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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美 ‘가십걸’ 리부트로 보는 ‘인지도 전쟁’

입력 : 2019-08-04 23:30:00 수정 : 2019-08-04 18:3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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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미국드라마 ‘가십걸’이 리부트된다. ‘가십걸’은 미국 CW에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방영됐던 청소년드라마다. 뉴욕 부유층 청소년들의 도발적인 사생활을 다뤄 방영 당시 ‘부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드라마’ 소리까지 들었다. 한국선 “이 구역의 미친X은 나야”란 캡쳐짤로 더 잘 알려졌다. 이번 리부트는 HBO의 VOD서비스 HBO 맥스로 자리를 옮겨 내년 공개예정이다.

 

그런데 리부트가 참 빠르다. 근래 ‘맥가이버’ ‘환상특급’ 등 드라마 리부트 자체가 유행이긴 하지만, ‘맥가이버’는 14년, ‘환상특급’ 16년 등 오리지널 판 마지막 시즌으로부터 최소 10년 이상 텀은 뒀다. 그런데 ‘가십 걸’은 2012년 끝난 드라마를 2020년에 리부트한다. 고작 8년만이다. ‘공백기가 길었던 새 시즌’ 정도로 착각될 정도다.

 

그런데 요즘 할리우드 분위기가 다 이렇다. 오히려 드라마계가 좀 더딘 편이다. 영화계 쪽에서 ‘8년 만의 리부트’ 정도면 오히려 오래 참은 편이다. 가장 극단적인 예가 지금도 2번째 리부트 2편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 개봉 중인 스파이더맨 프랜차이즈다. 스파이더맨은 2002년 샘레이미 감독-토비 맥과이어 주연으로 첫 프랜차이즈가 시작돼 2007년 3편으로 마무리됐다. 이후 5년만인 2012년 마크 웹 감독-앤드류 가필드 주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으로 리부트됐다. 그러나 흥행부진으로 2014년 2편으로 마무리된 뒤, 고작 3년 만인 2017년 존 왓츠 감독-톰 홀랜드 주연으로 다시 리부트됐다.

 

3년이면 ‘그냥 속편’ 텀이다. 실제로 관객들에게 혼란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이처럼 무리한 리부트들이 계속되는 이유가 있다. 대중문화계 ‘인지도 게임’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해진 탓이다.

 

당장 영화상영작 수만 비교해 봐도 알 수 있다. 1980년 북미지역 영화개봉 총 편수는 161편이었다. 그게 2018년 이르러선 878편까지 늘었다. 5배가 넘는다. 당연히 여기서 끝도 아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개발돼 봇물처럼 터져 나온 비디오/DVD용 영화가 더 있다. 이제 그 시장은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들로 흡수됐지만, 그러면서 한층 규모가 확대됐다. 스트리밍 오리지널들까지 합하면 한 해 공개되는 총 영화편수는 그 사이 10배 이상 늘었다.

 

드라마시장도 마찬가지다. ABC, CBS, NBC에 공영방송 PBS까지 더한 4대 지상파시절은 끝난 지 오래다. 지금은 여기에 폭스와 CW가 더 생겨 6대 지상파시장이 됐고, 케이블채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었다. 현 시점 미국 각 가정에선 평균적으로 189개 케이블채널에 가입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넷플릭스, 훌루, 아마존프라임 등 OTT가 더 붙는다. 어떤 의미에선 ‘드라마 시리즈야말로’ 시장포화 수준을 훌쩍 넘기고 있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규모로 공급이 확대돼버리면 대중의 선택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콘텐츠 ‘인지도’가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인지도부터 확보돼있어야 한 번 눈길이라도 받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때일수록 ‘기존 히트작’ 가치가 드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속편에 속편을 거듭하는 것으로 모자라 리메이크, 리부트, 거기다 ‘스파이더맨’ ‘가십 걸’처럼 때 이른 리부트까지 닥치는 대로 밀어붙이게 되는 셈이다.

 

더 중요한 변화가 있다. ‘대중유행’ 개념이 바뀌어가면서 ‘대중용 콘텐츠’ 개념도 함께 바뀌어가는 상황이란 점이다. 적은 수의 콘텐츠를 강력한 배급 플랫폼이 쥐고 전체 대중유행을 이끌어가던 때가 20세기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콘텐츠 양은 급격히 늘어난 반면 배급 플랫폼의 유행선도 기능은 급격히 저하되고, 대신 인터넷이란 거대한 콘텐츠 창고에서 각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서’ 즐기는 구조로 변모했다.

 

이러면 이른바 ‘선택의 역설’이 일어나면서, 오히려 대중은 점차 특정 콘텐츠 또는 장르의 마니아화 되는 경향을 밟게 된다. 그렇게 ‘대중유행’ 개념도 덩달아 변화하고, 곧 ‘마니아층이 두터운 쪽’이 ‘대중적인 콘텐츠’란 인식이 들어서게 된다. 일반대중이란 애매한 대상에 접근하려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마니아층을 더 큰 폭으로 늘리기 위한 신종 전략들이 고안된다. 그 선도 콘텐츠가 바로 ‘세계관’ 공유 개념을 정립한 뒤 각종 쿠키영상 등 다양한 마니아 전략을 동원한 마블 유니버스다. 마블 유니버스가 폭발적 인기를 끌자 곧 DC 유니버스, 다크 유니버스, 컨져링 유니버스 등으로 계속 번져나가고 있다. 마니아 전성시대다.

 

그리고 이 같은 마니아 전성시대엔 또 다른 경향이 발생된다. 마니아들은 어찌됐건 그 콘텐츠 진행을 따라가면서 즐긴단 점이다. 속편이건 리메이크건 리부트건 한 번 ‘꽂힌’ 콘텐츠는 계속 따라간다. 그대로 팬덤에 남아 소비한다. 그러니 리부트 텀이 짧건 길건 아무 관계도 없는 셈이다. 오히려 텀이 길수록 팬덤이 와해되는 경향이 생겨 가능한 빨리 리부트를 기획하는 편이 유리하다. 결국 대중문화시장 성격 자체의 변화 탓에 ‘가십 걸’ ‘스파이더맨’ 등 히트 프랜차이즈 리부트가 전반적으로 빨라지는 현상에 이르렀단 얘기다.

 

현재 미국드라마계에선, 굳이 리부트까진 아니어도, 앞서 언급한 ‘공백기가 길었던 새 시즌’들까지 덩달아 느는 추세다. 그렇게 ‘X파일’이 14년 만에 시즌10을 내놓고, ‘트윈 픽스’가 16년 만에 시즌3을 내놓았다. 시트콤 ‘로잔느 아줌마’까지도 21년 만에 시즌10을 등장시켰다. 어떻게든 이 광포한 콘텐츠 홍수 속에서 인지도를 붙잡고 싶은 것이다.

 

이제 한국을 돌아보자. 영화건 드라마건 속편이 거의 없는 한국대중문화시장이다. 세상은 점차 ‘마니아=대중성’ 공식으로 옮아가는 데도 프랜차이즈화가 근본적으로 어려운 한국 실정에선 늘 ‘0부터 시작하는 인지도 게임’을 되풀이하고 만다. 늘 리스크가 크다. 상당부분 프랜차이즈화 기반이 되는 콘텐츠 ‘캐릭터성’이 부족하고, 대신 캐릭터를 둘러싼 환경과 조건 중심 사회반영 콘셉트 범람이 그 주원인으로 꼽힌다. 그것도 한국만의 스타일이라면 스타일이지만, 전략적으론 위태로운 포지션이 맞다.

 

와중에 ‘리부트’란 용어를 사용한 한국영화 속편도 현재 제작중이긴 하다. ‘여고괴담’ 프랜차이즈 6편, ‘여고괴담 리부트: 모교’다. 그런데 ‘여고괴담’은 애초 리부트란 용어가 적용될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여고’가 무대고 ‘공포’ 장르란 점만 같지 등장인물이나 배경 등은 다 다른 프랜차이즈, 요즘은 ‘앤솔로지 시리즈’라 부르는 프랜차이즈다. 리부트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거기다 시놉시스를 읽어보면 1998년 작 1편 설정을 되풀이한 전형적인 ‘리메이크’다. 어떤 근거로 리부트란 개념을 사용한 건지 모르겠다.

 

아마 하도 속편, 리메이크, 리부트가 드물고 낯선 영화제작환경이다 보니 상황을 좀 헷갈렸나 보다 싶다. 그만큼 우려도 깊어진다. 제작패턴 다양화를 모색해봐야 할 때고, 사실 좀 늦었다.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시대, 새 흐름을 잡기 위한 이노베이션에 들어가야 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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