에도 걸그룹 f(x) 앨범 등이 롤링스톤, 피치포크 등 미국 유수 음악매거진에서 호평 받으며 베스트 팝 앨범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한편 지금 아이돌산업은 국내 인디 씬과의 상생관계까지 성립되고 있는 상황이다. 10여 년 전부터 노브레인, 페퍼톤스, 칵스, 선우정아 등을 시작으로 인디 씬에서 아이돌에 음악을 제공하거나 프로젝트 앨범 등으로 함께 하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아이돌 씬은 보다 신선한 감각을 인디 씬으로부터 수혈 받고, 인디 씬은 아이돌과의 협업으로 얻은 인지도를 통해 작은 시장 내에서나마 발판을 다져가는 구조다.

결국 이젠 반(反)아이돌심리 하나만 믿고 반칙들을 저지른 뒤 오리발 내밀 수 있는 때가 아니란 얘기다. 대중의 아이돌 반감은 급속히 희석되고 있다. 인식이 절대 나쁘지 않다.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인정’은 한다. 나아가 상업적 차원에서 헤게모니를 차지하는 게 자연스러운 시장 흐름이란 점까지도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물론 아이돌상품이 만능이란 얘긴 아니다. 언제라도 언더독이 튀어나와 시장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는 환경이야말로 건강한 대중문화시장 초석이다. 그러나 그를 위해 반칙까지 눈감아주던 시기는 지난 지 오래란 얘기다.

언급했듯 닐로 사태와 유사한 상황은 한국대중심리 속성상 언제라도 다시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앞으론 닐로 사태와 유사한 상황이 감지될 경우 그 어느 때라도 매번 지금 같은, 어쩌면 지금보다도 더 수위 높은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시장 강자는 곧 악(惡)’이란 도그마가 휘발되고 나면 그를 핑계 삼는 면죄부도 동시에 휘발되기 마련이다. 대중음악계 종사자 모두의 현명한 판단이 기대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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