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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찍은 넥슨·롯데 10년 우정] 가슴에 아로새겼던 넥슨 이젠 겅호로…

입력 : 2017-03-27 09:10:32 수정 : 2017-03-27 0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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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과류·프로야구 등 여러 제휴로 각별한 사이 유지해
지바롯데 일본시리즈 우승에 넥슨도 홍보 효과 누려
7년간 프로야구 후원 계약 끝내고 일본 겅호로 변경
한국기업들 “일본 대중 스포츠와 만남 자부심이었다”
[김수길 기자] #1. 2007년 8월 넥슨은 일본의 대형 제과 기업 롯데와 손잡고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를 소재로 한정판 껌을 출시했다. 몇 달 전부터 현지 편의점에는 “예약할 수 있냐”는 문의가 쏟아졌고, 준비된 25만 개는 발매 일주일만에 매진됐다. 또 다른 온라인 게임 ‘테일즈위버’도 껌으로 100만 개가 나왔고 며칠만에 동이 났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강영태 당시 넥슨 운용본부장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게임 회사는 속성상 다양한 비즈니스 영역으로 뻗어갈 수 있다”고 설파했다.

#2. 2012년 1월 일본 도쿄 하초보리에 위치한 넥슨의 일본 본사. 대표 이사의 집무실이 있는 이 건물 7층을 들른 기자 눈에, 얼마 전 넥슨의 일본 도쿄증시 1부 상장을 축하하는 대형 화환 하나가 들어왔다. 일본 프로야구단 지바롯데의 나카무라 이에쿠니 사장이 보낸 이 화환은 출입구 한 켠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넥슨과 지바롯데의 각별한 관계를 나타내는 부분이다. 일본 법인 대표를 지낸 최승우 현 넥슨 명예회장은 “롯데는 가깝고도 일본에서 조언을 주는 좋은 기업”이라며 운을 뗐다.

뿌리를 한국에 둔 공통분모로 여러 사업에서 남다른 친목을 과시했던 10년 지기 넥슨과 롯데가 이제 각자 갈림길에 섰다.

껌으로 시작된 우정은 야구를 매개로 혈맹을 다짐하는 사이까지 발전했으나, 어느덧 추억 속 작은 편린이 돼버렸다. 양사 사업적인 판단에 따라 계약에 종지부를 찍는 구체적인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이를 두고 오랜 기간 이끌어온 협업에 시기적으로 전환점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최근 롯데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부지를 제공하기로 최종 확정하면서 악화일로인 한·중 관계가 작용한 탓인지 궁금증을 불러오고 있다.

지난 2월 1일 일본 프로야구단 지바롯데 마린스(이하 지바롯데)는 모바일 게임 ‘퍼즐앤드래곤’으로 유명한 게임 기업 겅호온라인엔터테인먼트(겅호)와 유니폼 후원 협약을 발표했다. 선수들은 물론, 감독과 코치진이 착용하는 유니폼 오른쪽 가슴에는 겅호의 로고가 들어갔고, 2010년부터 7년 동안 그 자리를 채웠던 넥슨의 로고는 빠졌다. 겅호는 2016년부터 일본 야구 대표팀(사무라이 재팬)의 다이아몬드(특급)급 후원사로도 등재돼 있다. 지바롯데의 주장인 스즈키 다이치는 “겅호의 로고가 들어간 유니폼에 들어간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넥슨은 일본에서 온라인 게임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롯데의 제과 사업군을 기점으로 시너지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기업 브랜드를 끌어올릴 실효적인 한 방이 절실했던 넥슨은 2010년 3월 김태균(현 한화 이글스)이 뛰고 있던 지바롯데를 공식 후원하기로 했다. 계약은 매년 별도 이견이 있지 않는 한 자동으로 갱신됐다. 일본 사업 책임자로서 협약식에 참석했던 최승우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넥슨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온라인 게임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넥슨은 유니폼에 로고를 기입하고 지바롯데의 홈구장(지바 마린스타디움) 안에 넥슨 로고를 노출했다. 전광판에는 게임 광고도 상영했다. 지바롯데로서도 가족 팬들이 많은 야구 사업의 특성상, 게임 콘텐츠를 연계해 넥슨과 제휴할 요소들이 상당했다. 일각에서는 넥슨이 꽤 큰 금액을 지바롯데에 지불했을 거라는 추측이 있었으나, 최 명예회장은 “의외로 합리적인 금액만으로 합의했다”고 귀뜸했다. 후원 첫 해 지바롯데가 일본 시리즈에서 최종 우승하자, 넥슨 역시 일본 전역에서 쏠쏠한 홍보 효과를 누렸다. 그 무렵 우에다 슈헤이 일본온라인게임협회 회장은 “구체적으로 정량화하기는 힘들지만 넥슨 덕분에 온라인 게임에 대한 관심이 다소 늘어난 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넥슨 대신 겅호가 지바롯데와 맞손을 잡으면서 연인 사이는 과거 시제가 됐다. 겅호는 지난 주 막을 내린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도 지원할 만큼 근래 들어 스포츠 분야에 공을 들이고 있다. 겅호 측은 “야구를 시작으로 각종 스포츠 경기를 응원하겠다”고 밝혀 시장에서 큰손으로 부상할 것을 시사했다. 지바롯데로서도 겅호가 일본 대표팀을 돕는 특별한 기업이라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 국가 대표급 후원사를 영입했다는 의미인 셈이다. 일본 게임 업계의 한 고위 인사는 “겅호의 공격적인 시도에 지바롯데로서도 실리를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면서 “일본 야구 업계와 팬들에게 상징적인 ‘사무라이 재팬’의 후원사라는 점도 충분히 고려한 것으로 본다”고 해석했다.

반면, 일본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한국계 기업의 일본 법인 임원은 “홈구장 전광판에 온라인 게임의 재미를 소개하는 문구나 영상이 심심찮게 실려, 나름 전시 효과가 있었다”며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한국 게임 콘텐츠를 대중 스포츠와 접목해 전파하는 건 업계 종사자로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고 소회했다. 중견 배급사 대표도 “넥슨과 롯데의 돈독한 관계는 게임을 알리는 수단을 넘어 자부심의 상징으로 불렸다”면서 “세계적인 게임 강국 일본에서 한국계 기업이, 그것도 일본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스포츠인 프로야구에 스며들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뜻깊다는 평가가 많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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