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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알라딘’, 천만 관객 돌파의 이유

입력 : 2019-07-15 06:30:00 수정 : 2019-07-15 00: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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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영화 ‘알라딘’이 ‘극한직업’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이어 올해 3번째 1000만 영화에 등극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알라딘’은 개봉 53일째인 14일 오전 10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역대 25번째이자 외화 중에선 7번째다. 거기다 아직도 흥행세가 빠지질 않았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 이어 여전히 일일 2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향후 어디까지 누적관객을 늘릴 수 있을지 감도 잘 안 잡힐 정도다.

 

그런데 ‘알라딘’엔 상당히 특이한 면면이 존재한다. 먼저, 1000만 영화사상 최초로 개봉일 1위를 차지하지 못한 영화란 점이다. ‘알라딘’이 개봉한 5월23일 1위는 개봉 9일차를 맞고 있던 ‘악인전’이 차지했다. ‘악인전’ 11만4460명, ‘알라딘’ 7만2736명이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알라딘’은 역대 최초로 개봉일 10만 관객도 넘지 못한 1000만 영화가 됐다.

 

완벽한 슬리퍼 히트, 소위 ‘입소문 히트’였던 셈이다. 당연히 독과점 배급조차 아니었다. 1008개 스크린으로 시작했다. 직전 1000만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기록한 2835개 스크린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후 뜨거운 관객반응에 힘입어 1409개 스크린까지 늘었지만, 그마저도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알라딘’의 ‘무엇’이 그리도 특별했기에 이 같은 기현상을 낳게 됐을까. 사실 해석하기 까다로운 문제다. ‘알라딘’은 사실상 비평조차 딱히 좋지 못한 영화였기에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상황을 하나씩 잘라 살펴보면 이 같은 미스터리도 조금은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크게 미시적 요인과 거시적 요인으로 나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시적 차원에서 봤을 때, ‘알라딘’은 의외로 ‘대진운’이 좋았다고 봐야 한다. 애초 이렇다 할 주목을 못 받던 영화다. 배우들이 홍보 차 내한한 일도 없고, 주연배우 윌 스미스도 전성기를 10년쯤 넘긴 흘러간 스타였다. 그러니 개봉 첫날 ‘악인전’ 9일차에도 밀린 것이다.

 

Mena Massoud as the street rat with a heart of gold, Aladdin, and Will Smith as the larger-than-life Genie in Disney’s ALADDIN, directed by Guy Ritchie.

그런데 개봉 일주일 뒤인 30일, ‘기생충’이 개봉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한국영화 사상 최초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홍보 탑을 들고 등장한 영화다. 역대 최고급 사전인지도를 보였다. 그런 만큼 1783개 스크린에서 시작해 4일 만에 1947개 스크린까지 갔다. 자연스럽게 속도전 양상을 보였다. 개봉 8일 만에 500만 관객을 넘어섰다.

 

그런데 ‘기생충’은 사실 여름 시즌과 잘 맞는 영화는 아니었다. 유머가 적절히 섞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암울하고 냉소적인 주제다. 그럼에도 엄청난 사전홍보효과에 힘입어 개봉 초반 영화를 본 관객들이 폭증하자 그 수많은 ‘이미 ‘기생충’을 본’ 관객들 차기 선택 문제가 남게 됐다. 자연스럽게 ‘알라딘’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알라딘’ 쪽이 여름 시즌에 더 잘 맞는, 낙관적이고 볼거리 많은 블록버스터였기 때문이다. 암담한 계급우화 ‘기생충’과 정반대되는 콘텐츠란 점에서 균형 감각이 좋았다. 완벽한 데이트무비였다.

 

어떤 의미에선 ‘기생충’이 없었다면 ‘알라딘’ 역시 1000만 관객까진 가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기생충’이 이미 시장을 한 번 쓸고 지나갔기에 오히려 ‘알라딘’이 지닌 반대급부 가치가 더 부각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즌에 맞지 않는 화제성 폭탄=>시즌용 언더독 흐름이 나왔다. 부족했던 사전인지도와 홍보 전략을 ‘쌍끌이 흥행’ 특유의 ‘정반대 선택지’ 기능으로 말끔히 커버한 셈이다. 사실 그 정도를 넘어 아예 본질 자체를 극복했다 봐야 한다.

 

한편 거시적 관점에선, 지금은 ‘웬만하면 1000만들을 넘길 기세’란 점이 꼽힌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상반기 극장 전체 관객 수는 약 1억1112만 명으로 집계됐다. 상반기 사상 최초 1억 명 돌파이자 지난해 상반기 약 9635만 명보다 1500만 명 가까이 늘어난 기록이다.

 

그리고 그 원인으론 영화 주 소비층인 청년층의 대규모 실업사태 등 경제불황이 꼽힌다. 지난 6월 15~29세 실업률은 10.4%로 1999년 이후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2030세대 전체에서 신차 구매대수 등 여러 소비지표들 역시 계속 하락세를 겪고 있다. 전반적으로 젊은 층이 지갑을 닫고 소비를 줄이는 상황에서, 가장 값싼 레저거리인 영화 관람으로 모든 레저 활동이 통일되는 분위기란 것.

 

그런데 이 같은 불황정서는 자연스럽게 또 다른 현상도 낳는다. 대중문화소비 ‘쏠림’ 현상이다. 물론 한국대중문화시장 분위기 자체가 쏠림과 밴드웨건 현상이 자주 일어나긴 하지만, 불황이 닥치면 한층 더 심해지는 게 상례다. 지갑이 얇아질수록 모험적 소비가 급격히 줄고 보다 안전한 소비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결국 ‘남들도 다 소비하는 대세상품’으로만 쏠리게 된다.

 

요식업계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지금 같은 경기불황 때 기존에 맛집으로 알려진 곳들은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전체 요식업계는 하향곡선을 그리게 된다. ‘보다 안전한’ 맛집들만 잘 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영화는 ‘일단 잘 되는’ 영화들 쪽으로 쏠린다. 개인의 다양한 취향을 보상받는다기보다 큰 유행의 흐름에 동참하고자 하는 심리가 올라선다. 기선을 잡아 500만 이상 고지까지 간 영화들은 보다 더 1000만으로 입성하기 쉬운 구조다.

 

아닌 게 아니라, 언급했듯 올해 상반기 개봉작들만 해도 벌써 1000만 영화가 3편이다. 여기에 곧 ‘기생충’이 합류하게 된다. 그럼 역대 연간 1000만 돌파 최다기록을 세운 2014년 ‘명량’ ‘국제시장’ ‘겨울왕국’ ‘인터스텔라’ 4편 기록과 동률이 된다. ‘상반기만으로’ 이미 동률을 이룬단 얘기다. 물론 여름 시즌도 아직 반이나 남았고, 추석, 크리스마스 등 대목들도 남아있다. 기록은 어디까지 경신될지 모른다.

 

당연히 극장관객이 늘어나 1000만 영화도 늘어난 구조라고 보긴 힘들다. 반대로, 1000만 영화들 덕택에 전체 관객 수가 늘어난 형태다. 올해 상반기는 최초의 1억 관객 돌파와 함께 가장 쏠림이 심한 상반기로도 기록되고 있기 때문이다. 1000만 영화 ‘극한직업’ ‘어벤져스: 엔드게임’ ‘알라딘’과 ‘기생충’ ‘캡틴 마블’까지 5편이 상반기 전체 관객 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선택받지 못하는 영화는 기존보다도 훨씬 심각하게 외면 받는 현상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 17만=1UBD란 단위까지 만들어낸 ‘자전차왕 엄복동’이 한 예다. 100억 이상이 투여된 블록버스터로선 극히 이례적인 대참패다.

 

결국 ‘알라딘’ 1000만 돌파엔 현 시점 한국영화시장을 둘러싼 갖가지 현상들이 총합되다시피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쌍끌이’란 독특한 영화소비심리부터 경제불황기 문화소비심리 특성까지 다양한 해석지점들이 존재한다. 더 중요한 점은, 이 같은 현상들이 비단 ‘알라딘’에만 해당될 특수조건들도 아니란 점이다. ‘쌍끌이’ 심리는 이미 한국영화시장에서 자주 목격돼온 시장특성에 가깝고, 경제불황 역시 여러 측면에서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알라딘’ 현상은 분명 또 일어나고, 빠르면 연내에도 다시 반복될 수 있다. 이를 감안하는 보다 섬세하고 면밀한 흥행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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