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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영 기자가 뛴다] 낮 최고 38도 ‘극한 체험’...대전구장 그라운드 키퍼가 되다

입력 : 2018-08-10 09:11:01 수정 : 2018-08-10 0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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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대전 정세영 기자] ‘어느 야구장 그라운드가 가장 좋나요?’

 

선수들에게 버릇처럼 자주 물었던 말이다. 한결같이 돌아오는 대답은 대전구장(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이라고 한다. 대전구장은 1964년 건설됐다. 지은 지 54년이 넘은 가장 오래된 곳. 호기심이 생겼다. 그라운드 상태가 어떻기에 선수들이 이토록 칭찬하는 것일까. 일일 ‘그라운드 키퍼’가 돼 보기로 결심했다.


●싸늘한 시선, “저…. 자신 있습니다.”

 

한화 담당 기자가 된 2015년부터 쉼 없이 드나들었던 곳. 기대 반, 두려움 반. 설렘과 긴장이 공존했다. 힘을 쓰는 일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키는 작지만 힘은 누구한테 뒤질 일이 없다고 자부했다. 오전 11시, 대전구장에 도착해 구장관리팀 사무실로 향했다. 김재만 구장관리 팀장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곧바로 김 팀장의 구장관리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구장관리팀의 구성원은 모두 13명. 다른 구단에 비해 인적 구성은 적다. 그래서 각자의 포지션에서 임무가 더 추가된다고 했다. 적은 인원수지만 팀 워크는 최고란다. 김 팀장은 설명을 마친 뒤 점심 회식이 있다고 했다. “제가 참가해도 되나요?”라고 묻자 김 팀장은 “오늘 우리 식구인데 당연히 함께 가야죠”라며 웃는다.

 

식사 자리. 점심 메뉴는 삼계탕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고 인사했다. 싸늘했다. 구장관리팀 관계자들은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기자를 바라봤다. 김 팀장은 닭다리 하나를 뜯어내 접시에 놓는다. “이거 먹고 오늘 힘내셔야죠.”

 

●낮 최고 38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낮 12시30분, 같이 식당에서 나온 ‘동료’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이들은 야구장에 도착하자마자 뿔뿔이 흩어졌다. ‘왜 이렇게 다들 서두르는 것이냐’고 하자, “곧 있으면 선수들의 훈련이 시작된다. 그 전에 세팅을 마쳐야 한다”는 답변이 왔다. 

첫 임무는 그라운드 흙에 물을 뿌리는 것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 영상 38도다. 간단한 설명을 듣고 호스를 잡았다. 주의규 씨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서 반대로 물을 흩날리면서 뿌려야 해요. 알겠죠?”라고 당부했다. 물을 뿌렸다. 아뿔싸. 그런데 바람의 방향을 잘못 예측했다. 호스에서 뿜어져 나간 물이 나를 덮쳤다. 얼굴은 물론 온몸을 흠뻑 적셨다. 옆에 있던 김 팀장은 “이게 쉬워 보이지만 절대 쉽지 않죠?”라며 배꼽을 잡는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외야 불펜이었다. 시간이 빠듯하다. 투수들이 도착하기 전 정비를 끝내야 한다. 전날 밤에 이미 정리해 놓은 불펜이지만 마무리 작업을 해야 한다. 불펜 정비 도구를 들고 마운드를 골랐다. 어정쩡한 자세로 흙을 고르자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곳이 아니라 여기를 잡아야죠, 이렇게”라는. 그라운드 이곳저곳에서 정비에 나선 지 약 1시간30분. 온몸은 땀범벅이다.

 

●왜 그라운드 키퍼가 되셨어요?

 

오후 2시30분. 하계 훈련복을 입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하나둘씩 나왔다. 우리가 빠져야 하는 시간이다. 막간을 이용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관계자의 말이 듣고 싶었다.

 

‘잔디의 달인’이라 불리는 조경희 씨를 만났다. 잔디 관리 경력만 15년 이상의 베테랑이다. ‘국내에 몇 안 되는 최고의 경력자’라고 김 팀장이 귀띔한다. 대전구장 외야 잔디는 ‘다이아몬드형’이다. 이유가 있다. 조경희 씨는 “야구장에 왔을 때 관중이 가장 먼저 보는 곳이 어딜까요? 바로 잔디입니다. 중계방송에서도 잔디만 보여요. 지은 지 오래된 구장 시설은 낡았어도, 잔디는 충분히 어필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다이아몬드형으로 깎자고 결심했죠. 잔디만큼은 최고를 보여주고 싶었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국내 야구장에서 사용하는 잔디는 켄터키 블루 그래스다. 봄, 가을에 잘 자라는 종이다. 여름 날씨에 취약하다. 길이는 항상 1.8mm를 유지해야 한다. 조 과장은 “잔디는 예민해요.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큰일 나죠. 병충해에도 약해요”라고 한다. ‘힘들지 않으냐’고 하자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라며 웃는다.

 

●“경기력에 지장을 줄 수 없지요.”

 

경기 전 홈과 원정팀 훈련이 끝나는 시간은 오후 5시30분 전후다. 구장관리팀은 다시 바빠진다. 기자는 그라운드 관리에서 잠시 손을 떼기로 했다. 이후 관리는 선수들의 경기력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대신 구장관리팀의 또 다른 업무인 구장 시설 체크에 나섰다. 콜이 왔다. 실내 불펜으로 향했다. 이날 들여온 ‘코끼리 에어컨’을 설치했다. 설명을 들으며 야구장 이곳저곳을 다녔다. 김 팀장의 무전기에는 수시로 직원들의 연락이 들어온다. “여긴, 이상 없습니다. 오늘은 승리하기만 하면 됩니다.”

 

●‘진짜’는 경기 후였다

 

오후 9시56분. 경기가 끝났다. “이제부터가 진짜”라며 목소리에 힘을 넣었다. 양 팀 선수들이 다 퇴장한 뒤 본격적인 그라운드 정비 작업이 시작됐다. 각자 맡은 곳에서 뚝딱뚝딱, 일 처리가 진행됐다. 기자는 마운드가 있는 그라운드 중간으로 나갔다. 한 눈에도 움푹 팬 곳이 많았다. 일단 마운드 밖으로 튕겨 나간 ‘마운드 클레이’를 다시 마운드 쪽으로 던지는 일부터 시작했다. 다른 쪽에서는 다른 관계자가 마운드를 덮는 흙을 도구로 골라냈다.

‘맥가이버’라는 별명을 가진 김철수 씨가 움푹 팬 곳에 마운드 클레이를 덮고 물을 주기를 반복한다. 습도가 중요하단다. 이어 평탄화 작업에 필요한 탬퍼를 잡고 쿵쿵 내려찍는다. “정 기자님도 한번 해보세요”라고 탬퍼를 건넸다. 퍽퍽퍽.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1분 정도를 친 것 같은데 등에 땀이 흘러내린다. 한 30여분이 흘렀을까. 마운드는 깔끔해졌다.

 

홈플레이트로 달려갔다. 마운드와 같은 정비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내야 그라운드를 다지는 롤러 기계에 앉았다. 완강하게 ‘타지 않겠다’고 버텼지만 “이것을 체험해야 진짜”라고 했다. 시동을 걸고 약 1m 정도를 갔다. “도저히 못 하겠어요. 잘못하면 망가질 수 있잖아요”고 소리쳤다. 진땀을 뺀 모습에 모두가 배꼽을 잡았다.

 

●보이지 않는 ‘영웅들’

일과가 끝났다. 오후 11시30분이 조금 넘었다. 구장관리팀 직원들은 일과가 끝나면 3루 더그아웃 옆에서 ‘커피 타임’을 갖는다. ‘남자들의 수다’가 이어진다.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인사했다. 그러자 “오늘같이 진 경기는 힘들지만, 이기는 경기에는 힘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김재만 팀장을 비롯해 차영학 대리, 이재헌 대리. 그리고 조경희(잔디전문), 주의규, 김철수, 김영웅(시설전문), 김연오(조경전문), 강윤식, 황덕상(경비전문), 김상용, 정기섭, 양현진(미화전문) 씨. 이들 13명은 그 누구보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들이지만 대전구장을 찾는 1만3000명의 팬에게는 기억되지 않는 이름이다. 그렇지만 최고의 경기력과 관중의 안전은 이들에게 달려있다.

 

niners@sportsworldi.com

 

사진=대전 정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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