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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일의 온에어]화려하지 않은 스포츠 아나운서의 삶, 그래도 꿈을 꾼다면

입력 : 2019-09-03 20:00:00 수정 : 2019-09-03 17: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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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 대학생 시절 텔레비전과 연결해 조작하는 축구 콘솔 게임은 내 삶의 낙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떠오르는 고민도 ‘오늘은 게임하면서 누구를 놀려줄까’였다. 함께 게임하는 친구들을 말로 약 올리는 일이 너무나도 즐거웠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스포츠 아나운서를 꿈꾸게 된 계기였다. 친구들뿐 아니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매일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이유였다. 현재 아나운서를 꿈꾸는 지망생들에 비하면 꽤나 단순한 시작이었다.

 

 학원 수업을 수강해 발성과 말하는 법을 익혔고 그룹스터디에 출석해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논의했다. 생각을 말로 전달하는 실력이 늘어갈수록 자신감이 켜켜이 쌓였는데 단번에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2년이란 시간 동안 수차례 합격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자존감마저 휘발됐고 머릿속에서 포기란 단어를 되뇌기 시작했다. 운 좋게도 마지막으로 채용 지원서를 낸 회사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다.

 

 8년이 지난 현재 나는 유명하지 않은 스포츠 아나운서다. 일을 시작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내세울 게 많지 않다. 시간과 노력을 쏟은 스페인 축구는 중계권이 타사에 넘어가는 바람에 무용지물이 됐다. 방송계에서 인지도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내겐 분명 좋은 일이 아니다. 불안정한 미래나 불규칙한 생활, 큰 변동 없는 수입 등 감내해야 할 요소들도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내가 웃으며 중계할 수 있는 이유는 ‘재미’다. 프로의 세계에서 아마추어의 마음으로 살아가다 보니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보고 동경했던 사람들은 이제 나의 동료다. 동료들과 함께 꿈꾸던 일을 하니 내가 유명하지 않아도, 수입이 넉넉하지 않아도 마음만은 풍족하다. 사소한 걱정거리들도 내가 방송을 업으로 삼기로 결심한 이상 평생 봇짐처럼 짊어지고 가야 할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방송은 프로스포츠와 닮은 구석이 많다. 스포츠 아나운서로서 사는 동안 깨달은 점이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현실은 치열하고 냉혹하다.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모든 이가 꿈을 향해 달린다. 그 중에서 타고난 재능과 부단한 노력을 동시에 품에 안은 사람이 스타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스포츠 아나운서 역시 모두 스타로 올라서고 싶어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꽃길을 걷는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매일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른다. 더 높은 곳을 향해 가는 이가 있다면 반대로 누군가는 그저 기회라도 얻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느 분야에서나 자신의 삶이 가장 힘든 법이다. 앞서 언급했듯 방송계, 특히 스포츠 아나운서의 앞길에도 난제들만 산적해 있다. 그래도 스포츠 아나운서를 꿈꾸는 지망생들이 있기에 글을 쓴다. 스포츠 방송을 만드는 그리 대단치 않은 ‘방송쟁이’의 하루와 삶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다. 힘들어도 정이 있는 게 바로 아나운서니까.

 

소준일 KBS N 스포츠 아나운서

 

정리=전영민 기자 사진=소준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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