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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58. 도박 중독자의 말로

입력 : 2017-11-26 18:54:40 수정 : 2017-11-26 18: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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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범죄자의 범행동기를 보면 카드빚이나 도박 빚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특히 도박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점차 통제가 불가능한 중독이 되고 주변사람을 힘들게 하다가 결국 범죄를 저지르는 나락의 길로 빠지게 된다. 절도에서 살인까지, 도박은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남도 해치는 악업을 만든다.

예전에 재미교포에게 들은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미국에서 세 가지만 안하면 성공한 것이다’라는 말인데 그 세 가지란 마약과 이혼 그리고 도박이다. 그 중 가장 무서운 것이 도박이다. 라스베이거스나 애틀랜틱시티처럼 카지노를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것은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선에 있는 카지노를 상습적으로 드나드는 사람들 때문에 사회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K 씨는 한때 연예계의 대부로 인기가수를 숱하게 키워낸 살아있는 신화였다. TV와 라디오에선 매일 자신이 키운 가수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앨범은 불티나게 팔렸으며 각종 콘서트 스케줄로 1년 365일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내놓는 가수마다 히트를 쳐 돈방석에 앉게 되자 나쁜 유혹에 빠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평소 친하게 지낸 사람이 카드나 한 판 치자고 제안을 했다. 사업상 재미로 치던 카드는 어느새 큰 도박으로 번졌고 시간도 돈도 많았던 그를 점점 피폐하게 만들었다. 급기야 원정도박으로 전 재산을 몽땅 날린 뒤에는 지인들에게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가족, 친구 뿐 아니라 자신이 키운 가수와 주변 거래처까지 닥치는 대로 돈을 구걸한 뒤 큰 판을 벌였지만 도박 빚만 늘고 말았다.

결국 부인과는 이혼하고 외동딸은 캐나다로 떠나버렸다. 그가 가르친 도박제자들도 상황은 같았다. 그나마 음반이 잘 팔리는 가수들은 살만했지만 단 한 번의 히트로 돈을 번 가수들은 K씨에게 배운 도박으로 재산을 모두 날리고 도박중독자로 전락했다.

도박을 끊으려고 손가락을 자르려고도 해보고, 손을 꽁꽁 묶어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눈만 감으면 카드패가 아른거렸고 잃어버린 돈 생각에 울화통이 치밀었다. 살아서는 도저히 도박의 마수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음을 깨달은 그는 자신 때문에 상처를 입은 가족과 친척, 지인들에게 회개하는 심정으로 울릉도행 배에 몸을 실었다.

“아버지는 울릉도에서 자살하셨습니다.” 캐나다에서 온 K씨의 딸은 부친을 위한 구명시식을 청했다. “죽기 전에 저와 딱 한 번만 통화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대요. 하지만 통화는 못하셨습니다.”

연예계의 마이더스 손으로 명성을 떨치던 그는 초라한 모습으로 구명시식에 나타났다. 누구보다 무남독녀를 사랑한 그는 ‘면목 없다’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지난날을 참회하던 K씨는 느닷없이 나에게 “요즘 L씨를 종종 만나시던데 말 좀 전해주십시오. 도박을 가르쳐서 미안하다, 절대 도박하지 말라고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 “L씨를 만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셨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에이, 제가 귀신이잖아요”라며 웃었다.

L씨는 K씨와 친한 연예인 매니저로 그녀 역시 수많은 연예인들을 키우던 큰 손. 나중에 L씨에게 이 말을 전하자 그녀는 “도박에 ‘도’자도 몰랐던 나를 도박으로 빠트려서 미안했던 모양이죠? 얼마 전까지 도박판을 전전했지만 이젠 도박할 돈도 없어요”라고 말하기에 “마지막에 꿔준 돈 못 갚아서 미안하답니다”라고 덧붙이자 그녀는 둘만의 비밀인데 하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카지노에는 두 가지가 없다고 한다. 바로 시계와 창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게 말이다. 도박은 세상과 단절시킨다. 그리고 창문 없는 곳에서 도박하다 결국 창문 없는 곳으로 가게 만든다.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조차 단절하게 되니 내가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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