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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6-10 13:47:08, 수정 2018-06-10 13:47:08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프랑스 언론의 뼈 있는 방탄소년단 분석

  •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의 미국 빌보드 핫200 차트 1위 ‘사건’은, 많이들 알려졌다시피, 전 세계 언론들로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자아냈다. 그간 K팝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나라들 언론까지도 이번만큼은 일치단결해 상황을 보도했다. 물론 대부분은 극히 이례적 상황 자체에 대한 놀라움, 그리고 예찬일색이다. K팝에 대해 별다른 깊이나 지식, 통찰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개중 사뭇 인상적인 외신이 지난 4일 등장했다. 프랑스 우익 성향 시사주간지 ‘르 쁘엥’의 대중문화 자매지인 ‘르 쁘엥 팝’ 기사, ‘BTS, K팝 한국의 멋진 병사들’이다. 인터넷에서 기사 번역본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물론 프랑스 특유의 냉소적인 태도, 자문화중심주의적 경향이 엿보이지 않는 건 아니지만, 어찌됐건 기사 자체는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적어도 그간 외신들에서 볼 수 있었던 K팝 산업 분석치곤 가장 깊이 파고든 축이다. 특히 방탄소년단에 대해 “순수한 K팝의 산물이자 그 안티 시스템이기도 하다”는 평가가 인상적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그 정도 생각할 거리를 외신에서 던져줬단 점 자체가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렇듯 이모저모로 꽤나 흥미로운 기사지만, 사실 이 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조금 다른 곳에 있다. 바로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K팝은 해외에 진출할 생각으로 모든 장르를 섭렵한 크로스오버의 산물이다. (중략) K팝은 밖으로 눈을 돌렸고 나아가 더 적극적으로 (해외와) 협업해왔다.”

    궁극적으로 K팝은 내수시장이 너무 작아 해외에서 수익을 얻어낼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에 해외시장에 초점을 맞춰 모든 특징들을 총망라한, 이른바 ‘수출용 상품’이란 것.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해석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저런 국내 칼럼이나 토론회 등에서 줄기차게 반복된 해석이 맞다. 그런데 이 흔하고 그만큼 잘 알려진 해석은 의외로 그 시작점이 명확하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1년 11월4일, 일본 니혼TV 버라이어티 방송 ‘도코로, 산마의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누구인가 회의’에서 처음 등장했다. 김영민 현 SM엔터테인먼트 총괄사장이 방송에 직접 출연해 K팝 현황에 대해 설명해주는 회차였다.

    당시 김영민 사장은 “일본 뮤지션들이 해외진출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일본 우익 저널리스트 사쿠라이 요시코의 질문에 “일본이 해외로 진출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내수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 설명하며 “일본음악시장이 5000억 엔 규모라 하고 한국이 150억 엔 규모라 할 때, 일본 뮤지션들이 굳이 한국시장으로 갈 필요가 있을까. 20분의 1, 30분의 1인 한국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매우 난센스다. 시장 차이가 너무 큰 것이 일본 뮤지션이 해외로 나가기 힘든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는 당시로서 매우 겸손하면서도 정교하게 조율된, 가히 외교관급 답변이었다. 특히 뭐라도 꼬투리를 잡아내려 눈에 불을 켰을 우익 저널리스트 앞에서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이 답변은 이내 일본 미디어 내에서 변질되기 시작한다. K팝은 해외수출 목적으로 만들어졌기에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됐고, 그래서 해외에서 팔리는 것뿐이며, 일본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 수출에 적합지 않은 내수용 모델이 자리 잡았단 식 해석이 온갖 미디어에서 등장했다. 이윽고 한국 미디어에서조차 같은 해석을 그대로 받아 옮겨 적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해석은 문제가 많다.

    단적으로 말해, K팝 산업은 예나 지금이나 ‘해외시장을 바라보고 벌이는 전략’이랄 게 딱히 없다. 기껏해야 팀 멤버 중 외국인을 몇 명 넣는 정도다. 그것도 상당부분 해외시장 전략으로 시작됐다기보다 내수 차원에서 이목을 끌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다 보는 게 옳다.

    한편, K팝 확산의 절대적 도화선이 된 유튜브 관련으로도 르 쁘엥 팝은 “일본이 유튜브에서 자신들 콘텐츠를 삭제하는 동안 한국은 전 세계 젊은이들이 K팝이란 장르의 주인이 되도록 키워나갔다”며, 애초 뮤직비디오 등 K팝 동영상의 유튜브 무료배포가 세계시장 전략이었던 양 해석했다. 그러나 이도 사실과 다르다.

    한국선 K팝이란 단어 자체가 없던 시절부터 뮤직비디오가 늘 인터넷에 무료로 배포돼왔다. 한국서 그런 동영상은 애초 ‘파는 것’이 아니었다. 이유도 단순하다.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뮤직비디오 비디오카세트가 미국서 900만 세트 이상 팔려나간 게 1983년이라지만, 한국선 이 같은 문화소비가 웬일인지 좀처럼 자리 잡질 못했다. 2000년대 초반, 아직 음반시장이 인터넷에 먹히기 전에도 뮤직비디오 등 관련 동영상을 ‘따로 판다’는 발상은 여전히 한국대중음악시장에서 성립되질 않았다. 아이돌 관련 각종 동영상은 그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홍보수단이었을 뿐이고, 그렇기에 일본처럼 유튜브 등에서 자신들 콘텐츠를 삭제시켜야 할 이유가 없었다. 딱히 이렇다 할 목적이 있지 않았던 행태를 두고 과대해석은 무리다.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 한국선 애당초 ‘해외시장 목표 전략’이란 게 따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었단 점이다. 지금 해외에서 먹히는 각종 아이돌그룹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정확히 한국서 이미 최상위급 스타덤에 오른 팀들만 해외에서도 반응이 온다. 한국서 실패했거나 딱히 뜨지 못했던 팀들은 해외에서도 딱 그 정도 반향만 일으킨다. 이유는 단순하다. 해외 K팝 팬들은 의외로 팀의 한국 내 위상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90% 이상 연동된다고 보면 된다. 나머지 10% 정도 예외도 아직 국내시장 반향이 해외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던 2012년 이전 배출 팀들에 한한다.

    결국 현재 국제적 K팝 팬덤을 형성하는 팀들은 해외 구미에 맞춰 방향성이 성립된 게 아니라 철저히 한국대중 구미에 맞춰 성공을 거둔 팀들이란 얘기다. 해외에 팔릴 거라 생각조차 안 하며 그저 우리끼리 즐기려 만든 콘텐츠인데 인터넷이란 창구를 통해 해외가 그에 반응한 것뿐이다. 해외전략이고 뭐고가 따로 없는 것이다. K팝 세계화는 실제적으로 ‘우연히’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턴 전혀 다른 차원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째서 한국대중은 그토록 해외시장 요구에 쉽게 부응할 수 있는 취향들을 지녔느냐는 점이다.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심이 되는 골자 정돈 쉽게 나온다. 한국대중은 ‘본래’ 문화적으로 해외 흐름에 민감하단 점이다. 일본처럼 갈라파고스적 분위기가 나온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미 사반세기 전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도 한국대중은 늘 해외서 유행하는 장르, 주로 선진국 문화시장 흐름 등에 민감하게 대처하며 이를 자국 문화콘텐츠에 적극 반영해왔다. 그리고 그런 콘텐츠가 주로 성공을 거둬왔다. 왜 그런 지에 대해서도 해석은 많겠지만, 그런 게 바로 GDP 대비 무역비율 104.2% 국가, 무역의존도가 극단적으로 높아 ‘수출신앙’까지 생겨버린 나라의 특성이라고 볼 수도 있을 법하다. 무조건 해외를 통해 먹고 살아야 하는 나라다보니 문화적 차원에서도 자연스럽게 해외에 지극한 관심을 쏟으며 그 흐름을 좇으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단 해석이다.

    그리고 그런 특이한 문화 분위기가 곧 K팝 세계화 바탕이 됐다고 보는 게 설득력 있다.

    르 쁘엥 팝, 그리고 여전히 K팝에 대해 어긋나는 견해를 보이는 각종 해외미디어 문제는 이제 K팝이 빌보드 차트 1위까지 차지한 마당이라면 분명코 점검해볼 시점이 맞다. 분명한 건, 이를 교정하기 위해선 일단 한국 미디어들부터 과연 K팝이란 무엇이고 그 발전 방향은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 명료한 이해와 철학, 관점이 필요하단 점이다. 결국 해외미디어들도 궁극적으론 한국 주류미디어 해석에 영향 받아 자신들 관점을 성립시켜나가는 패턴이 맞기 때문이다.

    최소한 자신들 얘기를 놓고 해외에서 만들어진 잘못된 관점을 수입하는 행태야말로 미디어로서 가장 멀리해야 할 게으름이자 무책임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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