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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실종·리더십 부재…서울신라호텔의 예고된 ‘부진’

입력 : 2018-06-19 15:19:32 수정 : 2018-06-19 19:4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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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진 사장, 돈 되는 면세점에 집중
재개관 이후 시설∙서비스 변화 미미
라이벌 롯데에 밀려 ‘아시아톱’ 요원
19만 원 상품 등장…위상 추락 방증
특급 호텔 속속 개관…대응전략 없어
[전경우 기자] 서울 남산을 끼고 돌아서는 장충단길 아래 끝자락을 지나다보면 붉은 외관을 한 서울신라호텔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부터 여느 호텔과는 달리 우리 역사의 한 갈래인 신라를 차용했고, 호텔 안에 있는 고즈넉한 한옥풍의 경치는 나라 밖에서 들른 외빈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이른바 셀레브리티(Celebrity, 유명인)들이 꼽는 최고의 명소다. 특히 한옥으로 이뤄진 영빈관은 송중기와 송혜교 커플을 비롯해 장동건과 고소영 등 현존하는 톱스타들이 예식을 올린 곳이다. 일반 대중들에게도 멋들어진 결혼을 꿈꾼다면 영빈관은 소망의 공간이다. 신라호텔의 수장인 이부진 사장 역시 통큰 이미지로 호텔만큼 얼굴을 알리고 있다. 지난 2014년 2월 80대 택시 기사가 운전 부주의로 서울신라호텔 출입구 회전문을 들이받는 사고를 내면서 무려 4억 원의 변상금을 떠안게 됐는데, 이 사장의 지시로 호텔 측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당시 여론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가리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사례로 추어올렸다.

1979년 공식 개관한 이후 국내 호텔산업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자리하면서 업계의 터줏대감이자 선발주자로 이름을 각인시켜온 신라호텔의 위상이 하락하는 모습이다.

서울신라호텔은 2013년 835억 원을 투자한 개보수 공사를 거쳐 재개관했다. 당시 총지배인(최태영 현 르 메르디앙 서울호텔 대표)은 “호텔신라가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 톱을 차지할 날이 머지않을 거라 생각한다”며 “삼성전자가 기라성 같은 일본 전자업체를 누르고 세계 1위가 됐듯 호텔신라도 포시즌스, 리츠칼튼, 페닌슐라보다 더 나은 시설과 서비스를 선보여 세계 시장으로 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약 5년이 흐른 현재 ‘아시아 톱’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된 반면, 경쟁사 롯데호텔은 ‘아시아 톱3’라는 비전에 근접했다.


▲‘가성비 호텔’로 전락

이달 초 회사원 A씨는 서울신라호텔을 19만 원에 예약해 가족과 함께 ‘호캉스(호텔과 바캉스의 합성어)’를 즐겼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인근 호텔보다 신라호텔의 객실료가 저렴한 것을 발견해 재빨리 ‘예약’버튼을 눌렀다. 같은 날 포털사이트 최저가 검색을 통해 확인한 인근에 호텔 숙박요금 최저가는 그랜드 하얏트 서울이 27만8000원, 웨스틴조선호텔 서울은 30만2500원, 롯데호텔 서울이 31만6465원, JW메리어트 동대문은 29만9300원, 강남에 있는 르메르디앙 서울도 23만9580원. 대부분 서울신라호텔보다 고가였다.

서울에서 가장 비싼 호텔은 이제 서울신라호텔이 아니었다. 롯데 시그니엘(45만9800원)과 포시즌스 서울(43만4500원)은 서울신라호텔과 거의 두 배의 가격 차이가 났다.

호텔신라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해외 글로벌기업의 비즈니스출장, 프리미엄 고객을 주 타켓으로 운영되고 있고 객단가는 타 호텔보다 높은 수준이다”며 “내국인을 대상으로는 어번아일랜드(야외 수영장)를 중심으로 상품을 구성해 풀부킹이 될 정도로 인기를 얻고있다"고 했다.

투숙율이 높다 해도 20만 원 이하의 가격이 나온다는 것은 신라호텔의 인지도가 떨어졌다는 방증이다.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이 변하는 호텔 업계 특성상 판매 가격은 내릴 수 있지만, 최고급 호텔은 내부적인 가격 방어선을 마련해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게 일반적이다. 한 호텔업계 세일즈 담당자는 “호텔들이 참고하는 사설 가격정보 업체 데이터에서 신라는 빠져 있어 정확한 ADR(평균 일일 객실가)은 파악이 어렵지만, 시장에서 위상이 변한 것은 제법 오래됐다”고 말했다.

최근 여행정보업체 트립어드바이저가 뽑은 대한민국 베스트 호텔 랭킹에서도 서울신라호텔은 22위에 불과했다. 이 순위는 호텔측의 어뷰징(부정행위)에 강력한 패널티를 적용하고 있어 가장 객관적인 호텔 평가 지표로 쓰인다.

▲초심을 잃은 신라

아버지 손에 이끌려 오던 어린 시절부터 신라호텔의 오랜 단골이던 회계사 B씨는 최근 포시즌스 서울 호텔을 더 자주 찾는다. 그는 “항상 인파로 넘쳐나는 야외 수영장과 길게 줄을 서서 조식을 먹어야 하는 레스토랑은 소비자가 기대하는 럭셔리 호텔과 거리가 멀다”며 “이그제큐티브 라운지(호텔 내 상위 객실 이용자 또는 호텔 자체 멤버십 상위 등급 보유자들에게 개방된 휴게 공간)에 나오는 음식과 주류가 예전보다 현격히 떨어져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서울신라호텔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비즈니스 고객을 위한 이그제큐티브 라운지 입장 권한을 ‘패키지 특전’으로 남발한 이후 벌어진 상황이다.

여유로움이 사라진 서울신라호텔은 외국인들도 외면하고 있다. 5성급 호텔을 자주 이용하는 외국계 기업 임원이나 부유한 FIT(자유여행객) 등 핵심 고객층 상당수는 이미 다른 호텔로 갈아탔다. 블로그나 SNS에서 보게 되는 서울신라호텔의 서비스와 상품에 대한 칭찬은 어쩌다 한번 찾아온 패키지 손님이 남긴 게 대부분이다.

▲혁신의 실종과 리더십 부재

서울신라호텔은 2013년 이후 변화 없는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시설과 서비스 어디에도 ‘혁신’은 보이지 않았고, ‘호텔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호텔신라 임직원들의 인식 탓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호텔신라를 이끄는 ‘원톱’ 이부진 사장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면세점 사업에 집중해 왔다. 이 사장은 최근 주주총회에서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과 마카오 국제공항,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 면세점 등 글로벌 사업을 착실히 추진해 미래를 위한 성장 동력을 배가시킬 것”이라며 “글로벌 시장에서 지위를 더욱 강화해 오는 2022년까지 글로벌 톱3 면세업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2015년 5성 현판식 당시 “항상 발전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했지만, 이후 호텔의 위상 강화를 위한 구체적인 각론은 내놓지 못했다.

▲달아오른 서울 호텔시장에 대응 무기 있나

호텔 업계는 날이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 지고 있지만, 서울신라호텔의 대응책은 사실상 전무하다. 서울 호텔시장은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2017년부터 급격히 공급이 늘었고, 올해도 수 많은 호텔들이 새롭게 문을 연다. 신라가 제자리걸음을 계속하는 동안 재벌그룹이 소유하거나 운영하는 호텔들은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어 격차는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롯데호텔 서울은 올해 초 문을 닫고 개보수에 들어갔던 신관을 9월에 재개관한다. 롯데호텔 서울 신관은 롯데의 기함(旗艦)인 시그니엘과 기존 롯데호텔의 중간 지점에 맞춘 ‘수퍼 럭셔리 호텔’을 표방한다. 신세계가 소유권을 가진 JW메리어트 서울도 전면 개보수를 거쳐 8월쯤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고, 신세계 조선호텔의 신규 브랜드인 레스케이프 호텔도 파리의 초고가 호텔 콘셉트로 내달 개관한다.

서울신라호텔과 인접한 동대문에는 KT가 소유한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동대문 호텔 & 레지던스가 7월 1일부터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간다. 내년에는 동호대교 바로 건너편에 현대산업개발의 호텔HDC가 운영하고 하얏트 체인에 속하는 안다즈 서울 호텔이 생긴다. 안다즈 호텔은 도쿄, 상하이, 싱가포르 등에서 가장 비싼 호텔로 불리는 곳이다.

이에 반해 신라호텔의 대응 전략은 거의 전무한 게 현실이다. 한옥호텔 계획이 있지만 여러 규제에 막혀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한옥호텔은 2016년 서울시로부터 심의를 통과한 후 교통, 환경 영향 평가 등 세부 인허가를 진행하고 있고 2023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향후 5년간 인지도 상승을 위한 동력이 없다는 뜻이다.
 
kwjun@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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